글 /정샘(경희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선수들을 살펴보면 그저 실력이 뛰어났던 선수보다 실력과 인격이 동시에 잘 갖추어진 선수들이 대중에게 더 오래 회자되고, 더 깊이 기억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말처럼 우리네 인생사에서 사람의 머리에 기억되는 것보다 마음에 기억되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야기 하나. 실력에서 인격까지 완벽한 전설, 보비 찰튼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출신의 보비 찰튼(Robert Charlton)은 대표 최다 골 기록(49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다 골 기록(249골)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하지만 그가 동시대의 다른 스타 플레이어들과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존경받는 이유는 단지 현역 시절의 화려한 실력 만은 아니다. 그는 선수시절 단 한 번의 경고와 퇴장도 없었을 정도로 철저한 페어플레이 주의였으며 상대 선수의 격한 반칙에도 결코 분노하거나 응수하지 않았다. 또 1958년 뮌헨 참사로 맨유의 선수 8명이 숨지는 사고 속에서 살아남은 보비 찰튼은 정신적 상처 속에서도 전력이 떨어진 팀을 위해 혼신을 불살랐고, 마침내 60년대 들어 보비 찰튼은 소속 팀 맨유 뿐만 아니라 국가인 잉글랜드에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선물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팀의 우승에도 승리 세레모니 대신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을 생각할 정도로 슬픔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이같은 보비 찰튼의 정신력과 인간성은 그에게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선물했고, 실력과 관용, 그리고 인격까지 갖춘 그는 진정한 스타의 해답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두고두고 존경받는 보비 찰튼에게 많은 이들은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찾기 힘든 인격의 모범이란 평을 내린다.
현역 시절의 보비 찰튼(좌)과 맨유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사건, 뮌헨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올드 트레포드 담벼락에 걸려있는 ‘메모리얼 클락’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하루카제의 Manchester United!」)
이야기 둘. 이 땅의 신화, 존 우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존 우든(John Robert Wooden)은 1975년의 팀 우승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27년 동안 UCLA의 농구팀 감독으로 재임하며, 마지막 12시즌 동안에는 10회의 NCAA 우승을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갖은 기록을 보유한 신화적인 인물이다. 긴 시간 존 우든의 위대한 성과에 익숙해졌던 팬들로 인해 한 동안 어느 누구도 그의 후임 감독직을 맡지 않으려 했다 하는데 심지어 우승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임 감독이 팬의 총에 맞아 구사일생의 고비를 넘긴 사건도 있었다.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 남들은 한 번도 힘든 농구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2번의 이름을 올렸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경이로운 업적에 ‘웨스트우드의 마법사’란 닉네임을 달아주었다. 하지만 존 우든은 이 별명을 매우 싫어했는데, 농구는 자신의 인생에서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으며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선수들의 스승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로 그 이유를 대신했다. 그가 얼마나 소박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흑인선수들의 부당한 인권문제에 대항하여 싸우고, 타고난 능력보다 피나는 노력을 더 높이 샀던 진정한 지도자, 농구를 통해 인생을 가르쳤던 진정한 스승, 존 우든. 1910년 세상에 태어난 그는 꼭 100년째 되는 해인 올해 6월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종목을 초월한 코칭의 대가로, 사람들의 인생 지도자로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UCLA 감독 시절의 존 우든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꿈꾸는 꼬마 배낭 철학자」)
이야기 셋. 힘차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스포츠 인격의 시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실력과 인격을 두루 갖춘 선수는 누가 있을까? 우리나라 스포츠의 역사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서양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역사가 짧으니 위대한 선수도 없다’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실력과 인격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 국내에도 많을 것이다. 다만 아직 검증의 시간이 짧았던 것뿐이고, 대중매체가 보급되고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역사 또한 짧으니 이야기가 유포될 시간이 짧았던 것뿐이리라. 또 국내 스포츠의 출발점은 어떠한가. 배고프고 힘없던 시절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기기’ 위함으로 이를 악물고 싸우지 않았던가. 이러한 배경은 선수도 대중도 오로지 1등만을 외치는 승리지상주의, 결과지상주의를 야기하는데 일조하였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망하는 팬들과 은메달을 목에 걸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선수들, 그게 우리나라 스포츠 전반의 문화였다. 물론 이러한 금메달 지상주의가 기술적으로나 기록적으로 우리나라 스포츠의 발전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적 발전과는 반하여 인간 본성의 상실과 이기심의 팽배를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금메달은 목에 걸었지만 인격은 발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끝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역시 언제나처럼 선수들의 ‘나쁜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만들어냈다. 역전의 드라마를 쓰며 힘겹게 동메달을 딴 축구 선수들 중 일부가 자신의 개인 홈피를 통해 특정 종목의 금메달을 비하한 것이다. 그 특정 종목은 누가 봐도 야구임에 틀림없었고, 같은 국가의 대표팀으로 한 대회에 출전한 동료의 금메달에 박수 쳐주지는 못할망정 그 가치를 끌어내리는 행태에 대중들의 맹비난이 쏟아졌다. 신중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은 백 번 잘못했으나 어린 선수들이기에 한 번의 실수로 너그럽게 넘어가야 할 것이며, 그 선수들 또한 이번 기회를 빌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이같이 언론에서 과장되고 시끄럽게 다루는 좋지 않은 뉴스거리와는 반대로 선수들의 좋은 이야기, 훌륭한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박찬호 선수를 비롯한 송진우, 김광현 선수, 그리고 골프 최나연 선수의 기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홍명보 선수의 장학재단 설립,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의 남다른 인품에 대한 이야기, 또 기자들에 대한 배려로 팬들을 감동시킨 장미란 선수의 이야기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 스포츠 현장의 안과 밖에서 무수히 많은 스토리가 피어나고 있다. 이러한 스포츠 선수들의 작은 행동과 마음 씀씀이들이 모여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리나라에도 실력과 인격 모두에서 진정으로 존경받고, 추앙받는 선수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인격까지 존경받는 선수들, 선수는 그 종목의 얼굴이다.ⓒ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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