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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승리보다 더 가치 있는 패배 - ‘정의로운 패배’가 주는 감동


글/김윤환(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지난 8·15 광복절 기념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정한 사회 실현의 모토는 8·8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논란으로 인해 힘을 받으며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발간된 마이클 샌댈 교수의 책 ‘정의는 무엇인가’(What is the justice)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경제적인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정책이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라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가치를 경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의가 대세다. 경제적 수준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여겨지던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은 성공의 필요조건은 ‘정의’이다. 성공을 함에 있어 그 수단으로 ‘정의’롭지 못한 방법을 택했다면 그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조금씩 퍼지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임에 분명하다.

스포츠에서의 정의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을까? 우리는 흔히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의 용어로 스포츠에서의 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스포츠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냉혹한 정글이다. 잡아 먹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과연 스포츠에서의 최고의 가치가 ‘승리’일까?


1. 독일의 ‘얀 울리히’와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암스트롱과 울리히의 2003년 투르 드 프랑스 경기는 스포츠에서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무엇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최강 암스트롱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울리히가 과연 암스트롱을 꺾을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했던 이 경기. 사건은 결승점을 10km 앞두고 일어난다.

선두로 달리던 암스트롱, 그리고 그 뒤를 울리히가 바싹 뒤쫓았다. 그 때, 암스트롱이 구경 나온 꼬마의 가방에 핸들이 걸려 넘어졌다. 15초 차로 2위를 달리던 울리히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런데 넘어진 암스트롱을 추월한 울리히가 갑자기 속력을 낮추기 시작했다. 천천히 폐달을 밟으며 넘어진 암스트롱을 기다린다.

다시 레이스를 시작한 암스트롱이 울리히를 추월하고 나서야 그는 속력을 높였다. 마지막 9.5km의 숨막히는 접전, 결국 최후의 승자는 암스트롱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울리히였다. 울리히가 이 날 행한 ‘위대한 멈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고, 언론에서는 울리히를 ‘진정한 영웅’, ‘페어플레이의 챔피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2. ‘비겁한 승리’보다는 ‘명예로운 패배’ - 뉴욕 양키스와 커티널스의 타자들, 그리고 커트 실링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 출전한 노장 커트 실링.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친 그는 발목 살갗을 찢어 다친 힘줄을 안쪽 조직과 함께 꿰매고 마운드에 올랐다. 경기 중 상처가 터져 피로 벌겋게 물든 양말 문자 그대로 ‘레드 삭스’ 였다. 그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리그 6차전 7이닝 1실점, 월드시리즈 2차전 6이닝 1실점 역투를 해 낸 커트 실링의 활약에 힘입어 보스턴은 86년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 붙은 ‘밤비노의 저주’를 떨쳐내고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피칭을 선 보인 커트실링의 이야기도 큰 감동을 주지만, 정말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커트 실링의 부상 약점을 이용하여 투수 앞 번트를 계속해서 시도 했다면 경기의 승패, 나아가서는 커트 실링의 선수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키스와 커디널스의 타자들은 진정한 스포츠맨들이었다. 그들은 실링을 배려해서 번트를 시도하지 않았고 기꺼이 패배를 감수 했다. 리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 같은 큰 타이틀이 걸린 경기에서 승리보다 페어플레이를 택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비록 이들은 패배했지만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 줬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운동 선수들은 자신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신체를 단련하다. 그러한 모든 행위는 ‘승리’하기 위해서 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승리’를 포기하고 ‘정의로운 패배’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결정이 우리들 가슴속에 전해주는 메아리는 크다.

정의 사회를 구현함에 있어 스포츠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