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승연(문정중학교 체육교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각종고시나 기업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은 물론 정치나 스포츠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여자 선수들은 대단한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핸드볼, 양궁, 골프, 권투, 피겨 스케이트 뿐 아니라 여자 청소년 축구대표팀은 남자선수들도 이루지 못한 세계대회 우승을 이루어 낼 정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여성들의 영역은 확대되어 가는데 학교체육에서 여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즉 엘리트 체육에서의 세계적인 성과와 달리 실생활을 대비한 학교 체육에서의 성과는 매우 미약한 실정으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지 않는 평범한 여학생들 가운데 체육을 즐기고 향후 체육에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다수의 평범한 여학생들에게 ‘체육’은 학교수업에 편성되어 있으므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만 인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체육’은 운동신경이 둔한 여학생들에겐 벅찬 종목이라는 인식과 무서운(?) 남자 체육선생님의 지도, 남학생들 위주의 수업운영 방식이라는 선입견도 크게 작용한다.
김연아나 신지애, 청소년 여자 축구 대표팀처럼 세계적인 여자스포츠 스타들은 멋지고 자랑스러운 대상이나 여학생들에게 그들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일 뿐이다. 여학생들에게는 여자 스포츠스타처럼 되기 위해서 어디서 어떻게 연습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 등 관련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여학생들의 신체구조상 어린 시절에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사춘기 이후에 운동을 시작해서는 엘리트 운동선수로 성공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체육교과가 여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생활 속에서 여성 체육인들의 모습을 보며 ‘스포츠는 재미있는 것, 즐기는 것’이라는 경험이 필요하며 체육 분야로의 진로탐색까지 고민한 수 있는 동기를 부여를 해 줄 수 있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을 보낸 교육청 관내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고 현재도 가르치고 있다보니 나의 학창시절과 지금의 체육 수업방식, 교육여건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나 학교 내 다른 과목에 비해 체육은 십 여년 전이나 지금이 거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학교 내에 여자 체육교사의 존재는 여전히 한 분에서 많아야 두 분이라는 것, 아니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여자선생님의 비율이 너무 높거나 여성비율이 높은 중, 고등학교의 다른 과목과 비교했을 때 매우 상반된 결과이다. 학교에서 체육교과를 남선생님, 여선생님 중 어느 선생님한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냐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닮고 싶은 모습, 역할모델’ 로서의 교사상을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이다.
학창시절의 진로탐색은 본인의 경험이나 부모의 권유, 주변인물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교에서 어떤 교사의 모습이나 특정 과목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이 때로는 진로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 고등학교에서 여자 체육교사의 비율이 워낙 소수이다 보니 학창시절을 통틀어 여자 체육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이 많지 않다. 또한 초등학교에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여교사 비율이 오히려 체육수업을 기피하거나 체육수업 운영이 파행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유로 신문, 방송에 보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체육’ 이라는 분야는 아직도 남자들의 세계이고 김연아나 신지애와 같은 엘리트 선수들의 전유물과 같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체육교사의 존재는 학생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현장에서 십 년 가까이 학생들을 만나면서 가장 보람있고 자긍심을 느낀 적은 ‘저도 선생님처럼 여자 체육선생님 될래요. 선생님 덕분에 체육시간이 즐거워요. 내년에도 선생님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마음이다.
한 사람의 체육교사가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에게 체육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이래서 내가 더 잘 해야겠구나’ 하는 즐거운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처음 교직에 들어와서는 수업과 담임 업무에 집중하느라 내가 학생들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조금 여유가 생긴 최근에의 경험은 이 글을 쓰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7년 현재 학교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 교육청 학교간 경기대회 여학생 발야구부문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근무학교 선배 체육교사의 지시로 참여하게 된 이 대회 예선전에서 상대학교에 많은 점수 차로 패배한 나는 내년에는 꼭 이겨보리란 결심을 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학기 초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 작년과 같은 대회 예선전에서 패배한 학교에게 승리했을 뿐 아니라 교육청대회에서 준우승까지 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 학생들을 데리고 같은 해 가을 학교스포츠클럽 여학생 농구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일을 계기로 2009학년도에는 특별활동 부서로 ‘여학생 발야구반’을 편성, 지도하였고 2010학년도에는 ‘여학생 레저 스포츠반’으로 이름을 바꿔 지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이 부서에서 활약한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체육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중 놀라웠던 것은 학교간 경기대회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몇몇 학생 뿐 아니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도 그 대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체육 분야 진로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이다. 사실 그들 중에는 다른 과목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지 않아 자주 혼이 나는 학생들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목표나 꿈이 절실하지 않았던 이 학생들마저 체육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학창시절에 작은 경험이 때로는 한 사람에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위 사례는 교사라면 누구에게나 흔하게 있는 에피소드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경험이나 연수보다도 값진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나 자긍심을 얻게 되었다. 여자 체육교사라는 직업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다소 이색적인 편이라고 생각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 닮고 싶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여자 체육교사로서 긍정적인 경험을 싶어주려면 개인적인 노력과 교육적, 행정적 지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
첫째는 교사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는 일이다.
체육은 밖에서 실기를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운동을 잘 해서 멋지고 정확한 시범만큼 아이들의 시선을 모으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여교사로서 모든 종목을 다 잘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만큼 이를 보상할 다른 좋은 교육 자료를 개발하거나 재미있고 효과적인 수업운영을 통해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체육교사로서만이 아니라 담임업무나 학교에서 맡는 행정업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둘째는 모범적인 태도와 매너를 보여주는 일이다.
체육교사라고 항상 운동복 차림의 모습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출, 퇴근할 때나 교실 수업을 할 때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신선한 충격(?)을 학생들에게 주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학생들과의 관계나 다른 교사와의 관계도 조화롭게 이끌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 외 정책적, 행정적 지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
먼저 일관성 있는 대회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매년 학교 간 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종목의 대회가 열린다. 남학생들의 종목은 꾸준히 개최되는 것에 비해 여학생들의 종목은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아마 여학생들의 높은 참여율을 염려해서인 것 같은데 종목이 달라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오히려 한 종목을 꾸준히 연습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 중 대회에 출전하여 긍정적 경험을 한 학생은 다음 해 대회에도 참여하고 싶어하며 자발적으로 연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또한 대회에 참가했던 졸업생들이 와서 후배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회가 없어졌다거나 다른 종목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면 학생들은 아쉬워하거나 새 종목 적응에 혼란을 느낀다. 긍정적 경험이 꾸준히 유지되어야 학생들의 관심도 유지가 가능하며 그러한 경험과 관심이 체육분야로의 진로선택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열심히 지도한 교사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이유가 상을 타거나 승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트 학생 선수를 육성해서 전국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에서 성과를 거두면 교사로서 받을 수 있는 일정한 혜택이 있다.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것과 비선수인 학생들을 지도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업무량이나 고충이 다르겠지만 최소한의 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각 교육청 별로 열리는 학교 간 경기대회나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에서 입상해 오는 것은 학생들에게 상장이나 메달이 수여되는 것 이외에 체육교사들에게 다른 혜택은 주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 중에는 의무감으로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도 많다. 대회활성화를 체육교사의 열정만으로 해결하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교육당국의 지원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처럼 여자 체육교사의 개인적인 노력과 교육당국의 정책/행정적 지원을 통해 체육이 학생들에게 보다 다가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골프여제 박세리 선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리키즈’ 세대가 KLPGA나 LPGA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스케이트장에는 김연아 선수처럼 되고 싶다는 학생들로 수강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닮고 싶은 사람,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그 어떤 동기보다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앞서 언급한 박세리나 김연아 선수의 사례처럼 학교에서 여자 체육교사의 모습을 보며 그들 역시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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