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야별 체육이야기/[ 학교체육 ]

‘아나공 수업’.. 피할 수 없으면 현명하게 즐겨라..

                                                                                                         글/마승연(문정중학교 교사)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나 농구, 피구, 발야구와 같은 구기운동을 하며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 어쩌면 학생들이 꿈꾸는 가장 하고 싶은 체육수업이 아닐까..
이와 같은 수업을 ‘아나공 수업’이라고 한다. ‘아나공’의 뜻은 ‘옛다 공 여기있다’ 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교사의 지도나 감독 없이 학생들이 원하는 공을 던져주고 자유로이 놀게 하는 수업방식이다.

누가, 왜, 언제 이런 명칭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직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들어온 말이니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핵심만 골라서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아 쓴 웃음이 난다.

학창시절의 체육수업에 대해 긍정적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진국에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나라 학교체육 정책이 늘 제자리인 것을 보면 ‘아나공 수업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하는 의심이 때때로 들기도 한다.

오늘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나공 수업’ 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거나 왜 그런 수업을 했느냐고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 수업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찾아 실제로 활용해 보고자 하는데 있다.

교단에 처음 섰을 때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학부모, 심지어는 같은 교사들에게도 체육시간은 교과시간이 아니라 ‘노는 시간’ 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체육시간에도 분명히 과제와 평가가 있으며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이 있음에도 왜곡된 시선으로만 보는 것 같아 속상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교사가 된 이후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이‘ 체육도 교과시간이다’ 라는 주장이었고 평가와 관련된 실기연습 이외에 시간은 잘 주지 않을 정도로 수업을 빡빡하게 진행하였다.
가끔 학생들이 ‘선생님 자유시간 좀 주세요’ 라고 ‘아나공 수업’을 원할 때면 ‘내가 슈퍼마켓 주인이냐! 자유시간을 주게! 슈퍼 가서 사먹어!’(같은 이름의 초코바가 팔기 때문에) 라고 썰렁한(?) 농담을 하거나 ‘다른 수업시간에는 너희들 그런 얘기 안하면서 왜 체육시간에만 그런 걸 요구하냐’ 면서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알기에 평가가 끝난 직후나 학기 종료할 시점에 가서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아나공’ 수업인 자유시간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심판을 보거나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을 다독이며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5년 전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날과 끝나는 시점에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학기 초 설문지의 내용은 전 학년에서 어떤 체육수업을 받았는지, 또 어느 종목이 가장 흥미가 있고 좋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학기말 설문지에는 그 해 배운 수업에 대해 어떤 점이 좋고 싫었는지에 대한 물음인데 가끔 읽기 속상한 내용을 적는 학생들도 있지만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기에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학기 초 설문지에는 학년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체육시간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설문지를 하나씩 읽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재미있는 답변이 있을 때도 많은데 ‘교과시간’ 이라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쓰는 친구는 학급에서 2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보다는 ‘자유로운 시간, 힘든 시간, 땀 흘리는 시간,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 등과 같은 답변이 대부분인데 그 중 가장 핵심은 ‘자유’ 라는 단어였다.

처음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실시하고서는 ‘거 봐 아이들은 체육시간에 대해 아직도 노는 시간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더 빡빡하게 수업해야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이러한 답변이 부정적인 뜻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2년, 때론 3년 연속으로 배운 학생들에게도 ‘자유’라는 뜻이 담겨있는 대답이 나오자 학생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물론 체육시간을 학생들에게 ‘교과시간’이라고 아무리 강조하며 수업을 해도 나의 부족한 면 때문에 학생들에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대답에서 ‘자유’라는 뜻이 강조되는 것은 교실과 다른 수업환경에 있었다.

가만히 수동적으로 교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수업환경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유’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이고, 체육을 싫어하거나 못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이러한 환경이 주는 상쾌함, 자유로움과 같은 표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학생들에게 ‘아나공 수업은 절대 해서는 안돼’라는 시각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고 ‘아나공 수업’의 장점(?)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나공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스포츠 종목으로는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축구, 농구, 발야구, 피구 등이다. 축구와 농구는 남학생들에게서 더 인기가 있고 발야구, 피구는 여학생들이 더 선호하는 종목이다.

학기 초에 ‘아나공 수업’으로 남녀학생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피구나 발야구를 해 보면 학생들 성향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두 번의 수업으로 복잡한 학생들의 성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냐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학생과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학생이 학급에서 구분되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이러한 수업이 끝나고 학급담임 교사와 학생들 이야기를 해 보면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학급 담임교사가 교실에서만 수업하는 경우 일수록 더 그런 경우가 많은데 학기 초에 학생 대부분이 긴장하고 앉아있는 교실 수업에서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크게 행동하지 않는 한 쉽게 어떤 학생이 특이한 성향을 갖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 학기 중간이나 학기말에 담임교사와 다시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예측한 점이 맞는 경우가 많아 신기하게 느껴질 적이 있었다.

학기 중간에 ‘아나공 수업’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학생이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학생이 누구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학급에서 두 팀으로 나누다 보면 특정학생이 팀에 들어왔을 때 보이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따돌림 받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 어느 종목을 오늘 하길 원하느냐고 물어볼 때도 학생들 사이에서 발언권이 센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구분할 수도 있다.

학기말까지 ‘아나공 수업’을 가끔 할 때마다 꾸준히 학생들을 지켜보면 운동신경이 뛰어난 학생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학기말이 되면 그동안의 평가 종목 측정결과로 운동신경이 누가 좋고 나쁜지를 대강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학생은 구기운동은 잘하지만 유연성이 부족해서 체조와 같은 종목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기도 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학생이 의외에 종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에 세세한 모습을 관찰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자유 시간’과 같이 ‘아나공 수업’을 달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평소 생활환경에서도 활동량이 부족한 우리 청소년들에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은 학교 체육수업인 것이다.

‘아나공 수업’을 의미있게 활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첫째, 수업시간 중에 체육교사는 심판이나 관찰자로 반드시 학생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하고 있는 종목에 같이 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학생들은 시키기만 하는 교사보다는 함께 땀 흘려 어울릴 수 있는 교사를 매우 좋아한다.
학생들이 즐기는 스포츠를 교사가 어떠한 역할로든 함께 할 때 학생들은 스포츠에 몰입하게 되고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안전사고나 싸움 등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할 수도 있다.

둘째, 수업에 활용되는 종목은 남녀가 모두 같이 할 수 있는 종목이거나 두 가지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목이 너무 많으면 교사 한 사람이 통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짜 ‘아나공 수업’ 되고 만다. 또한 학생이 모두 함께 있을 때 교사가 학급과 학생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아나공 수업’을 통해 나타난 학생들의 장점이나 문제점 등을 기록했다가 학생지도에 활용하는 것이다. 교과담임인 경우 관찰한 결과를 학급담임과 정보로 공유할 수도 있고 내가 맡은 학급이라면 기록으로 남겨 생활지도나 진로지도에 활용할 수도 있다.

넷째, 새롭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종목을 시도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교육청마다 다르겠지만 학기에 네 가지 이상의 종목이 평가되기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연수나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종목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학생들을 위한 여러 가지 뉴스포츠가 개발되고 활발한 전개를 하는 곳도 있지만 더 많은 학생들이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아나공 수업’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사진출처 : 뉴스포츠인 넷볼을 즐기는 학생들 조선일보 2010.11.8일자>

‘아나공 수업’이 학생들이나 교사 모두에게 더욱 더 긍정적인 경험이 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노력이 함께할 때 더 좋은 체육교육이 이루어지고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나공 수업’이 ‘앗싸! 공 수업’으로 불리워지길 소망해 본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