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공개 폴더/스포츠경영

박찬호, 송진우, 정민태, 프로야구 스타들의 재테크 비법

                                                                                글 / 김대호 (안산도시공사 홍보과장)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민들 사이의 최고 화두는 단연 ‘재테크’와 ‘노후대책’이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비교적 큰돈을 만질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떻게 돈 관리를 하고 있을까?
프로야구 선수들의 재테크 비법을 공개한다.






대기업 부럽지 않은 큰손-박찬호

지난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간 박찬호(36)가 15년 동안 벌어들인 돈은 한화로 1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봉뿐 아니라 각종 CF와 마케팅 수입을 합친 금액이다. 프로야구는 물론
국내 스포츠 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 수입이다.
특히 2001년 LA다저스에서 FA(자유계약선수)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면서 5년 동안 6천50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린 것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박찬호가 계약한 연평균 1천30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톱10에 드는 대박이었다.

박찬호는 이 천문학적인 수입을 부동산과 펀드에 나누어 투자하고 있다. 자산관리에 철두철미한
박찬호 성격처럼 한 치의 빈틈이 없다.
우선 국내 자산에 대해서는 우리은행 PB(개인자산관리
전문가)에게 맡겨 놓고 있다. 박찬호는 이 전문가의 조언으로 130억 원을 들여 서울 강남에
지하 4층, 지상 13층짜리 빌딩을 지었다. 한 달 임대수익만 10억 원이 넘는다.

박찬호는 혼합형 펀드에도 상당액을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 LA 남부에 시가 100만 달러짜리 집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향인 충남 공주에도 상당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한때 비버리힐스와 플로리다에 갖고 있던 저택은 처분했다.

박찬호는 자신의 브랜드를 이용한 마케팅으로도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국내에 ‘팀61’이란
전담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해 마케팅 사업
을 벌이고 있다. 부동산 투자는 초기비용이 많이 들고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박찬호처럼 큰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적당한 재테크 방법이다.


알뜰살뜰 저축으로 종자돈 마련-송진우

올 시즌을 끝으로 21년 동안의 프로생활을 접은 송진우(43)의 재테크 지론은 ‘모으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1989년 프로에 데뷔한 송진우는 1999년 첫 FA 계약 전까지만
해도 돈을 모으지 못했다. 일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을 위해 알뜰살뜰 저축을
해가며 살아갔다.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종신보험, 연금보험에 가입했지만 상품가치가 떨어지면서
별다른 이익을 보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투자나 부업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봉급을
쪼개 조금이나마 저축하면서 살아가는데 만족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1999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세 차례의 FA 계약으로 나름대로 목돈을 만지면서 재테크와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략 40억 원의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진우는 일단 토지매입에 자금을 투자했다.
고향인 충북 증평과 옥천에 땅을 샀다. 얼마 전부터 땅값이 올라 제법 쏠쏠한 재미를 봤다.

지난 2005년에는 외식사업에 눈을 돌려 대전시 도룡동에 한우고기 전문점 ‘개마고원’을 열어
날로 번창해 가고 있다. 총 7억 원을 투자한 1,2층에 120평 규모의 식당으로,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경험부족으로 처음 1년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송진우는 향후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땅을 사는 등 포트폴리오식 투자를 해 실패확률을 줄이고 있다.
송진우는 “노력해 번 돈은 헛되게 쓰지 않는다”는 생활신조로 야구장에서 땀 흘려가면서 얻은
노력의 대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동산 대성공, 펀드투자는 고민-정민태

올해부터 코치로 변신한 정민태(39)는 오랫동안 국내 최고 투수로 군림했고, 2년 동안 일본
무대도 다녀왔지만 금전과는 그다지 인연이 깊지 못했다. 입단하자마자 병역비리로 구속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었다. 입단 계약금으로 당시 최고액이었던 1억6천만 원을 받았지만, 실제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계약금은 생활이 어려웠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대부분
나눠줬다.
정민태가 집을 처음 장만한 것은 입단 7년 만인 1998년이었다. 그것도 절반 정도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실력에 비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정민태가 최고 투수로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은 1998년 17승을 거두면서부터다. 1999년 20승으로
전성기를 구가한 정민태는 2000년 페넌트레이스 18승에 이어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면서 주가를
잔뜩 올렸다.
정민태가 17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벌어들인 돈은 얼마나 될까.
정민태는 국내에서 뛴 15년 동안 입단 계약금 포함해 36억 원 가량을 벌었다. 그리고 일본
요미우리에서 2년 동안 41억 원의 수입을 올려 총 77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민태는 2001년 요미우리로 진출하면서 받은 계약금과 인천 집 처분한 돈을 합쳐 서울 대치동에
6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은 처음 샀을 때 보다 2개가량 가격이 오른 것으로 알려져 꽤
짭짤한 이익을 봤다. 정민태는 각종 펀드와 연금보험, 비과세 적금에도 골고루 투자하는 등
노후대비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최근 펀드 시세가 하락해 고민
이 늘고 있다고 한다. 

 


ⓒ 스포츠 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