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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평범한 영어교육과 학생 프로농구단의 통역이 되다

평범한 영어교육과 학생 프로농구단의 통역이 되다

–삼성 썬더스 통역 임준석 이야기-

 

 

 

 

 

 

농구코트에서 작전타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제한시간 내에 감독은 자신의 작전을 지시하고 통역은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간단하게 외국인 선수에게 설명한다. 농구에서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상당하기에 통역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데 실수는 곧 전쟁의 패배를 의미한다. 만약 감독은 A 작전을 지시했는데 외국인 선수가 B 작전을 하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중요한 통역 업무는 어떠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일까? 풍부한 외국경험 혹은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영어교육과 출신 임준석(30)은 6년 전부터 삼성 썬더스에서 통역을 맡고 있다. 해외 경험이라면 미국에서 1년간 살았던 것과 대학시절 캐나다 단기인턴이 전부. 어떻게 그가 통역이 될 수 있었을까?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언제부터 통역이란 일에 대해서 생각했는지

▲ 초등학교 4학년 때 프로농구 통역이라는 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당시 한국프로농구리그(KBL)가 출범되어 농구 통역이라는 직업이 국내에 처음 생겼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농구중계와 관련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는 것이 취미였는데 어느 날 농구 통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어요. 그것을 본 이후로 통역이란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평소에 농구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대학 친구들과 팀을 짜서 농구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교내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제가 속해있던 팀이 농구대회 우승을 차지할 만큼 농구를 꽤 잘 했었어요. 농구를 좋아하면서도 직접 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꾸준히 취업준비를 하던 중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농구통역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결국 삼성 썬더스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셨나요?

▲ 아니요. 초등학교 때 잠깐 미국에서 1년을 보낸 것이 전부에요. 다만 대학교 시절 캐나다에서 2달 단기 인턴을 하여 영어를 쓰는데 있어 적응력을 높였고 짧게나마 여러 군데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재학시절 평소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2~3개월마다 토익과 토익스피킹 시험을 치렀는데 마지막 시험에서 토익 970, 토익스피킹 200점을(최고점수) 받았습니다.

 

 

- 아무리 영어 성적이 좋았더라도 통역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 원어민이 아닌 이상 영어 말하기에 있어서 자신감과 성격이 중요하다고 봐요. 틀릴까 걱정하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성격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머물고 있을 때 앉아서 공부만 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편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보다 여러 사람과 부딪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영어를 하는데 있어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6년 전 면접 당일 몇 명의 지원자가 있었나요?

▲ 저를 포함해서 6명의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 면접 당시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장점이 있었다면?

▲ 저는 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외국생활을 길게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분야에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였다’라는 것을 삼성 썬더스 구단에 어필하였습니다.

 

 

- ‘관심’과 ‘노력’을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 제가 좋아하는 것은 농구이고 잘하는 것은 영어이기 때문에 농구통역이란 직업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직무에 대해서 알기위해 직접 구단에 메일을 보내 질문을 하기도 하였고 이에 대한 답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 보다 농구통역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실제 농구를 좋아해서 통역으로 온 사람들 중에 자신이 생각했던 일과 전혀 달라 일을 금방 그만두는 일도 허다한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통역... 1년차 때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요?

▲ 통역일과 학교생활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첫 1년은 매우 바빴습니다. 그리고 첫해 너무 선수들 입장에서만 통역을 하여 안준호 감독님께 많이 혼나곤 했습니다. 통역이라면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2년차부터는 양쪽을 고려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 외국 경험이 짧기 때문에 오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불편함은 없었는지

▲ 딱히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농구와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통역을 하는데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면접 때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농구에 대한 지식과 직무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것을 어필하여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감독이 A작전을 지시했는데 제가 잘못 정보를 전달하여 선수가 B작전을 수행한다면 감독은 전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엄청나게 혼이 나겠죠.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 단순히 통역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 신경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쉬는 날에도 외국인 선수가 문자를 보내면 바로바로 답을 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택시를 타는데 기사님이 목적지를 다르게 이해한 경우 혹은 음식을 주문하는데 직원이 잘못 알아듣는 경우 등 이런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숙소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선수의 경우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가족이 있는 선수의 경우 가족과 함께 아파트에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들을 위해 일일 운전기사가 됩니다. 다시 말해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모든 것을 도와준다고 보면 됩니다.

 

 

- 가끔 돌발행동으로 이슈가 되었던 외국인 선수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들의 돌발행동으로 힘든 적은 없었는지

한 번 없었습니다. 삼성은 외국인 선수를 선발할 때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외국인선수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농구의 특성상 이 선수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인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팀으로 시너지를 내는데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삼성 썬더스는 선수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최근 프로농구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국인 선수 중 삼성 출신 선수는 없었다. 한국농구에서는 외국인 선수의 의존도가 상당하기에 종종 자만심이 높은 선수들은 심판 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벌금을 많이 물거나 코트 밖에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다. 작년 LG에서 뛰었던 데이본 제퍼슨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데 몸 풀기를 하는 등 비 신사적인 행동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아 기업의 이미지를 많이 실추시켰다. 비록 우승횟수는 많지 않지만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구단을 운영하는 한국 농구의 특성상 삼성이 외국인 선수의 인성을 보는 것은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유지 시키는 하나의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 통역을 언제까지 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통역을 6년째 하고 있는데 사실 저도 이렇게 통역을 오래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구단의 통역을 맡고 있네요. 제가 쉰 살까지 통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쉰 살이 돼서도 피자배달을 해줄 수 없잖아요?(웃음) 이건 모든 통역들의 고민이기도 하고 저의 고민이기도 한데 계속 고민하고 일을 하면서 저의 미래를 찾으려고 노력중입니다.

 

 

- 현재까지 일하면서 발견한 미래의 직업이 있다면?

▲ 비시즌 기간 동안 미국을 방문하곤 합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중입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모르는 일이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회를 엿보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임준석 통역과 그를 지도 했던 사뮤엘데니(Samuel Alexander Denny Jr.) 교수

 

 

임준석 통역의 모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그의 옛 지도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를 지도했던 사뮤엘데니 교수는 “임준석 통역은 어법에 맞지 않는 영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또한 그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여러 인종과 국가에 대한 차이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통역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아마 이러한 성격과 기질이 비록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지 않았지만 통역을 하는데 있어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대학시절 꾸준한 자기개발이 그를 통역이라는 위치에 올려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