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학수
십여년전 신문사 선배는 골프만 치면 늘 이기려고만 했다. 거의 싱글 수준의 골프실력으로 신문사 기자들 사이에서 그의 승부욕은 유별났다. 뜻하지 않은 OB가 났다든지, 미스샷이나 퍼팅 미스를 할 때면 “잘 안 맞는다”며 툴툴대기 일쑤였다. 간혹 후배의 드라이버 거리가 멀리 나가고 버디 찬스라도 잡으면 얼굴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자기가 해야 할 버디를 후배가 잡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느낌에서였다. 비단 골프뿐 아니라 신문사근무서도 그의 성격은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뛰어나 우수한 기자로 평가받았으나 자기의 잘난 점만 내세우고 남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선배는 젊은 나이인 40대 후반에 신문사를 떠나고 말았다.
골프 치는 매너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골프를 치면 그 사람의 매너와 인격, 태도 등이 잘 나타나 성격을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OB를 내면 규칙대로 2타를 까먹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대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는 이도 있다. 남이 잘 안본다고 볼을 좋은 자리로 옮긴다든지, 심지어는 더블보기 해놓고도 보기했다고 스코어를 속이는 이도 볼 수 있다.
스포츠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어떤 사람이 무슨 종목을 좋아하는가는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 스포츠 심리학자 스처, 애슐리, 조이 등에 따르면 1,596명의 미국대학남자신입생들을 5년간에 걸쳐 조사를 한 결과, 스포츠 종목과 성격간에는 상당히 분명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서 개인스포츠를 즐기는 학생은 팀스포츠를 즐기는 학생보다 내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팀스포츠를 즐기는 학생은 개인스포츠를 하는 학생보다 외향적이고 이타적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골프, 수영, 육상, 레슬링, 복싱, 유도 등 개인종목의 선수들이나 동호인들은 일관성이 높고, 내향적이며 자기 통제성이 뛰어나며, 농구, 야구, 축구, 하키 등 단체 종목의 선수나 동호인들은 사회성, 책임성, 동조성, 외형성이 월등하다는 결과를 여러 조사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상당히 통찰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개인종목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아주 높고, 단체종목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일상 생활에서 많이 체험했으니까 말이다.
신문사 선배가 특히 좋아했던 골프는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성향을 부추키는 속성이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골프는 자신이 심판과 주심을 모두 맡아서 하기 때문에 조용하면서도 승부사 기질이 발동되야 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4명이 함께 라운드를 할 경우, 자기를 뺀 3명은 모두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오로지 믿을 것은 자기 개인의 실력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인 모 프로골퍼는 “골프는 룰에 따라 움직이는 대표적인 신사운동 같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한 경기이다. 상대의 실수는 나의 기쁨이고, 나의 실수는 상대의 기쁨인 것이 골프이다”며 “한 타 한타 이기심과 경쟁심이 녹아든 골프를 과연 신사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고 했던 오래 전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복싱, 유도, 육상 등 개인종목에서 세계 최고에 오른 일부 스타출신들이 스스로 영웅주의의 환상에 빠져 개인적, 사회적 일탈행동을 하는 것도 종목의 속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오랫동안 종목에서 배여든 개인의 무의식적인 충동과 내면화된 개인적, 사회적 요구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해 폭력과 탈선 행동 등을 범하고 한다. 아마 복싱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에 올랐다가 은퇴한 모 선수의 행동을 가까이서 보고 크게 실망한 적도 있었다. 자기만 알아주기 바라고, 주위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의 행동은 누구에게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개인종목 뿐 아니라 단체종목의 개인적인 일탈행동도 단체종목의 공격적인 성향이 표면화됐을 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배트를 휘두르는 야구와 하키, 아이스하키 등과 발과 손을 쓰는 축구와 농구 등을 한 선수들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폭력을 휘둘러 사회 문제화되기도 한다.
스포츠를 즐기다보면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개인적 성격과 특성이 나타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성격과 특성 등이 개인적 장점으로 이어져야지, 단점으로 드러날 경우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명약도 잘 쓰면 보약이지만, 잘 못쓰면 독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스포츠를 통해 성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즐기는 스포츠는 여러 분의 성격에 대해 어떤 점을 말해주고 있는가. 신문사를 떠난 선배를 생각하면서 이따금씩 하는 골프를 통해 자아 성찰을 자주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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