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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끔찍한 살인사건과 텍사스히트의 평행이론

 

 

 

 

글/원준연

 

 

 

 1963년 38명의 뉴욕시민들은 한 이웃소녀가 살인마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창문으로 지켜만 봤다. 그녀는 28세의 키티 제노비스였다. 키티의 비명소리는 모든 동네에 울려 퍼졌다. 주민들은 창문으로 키티가 살인마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봤지만 그녀를 도와주러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에 여러 차례 찔린 키티가 가까운 건물로 피신했을 때, 그 건물의 7층에 거주하던 한 주민이 이를 창문으로 확인했다.

 

살인마는 자신의 차로 돌아갔고, 키티는 아직 살아있었지만 그 목격자는 창문을 닫고 못본척 했다. 키티는 창문을 열고 자신을 본 주민이 있는 다른 아파트로 간신히 갔다. 다른 건물의 주민은 피를 흘리는 키티를 바로 앞에서 확인했지만 살인마가 다시 차에서 나와 그녀를 살해할 때 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건물에서 여덟 차례 칼에 더 공격을 당했고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 끔찍한 살인사건의 희생자 키티 제노비스(왼쪽), 살인자 윈스턴 모슬리(오른쪽)
츨처: Coursera, Introduction to Psychology >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뉴욕시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가 경악했다. 38명의 주민이 살인현장을 방관하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끔찍한 살인만큼이나 전국을 소름끼치게 했다. 이에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로빈과 라테인은 이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1969년, 대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방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혼자 있게 하거나, 어떤 사람들은 여러 명씩 같이 있게 했다. 그리고 대기실 마다 문틈으로 연기를 새어 들어가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불이 난 것인지 그냥 단순한 수증기인지 에어컨 증기인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문틈으로 연기가 새어 들어오자, 혼자서 대기실에서 기다린 사람들의 75%는 2분 이내에 보고했다. 그러나 여러 명씩 기다리던 사람들은 6분 이내에 13%가 보고했다. 사람 수가 더 많을수록 그 비율은 더욱 떨어졌다.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 중에서 보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대부분이 "불안하긴 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어서 저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키티 살인사건과 이 실험을 토대로 사회심리학자들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방관자 효과를 설명하는 주된 요인은 책임분산 (Diffusion of Responsibility)을 꼽을 수 있다.

 

 

< 책임분산의 구조. 연관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개개인이 가지는 책임의 크기는 줄어든다.
/ 츨처: Coursera, Introduction to Psychology >

 

책임분산이란 여러 명이 절박한 상황에 연관될 때 책임감이 각각의 개인에게 분산이 되어 개인이 가지는 책임감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것을 말한다. 키티 제노비스사건에서 주민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그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꼭 도와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도 ‘꼭 내가 도와야 하나? 아마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도와줄 거야. 복싱이나 무술을 하는 사람 아니면 덩치가 큰사람이 그녀를 살인마로부터 구해줄 거야.’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피를 흘리는 키티를 목격했을 때도 ‘아마 의사나 나보다 의학적 지식이 더 많은 사람이 도와줄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방관자이론과 관련된 책임의 분산이라는 사회심리학적 개념은 스포츠상황에서도 적용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야구의 텍사스히트이다.

 

텍사스 히트란 야구에서 타자가 친공이 내야수와 외야수 사이에 떨어져 양쪽모두 잡지 못한 안타를 말한다. 영어로는 텍사스리그싱글(Texas-league-single), 텍사스리거(Texas leaguer), 텍사스리거스히트(Texas leaguer’s hit)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속칭 ‘바가지 안타’라고도 한다. 1889년 텍사스리그의 휴스턴 팀에서 인터내셔널리그의 톨레도 팀으로 소속팀을 옮긴 아트 선데이 선수가 연속해서 빗맞은 안타를 터뜨리자 톨레도 지역신문에서 "또 하나의 텍사스리그안타가 터졌다"는 제목을 달아 기사화하면서 유행되기 시작했다.

 

야구경기에서 공이 정말 절묘한 위치에 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야수들이 잡을 수 있는 공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에 떨어져서 안타를 허용하는 경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 상황이 사회심리학 현상인 책임의 분산으로 얘기할 수 있다.

 

                   < 책임분산이 야구에서 나타날 때 위와 같이 안타를 내주게 된다. / 츨처: Google >


 여러 야수가 공을 잡을 수 있게 되면 공에 대한 책임이 여러 야수들에게 분산되게 된다. 여기에 연관된 야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을 적극적으로 잡을 확률이 낮아지게 되고 ‘다른 야수가 잡겠지’ 하는 생각에 결국 아무도 공을 잡지 않을 확률이 높게 된다. 이러한 책임의 분산으로 인해 야구경기에서 텍사스 히트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외야수와 내야수사이에 떨어지는 텍사스 히트 뿐만 아니라 외야수들 사이에 떨어지는 공도 서로 미루다가 안타를 내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런 상황도 뜬공에 대한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잡길 기다리다가 안타를 내주는 것이다.

 

 

< 책임분산이 배구에서 나타날 때는 위와 같이 득점을 내준다. / 츨처: SPOTV >

 

 

배구경기에서도 공이 수비수들 사이에 애매하게 떨어지게 되면 실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도 책임의 분산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텍사스 히트와 같이 연관되는 수비수가 많아질수록 책임회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아무도 공을 리시브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책임의 분산으로 인해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과 텍사스히트.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 사회심리학이론에 의해 평행이론을 가지게 된다. 사회심리학적 이론을 스포츠에 적용하여 보는 것도 스포츠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