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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광주유니버시아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④ - [국제심판 편]






글/이아영






당신, 국제 심판을 꿈꾸나요? 그렇다면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글입니다. 꼭 읽어보아요.


안녕하세요. 스포츠 둥지 이아영 기자입니다.

저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제심판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한데요. 몇 년 전, 대한체육회에서 심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클린심판 아카데미에 참가했다가 배구 배선옥 심판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국내 심판이었던 배선옥 심판은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포부를 밝혔어요. 그런데 얼마 전 선옥씨는 대학생들의 올림픽, 유니버시아드라는 국제 대회에서 국제 심판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신의 꿈을 말하고 그 것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국제배구연맹의 심판 배선옥씨를 만나보았습니다. 스포츠 둥지 여러분! 저와 함께 선옥씨를 캐내러 가 봅시다!



농구를 좋아하던 소녀, 배구 국제심판이 되다.



스포츠둥지 - 안녕하세요! 배선옥 심판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배구 국제심판 배선옥입니다. 현재 배구 국제 연맹 소속의 국제심판으로 활약 중이며 대한체육회의 배구 상임심판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어렸을 적엔 농구를 좋아했었는데, 제가 살던 충북 제천엔 여자 농구팀이 없었어요. 대신에 다니던 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배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만약 제천에 농구팀이 있었으면 농구를 했을 겁니다. 하하.


잘 나가던 배구 선수,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배구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한국의 Youth대표팀과 Junior대표팀에 대표 선수로 선발 되어서 한 때는 제가 운동선수로써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하고 난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당시 제가 소속되어 있었던 실업팀(현재는 프로팀)에는 저보다 실력이 월등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왜인지 그 때 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입단한 지 한 시즌이 지나고 나서 감독님을 찾아가 면담을 하고난 후 저는 운동을 그만두기로 선택했답니다.


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셨던 부모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뭐하고 살 거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저 또한 막막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유년 시절에는 운동을 하느라 일반 학생들이 흔히 겪는 학교생활을 경험하지 못해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니 자격증도 따고 싶었어요. 배구를 했던 경험이 있으니 ‘배구 관련 자격증을 하나 따자!’라고 생각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지금 이렇게 제가 국제 심판이 되어 있네요?


배구 세계에서 선수로써는 청소년 대표에 그쳤지만, 심판으로써는 국제심판을 꿈꾸다.
스포츠둥지 – 선옥씨는 어떤 계기로 국제심판이 되고자 했나요?


대학교 다니면서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배구 심판은 C, B, A급 순으로 나뉘어져 있고 가장 아래 단계인 C급부터 강습과 대회에 참가하면서 절차를 걸쳐 상위 급수를 취득할 수 있어요. 실업팀까지 운동했던 저는 B급부터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 바로 B급을 취득하고 대학교 3학년 때 국내 A급 심판 자격을 취득했어요.


A급 심판과정은 “특별 심판 강습회”라는 명칭으로 선수 출신만 따로 모집을 해서 강습을 해요. 사실 저는 그때만 해도 강습회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에 같이 배구를 했던 선배가 강습회를 같이 듣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제가 심판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취업 준비해야 해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혼자서 하기 싫었던 선배 언니는 저에게 같이 하자고 계속 연락이 왔어요. 그 때 심판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서 배구 심판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현재 그 언니는 다른 일을 하고 있고 하기 싫다던 저만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sia U23 women's championship의 심판진]


대학 졸업 후 “프로배구심판강습회”를 거쳐 프로배구 심판원으로 활동했는데 그 때부터 ‘이왕 심판을 시작했으니 최고가 되자’ 그리고 ‘운동했을 때 국가대표를 목표로 삼고 운동했듯이 국제심판이 되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국제심판을 꿈꾸게 되었어요. 그리고 현재 저는 제 인생의 첫 번째 목표를 이룬 상태입니다^^


스포츠둥지 - 대한민국에 여자 배구 선수 출신 국제심판이 몇 명이나 있나요?


현재 국내 여자국제심판은 총 5명입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취득하였으니 저는 국내 5호 여자 국제심판입니다. 5명의 여자 국제심판 중 1명을 제외한 4명이 선수 출신입니다. 5명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적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 국제연맹에 등록되어있는 활동하는 한국 국제심판은 남녀 합쳐 모두 13명입니다. 총 인원수로 따져 본다면 적은 숫자는 아니죠.


앞으로 더 많은 여자 국제심판들이 필요해요”


현재 국제적으로도 여자심판들은 많이 배출하려는 추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여자 심판들이 도전을 했으면 합니다.


스포츠둥지 – 이번 광주 U대회에 배구 국제심판으로 참가한 한국 심판의 규모는 어땠나요?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심판 활동을 하는 배선옥 심판의 모습]


저를 포함한 총 5명의 한국 심판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배구 종목은 대동심판이라는 제도로 대회에 출전한 팀의 수만큼 대동심판으로써 참가 할 수 있었습니다. 남, 여 대학 대표팀이 각각 1명의 총 2명의 대동심판이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에서 대동심판이 참가하지 않아 한국 국제심판 3명이 중립심판으로써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립심판으로 참가 할 수 있었기에 최고의 행운이었고 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둥지 –  선옥씨의 도전이 젊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또래 분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 같은데 불안정적인 삶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용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 국제심판을 준비할 때는 ‘과연.. 내가 될까?’ 라는 의문을 품곤 했었는데요. 도전한 결과 지금 저는 국제 심판이 되었고, 이렇게 국제대회에 참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고 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심판의 길이 힘들어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의 이런 기분을 못 느꼈을 겁니다. 왜 이런 불안정적인 삶을 택했냐고 물으신다면, 뭔가 대단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런 대단한 대답은 없어요.


제가 국제심판을 취득하러 갔을 때 또한 영어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

을 받았었습니다. 왜 국제 심판이 되려 하냐고, 제 대답은 이거였습니다. "Because I love Volleyball."


스포츠둥지 – 배구 국제심판 활동을 하시면서 영어의 필요성은 얼마나 되나요?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경기 운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


영어는 “필요성”이라는 말보다 이제는 “필수”라는 말이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제심판들을 다른 각도로 보았을 때 ‘스포츠 외교관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각국의 심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 할수록 심판들은 더 많은 정보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구는 경기 중 경기주장만이 심판에게 규칙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때 충분하게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선수들에게 보다 더 신뢰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영어는 국제대회에서 활동함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 나콘랏차시마 Asia U17 Girls championship에 참가한 배선옥 심판]


스포츠둥지 –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체육인이라는 점이 메가 이벤트에서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순간 판단력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었던 사례가 있었나요?

또한 체육인이기 때문에 관계자들과 더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스토리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아직은 제가 어떠한 사례를 말 할 수 있을만한 그런 사례도 없고, 또 그 정도로 영어를 아주 잘 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영어를 하는 체육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열리는 큰 대회에서 국제심판 매니저를 하며 국제심판들과 국내심판의 중간 연결책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비치발리볼 국제심판 매니저를 했었는데 체육인이라 현장 및 그 종목에 대한 것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정확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배치되어있는 통역 봉사자님들이 계셨지만 해당 종목의 전문용어와 시스템을 모르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스포츠둥지 – 선수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하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잘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제심판을 꿈꾸면서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고 학원에서조차 적응을 잘 하지 못 해서 시작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2009년도에 심판은 잠깐 동안 그만두고 영어 한마디도 못 했을 적에 과감하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6개월간 다녀왔습니다. 영어를 어쩔 수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니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 2달간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애를 먹었지만, 필리핀에서 기초와 자신감을 얻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학원을 다니면서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체육인들에게 지원해주는 교육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2014 상임심판 전문교육과정, 2015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과정에 참가한 배선옥 심판]


재단에서 개설한 영어 초급, 중급을 거치며 작년에는 상임심판 전문교육 프로그램에서 영어 교육이 있었고, 재단에서 교육이 제가 국제심판 취득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국제심판역량강화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교육을 받으며 심판의 역량을 향상시켜나가고 있답니다. 비결은? 그냥 열심히만 했죠. 저 또한 다른 분들의 공부 비결을 배워가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배선옥 심판은 2014 상임심판 교육과정 수료식에서 교육생들의 투표로 모범상을 받았다]

스포츠둥지 – 광주유니버시아드 선수촌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좋았던 부분이 더 많아서 조금 불편한 것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봉사자님들이 늘 한 결같이 웃는 얼굴로 너무나도 기분 좋게 인사를 해 주셔서 기분이 참 좋았는데, 외국 심판들 또한 늘 항상 웃어줘서 본인들도 웃을 수 있고, 늘 항상 기분 좋게 일과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봉사자님들이 그렇게 인사해 주시니 저 또한 웃으면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늘 웃음 잃지 않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스포츠둥지 – 각국에서 참가한 다른 배구 국제 심판들에게 광주 유니버시아드는 어떤 대회로 기억에 남았나요?


정말 좋았다고 늘 말 했고 지금도 몇몇 심판들은 한국이 그립다며 메신저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대회 운영도 좋았고 사람들도 너무나도 친절하다고 다시 한 번 꼭 한국에 오고 싶다고 얘기를 해요.


스포츠둥지 – 도전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무조건 해라!!” 라고 말 해 주고 싶어요. 시작해 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어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본인에 대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뭐든지 꼭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한 가지에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면 무엇이던지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스포츠둥지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지난 해 2014년 5월 14일부터 21일 까지 열렸던 강습회에서 국제심판 자격을 취득하였고 평가를 거쳐 올해 국제심판으로 임명이 되었어요. 아직은 국제심판 애송이죠. 저는 저의 목표설정 하는 것을 그림을 그리듯이 하는데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먼저 하듯이 단계별로 목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일단은 심판으로써 심판을 잘 보고. 심판을 잘 본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로 국제연맹에서 지명을 받아 활동하는 심판이 되는 것이에요.
세 번째로 올림픽에서 심판을 해보고 싶고요.
네 번째로는 아직 아시아 지역이나 세계 대회 시 여자 심판 감독관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여자 심판 감독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좋은 심판들이 국제무대로 나가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한때 농구 선수를 꿈꿨다던 배구 심판 선옥씨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런 선옥씨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면서 늘 새로운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편한 길” 대신 남들이 잘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옥씨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선옥씨가 배구 국제심판으로써의 “네 가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스포츠 둥지가 적극 응원합니다!


이상 광주에서 이아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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