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준희
대학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결혼은 했어?’ ‘직장은 어디 다녀?’ 라고 묻지 않는 것은 인간 관계에 있어 기본 매너이다. 사소하게는 친구들과의 축구 콘솔 게임에서 ‘득점 후 리플레이 장면’은 바로 넘겨야만 한다 라는 남자들 세계의 암묵적 룰 역시 존재한다. 이렇게 이 세상 곳곳에는 조직마다, 상황마다 서로 ‘눈치껏’ 지켜야만 하는 예절이 존재한다.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배려’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세계도 그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암묵적인 룰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스포츠’ 이다. 정정당당하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스포츠 정신이 요구되는 곳에서 이러한 ‘불문율’이 존재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 또한 존재한다.
과연 스포츠 세계에서는 어떠한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스포츠 정신에 진정 위배되는 것인가?
▲kt와 한화와의 경기에서 ‘불문율’이 논란이 되었다 @출처:스포츠서울
스포츠 불문율의 중심 ‘야구’
다른 종목보다 유독 불문율이 많이 존재하는 스포츠는 바로 ‘야구’이다. 지난 달 5월 23일, kt와 한화의 경기에서 이러한 불문율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6 – 1로 앞서고 있던 9회 초 한화의 공격. 1루주자 강경학이 도루를 시도하였고 kt의 2루 베이스를 훔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진 9회 말 수비, 한화는 2명의 투수를 kt의 타석마다 연달아 교체하는 상황을 연출하였고 경기는 한화의 6 – 1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경기 후, kt의 주장 신명철은 한화 벤치를 향해 욕설과 함께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했고, 양 팀간에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이 경기에서는 두 가지의 불문율이 논란이 되었다. ‘점수 차이가 크게 나는,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승부가 기울어진 시점에서는 불필요한 투수 교체로 상대팀을 자극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야구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암묵적인 룰이자 예의이다.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야구란 것이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도 승부가 뒤집어 질 수 있는 스포츠인데, 누가 감히 ‘승부가 기울어졌다’ 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승부가 기울어 졌다는 상황은 감히 누가 판단하고 정할 수 있는 것이냐 라는 반론이다.
이 외에도 ‘홈런을 친 선수는 과도한 세레머니를 자제한 채 베이스를 돌아야 한다’, ‘노히트노런 등 대기록을 앞둔 투수에게는 기습번트를 대지 않는다’ 등의 수많은 불문율이 야구에는 존재한다. 이러한 야구의 불문율은 정말 상대팀에 대한 기본 예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인 것일까?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이 브라질을 7 : 1로 대파하였다 @출처:google
세계 최강 브라질에게 7골을 쏟아 부은 독일
2014 브라질 월드컵, 브라질과 독일이 4강전에서 만났다. 그 어느 전문가도 한 팀의 우세를 점치기 어려울 만큼 예측 불가능한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브라질의 1 : 7 일방적인 대패. 이번 브라질 월드컵뿐만 아니라, 역대 월드컵 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과로 기록될 만한 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던 필립 람은 브라질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섯 골을 넣은 채 전반전을 마쳤지만, 후반전이 시작된 후에도 상대를 계속 존중해야 한다고 서로에게 말해줬다"고 밝혔다.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생각으로 후반전에 나갔고, 브라질을 상대로 자만한 모습을 보이며 그들을 창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브라질과 브라질 팬들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는 바로 본인들이 가진 최고의 경기력으로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브라질을 상대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큰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팀을 배려해주는 것이 불문율인 야구와, 지난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끝까지 7골을 몰아넣은 독일 축구 대표팀. 과연 무엇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 “It ain’t over till it’s over” by Yogi Berra @출처:google
프로스포츠는 ‘팬’을 위해 존재한다
종목마다 차이는 있기 마련이지만, 프로화 된 스포츠는 ‘상업화’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의미는 곧 ‘팬’이라는 소비자를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올림픽과는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프로 스포츠’ 세계이다. 올림픽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발휘되고 실현되는 장이다. 올림픽 정신은 메달의 획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있는 땀과 노력에 그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 세계에서의 스포츠 정신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프로스포츠는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결과’ 역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지나치게 결과에 매몰되어 그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와 수단이 개입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정이 올바르다면, 그 다음의 목표는 바로 ‘결과물’ 이다. 그들에게는 ‘팬’이라는 결과물을 보여줘야만 하는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승리’를 원하고, 그 승리로부터 기쁨을 얻는다.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얻기 위해 적합한 가치를 돈으로 지불하고, 팀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그런 팬들을 위해 팀과 선수는 존재하는 것이다.
프로스포츠 세계는 냉혹하다. 승리가 있고, 팬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보다, 팬들에게 최선을 다해 승리를 가져다 주는 모습이 프로가 보여야 할 진정한 ‘스포츠정신’이 아닐까?
뉴욕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는 말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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