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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왜 ‘언더독’에 열광하는가?

 

 

 

 

글/이준희

 

 

 

 

‘화나 이글스’ 그리고 ‘마리한화’


 지난 5월 12일, 삼성라이온즈와 한화이글스의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이 대구에서 펼쳐졌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두 팀의 맞대결은 전혀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만년 꼴찌 한화와, 한국 프로야구 최강 팀 삼성의 맞대결은 마치 김 빠진 콜라와도 같았다.


 하지만 올 시즌 한화는 달라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 있는 플레이와 역전 끝내기 승리가 거듭되면서 ‘마리한화’ 라는 별칭까지 생긴 한화이글스에게 삼성라이온즈는 이제 ‘한번쯤 해볼만한 상대’로 변해있었다.
비 바람이 부는 9회 말, 한화의 마무리 투수 권혁이 5 : 4 한화의 한 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 승리를 가져오는 순간, 한화의 선수들은 모두 벤치에서 뛰쳐나와 환호했다. 이날 펼쳐진 삼성과 한화의 맞대결은 포털사이트 동시 접속자 수가 경기 막판 3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30만명이라는 엄청난 수치는 삼성과 한화 팬들 뿐만 아니라, 타 팀 팬들에게도 이번 맞대결이 큰 이슈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이처럼 올 시즌 프로야구의 이슈메이커는 단연 한화이글스다. 팬들로부터 ‘화나이글스’ 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얻기도 했던 꼴찌의 대명사 한화는 올 시즌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며 돌풍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5월 17일 현재 한화는 선두에 4.5게임 뒤진 6위(19승 19패)에 랭크 되어 있다. 한화의 초반 돌풍이 시즌 내내 계속 유지될 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한화 신드롬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화는 시즌 초 야구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이토록 한화의 플레이에, 한화의 승리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화이글스는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사진=일간스포츠 제공)

 

 한화이글스의 사례처럼 스포츠에서 상대적으로 실력이 열세에 있는 팀이 강 팀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심리를 심리학 용어로 ‘언더독 효과’ 라고 일컫는다. ‘언더독 효과’는 내가 평상시 응원하는 팀이 아닌 ‘제 3의 팀’을 응원할 때 주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도 대다수의 야구 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화의 돌풍에 열광하고 있고, 본인이 응원하는 팀과의 맞대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화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 왜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한화이글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정말로 ‘언더독 효과’란 심리학적으로 입증되는 현상인 것일까

 

 

 

▲Underdog Effect

 

 

 

‘언더독 효과’
‘언더독 효과’ 라는 용어는 개싸움에서 처음 유래하였다.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underdog)가 이겨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경쟁에서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1948년 미국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해리 트루먼’ 후보가 4.4%포인트 차이로 ‘토머스 두이’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자 언론들이 처음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리전문가에 따르면, 언더독 효과의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불공정성의 회복(Fairness)과 정의감의 발로(Justice)를 ‘언더독 효과’의 주요 동기로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인 능력면에서 한 쪽이 상대에 비해 너무 뛰어나게 되면, 대중들은 ‘불공평하다, 옳지 않다’ 라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 상대방의 편을 들어주게 되면서 심리적인 균형을 맞춘다는 설명이다. 얼마 전 싱겁게 끝나버린,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세기의 대결에서 필리핀의 인간미 있는 영웅 파퀴아오 보다는 무패 복서이자 세계 스포츠 스타 수입1위를 자랑하는 메이웨더에게 얄미움과 악감정을 조금 더 품게 된 것도 이를 통해 설명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언더독을 응원하는 편이 정서적 만족도가 더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언더독의 승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승리이기 때문에 그 기쁨 역시 배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 패했을 경우, 당연히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패배가 크게 실망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자기 위안의 심리가 발동된다는 설명이다.

 

 

▲ Schadenfreude Effect

 

‘샤덴프로이데’ 효과 
한편 스포츠에서 ‘Underdog’ 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는 ‘언더독 효과’ 때문이 아닌 ‘Top dog’ 에 대한 ‘샤덴프로이데(독일어 Schadenfreude)’가 적용된 결과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샤덴프로이데’란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속담 중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와 그 의미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대중들은 ‘High performer’의 실패를 은근히 바라고 즐긴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심리의 기저에는 ‘공평함을 지향’한다는 인간 본연의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잘 가는 사람도 몇 번은 실패해야 공평하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이론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에서 대중들이 OK저축은행의 우승에 그토록 열광한 것은 단지 꼴찌의 반란 때문이 아닌, 최강 삼성화재의 8연패를 막았다는 것에서 더 큰 희열과 기쁨을 느낀 ‘샤덴프로이데’가 적용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언더독 효과’ 와 ‘샤덴프로이데 효과’ 둘 중 어떠한 것이 언더독을 응원하는 심리 현상에 대한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심리학에 절대적인 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이론적 설명이 됐든, 우리가 언더독에 열광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다. 통계와 분석, 수많은 정확한 이론이 뒤집히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스포츠. 그곳에서는 절대 강자도 또한 절대 약자도 없다. 삼바 축구를 앞세운 세계 최강 브라질이 전차군단 독일에게 1 : 7 로 참패하는 모습도, 회사원, 수리공, 정원사들로 구성된 프랑스 4부리그 소속 클럽 팀 ‘라싱 유니온 FC칼레’가 프랑스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이변도 스포츠에서는 일어난다.


 오늘의 1등이 내일의 꼴찌가 될 수도, 오늘의 꼴찌가 내일의 1등이 될 수 있는 곳이 스포츠이다. 우리는 한 계단 올라가는 것조차 벅찬 사회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스포츠에서 언더독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언더독’이 ‘탑독’이 되기 힘든 우리 사회의 척박함이 반영된 결과이지는 않을까?

 

 한화이글스는 5월 17일 넥센히어로즈와의 맞대결에서 6 : 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10회 말 연장 접전 끝에 6 : 7로 뒤집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언더독의 반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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