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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축구는 전쟁이다

 

 

 

 

 

글/이준희

 

 

 

 독일 태생의 축구 전문 작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축구를 전쟁에 비유한다. “전쟁과 축구는 상당히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이는 둘 다 동일한 코드를 통해 해석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서나 축구에서나 승패가 중요하고, 또한 분명하면서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풍자와 해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축구를 “민족적 흥분과 적대감의 폭약이며 총성 없는 전쟁” 이라며 그 폐해와 부작용이 전쟁에 못지않다고 비난 했다.
 도대체 축구가 무엇이길래, 공 하나를 두고 펼쳐지는 ‘놀이’가 전쟁에까지 비견되는 것일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인 것일까?

 

            ▲K리그 최대 더비 수원과 서울의‘슈퍼매치’ 사진=아디다스 제공

 

K리그 속 작은 전쟁 ‘슈퍼매치’
 지난 4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 K리그의 최대 라이벌 수원과 서울의 이번 시즌 첫 번째 ‘슈퍼매치’가 펼쳐졌다. 양 팀의 서포터즈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양 쪽 골대 뒤편에 자리잡고 서로를 향한 도발적인 응원과 퍼포먼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져있었고,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단순한 축구 경기 그 이상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경기장 내에 차가운 긴장감이 가득했다.
 서포터즈들 뿐만 아니라 양 팀 선수 역시, 이 경기가 결승전이라도 되는 듯 무척 거칠고 투쟁심 가득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수원의 주장 염기훈 선수는 “슈퍼매치는 등 뒤의 이름이 아니라 가슴에 달고 있는 엠블렘의 무게로 뛰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며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표현했다. 하대성 선수는 FC서울 소속 선수 시절, 슈퍼매치를 앞두고 “수원과의 경기는 국내판 한일전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라며 비장한 각오를 보이기도 했다.


 

‘지지대 더비’에서 ‘슈퍼매치’로
 이쯤 되면 더 이상 수원과 서울,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는 단순히 축구라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하나의 ‘작은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기에만 특별히 승점 6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경기만큼은 전쟁에 비유될 정도로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서호정 축구전문기자는 자신의 SNS에 슈퍼매치에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왜 슈퍼매치는 특별한가? ‘절대악’으로 여겨지는 상대를 이기겠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가장 이글거리는 경기이고, 이기지 못하면 그 증오심이 자신의 팀에까지 불 붙기 때문이다.” 슈퍼매치 속에서 수원과 서울 양 팀은 서로를 단순한 라이벌을 넘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안양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 하기 전, 이 라이벌 매치는 수원과 안양을 연결하는 길목인 지지대 고개의 이름을 따 ‘지지대 더비’라 불렸다. 지지대 더비의 역사는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 시절부터 시작됐다. 1998년 말, 수원의 조광래 당시 수석코치가 김호 감독과의 불화 끝에 안양LG의 수장으로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로도 두 감독은 서로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자주 대립각을 세웠다. 이어 안양에서 활약하다 프랑스리그로 진출했던 서정원이 친정 팀이던 안양이 아닌, 수원으로 복귀하자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 후 안양LG는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고 FC서울로 새롭게 창단하였고 이때부터 수원은 FC서울을 연고지를 버리고 떠나간 ‘패륜아’ 취급을 하며 더욱 수위를 높여 비난하였다. 양 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때때로 전쟁은 매우 사소한 이유로 발발하기도 한다. 수원과 서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역사적 갈등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전쟁으로 변모하기에 충분하다.

 

슈퍼매치? 우리는 진짜 전쟁이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두 팀 셀틱과 레인저스의 팬에게 대한민국 K리그의 최대 라이벌 매치인 ‘슈퍼매치’를 소개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돌아오는 대답은 아마 이럴지도 모른다. “슈퍼매치 때문에 사람 죽은 적 있니?”
 이 대답 한 마디로 ‘올드펌’ 더비는 설명이 끝난다. ‘올드펌’ 더비는 스코틀랜드의 두 팀 셀틱과 레인저스 간의 라이벌 매치를 지칭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더비 매치 중 하나로, 격렬하고 치열한 경기가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 클라시코 더비(레알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밀라노 더비(AC밀란 VS 인터밀란) 와 더불어 세계 3대 더비 매치로 꼽히기도 하는 ‘올드펌’ 더비는 단순한 지역 라이벌 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펌’ 더비

 

 이 더비의 원인에는 양 팀간의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셀틱은 아일랜드 이주민 계열의 가톨릭 신자들의 후원을 받아 창단된 클럽이다. 반면 레인저스는 개신교를 믿는 스코틀랜드 토착민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클럽이다. 1920년 대에 영국 전역에 불어 닥친 반 아일랜드적 정서가 합쳐지며 글래스고를 연고로 하고, 가톨릭을 경멸하는 레인저스의 팬이 급격히 늘어나 양 팀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지금도 올드펌 더비가 펼쳐지면 셀틱 서포터즈는 아일랜드의 삼색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는 반면, 레인저스의 서포터즈는 영국 국기를 흔들며 응원을 한다

 

경기장 안과 밖이 다른 팬
 수원과 서울 양 팀의 팬과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는 서로를 잡아 먹을 듯이 으르렁거리고, 비난한다. 하지만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는 순간, 선수와 팬들 모두는 이성을 찾는다.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축구 선수’라는 공통점을 가진 동료로 돌아간다. 경기 후 양 팀 선수들은 악수를 하고 헤어지며, 상대팀 라커룸에 방문하여 수고했다는 인사와 포옹을 나눈다. 팬들 역시 승리와 패배의 기쁨과 아쉬움을 가진 채 경기장을 떠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몸을 싣는다. 버스 안에는 파란 유니폼과 붉은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만원 버스에 뒤섞여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쟁에 참여한 전사에서 다시 이성을 갖춘 하나의 성숙한 시민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각자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가지고는 있지만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반면 ‘올드펌’ 더비에 ‘이성’ 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드펌’ 더비가 펼쳐질 때면 양팀 서포터는 더 이상 한 나라 한 민족이 아니다. 그들은 적이 된다. 가상의 적이 아닌 실제의 적 말이다. 최근 10년간 양팀 서포터의 충돌로 무려 10명이 사망하였고, 경기 당일 응급실에 실려가는 환자수는 평소의 9배에 이를 정도이다. 경기장 근처에는 2000명에 이르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어 혹시 모를 유혈충돌에 대비한다.

 

모든 축구는 승패가 있는 전쟁
 수원과 서울의 ‘슈퍼매치’,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펌 더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이 펼치고 있는 축구는 분명 전쟁이다. 전쟁에서 무승부란 있을 수 없다. 축구에서도 축구팬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결과는 무승부이다. 그것도 0 대 0 무승부. 축구란 전쟁처럼 승부를 가릴 수 있을 때 그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정말 원초적인 신체 능력 하나로, 축구화를 제외한 그 어떠한 도구도 없이 몸과 몸이 부딪혀 결과를 내는 스포츠. 이것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승자가 환호하고 패자가 좌절하는 순간이 아닐까.
 잉글랜드의 공격수였던 게리 리네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공 하나를 90분동안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최근의 축구 흐름을 볼 때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라는 명제는 크게 틀린 말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결국 ‘누군가는 이기는 게임’ 이라는 것이다.

 

▲축구는 공 하나를 두고 펼쳐지는 ‘전쟁’이다 사진=LG전자 제공

 수원과 서울의 지난 5년간 펼쳐진 16번의 슈퍼매치에서 무승부는 단 2번에 불과했다. 그만큼 매 경기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고 정신력이든, 실력이든 무엇인가 상대보다 앞섰던 팀이 승리를 가져갔다. 한 순간의 실수는 곧 실점과 패배로 이어진다. 양팀 선수들은 90분 내내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축구다. 그리고 이것이 축구여야만 한다. 축구는 또 다른 전쟁이다. 방심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된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가 ‘생과 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축구는 그 이상의 문제이다.” –빌 샹클리(前 리버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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