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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마라톤을 향해 꿈을 보다-2

 

 

이원희

 

 

 

“여보 나랑 같이 뛸까?”

 

남편의 물음에 그녀는 너무 고마웠다. 김효근씨도 아내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전에 그는 마라톤을 해본적은 없었지만 산과 함께 지내온 강원도 출신답게 뛰는 것은 자신 있었다. ‘마라톤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아내의 걱정에 남편은 ‘손잡고 같이 뛰면 되지, 어려울 게 뭐가 있냐’며 껄껄 웃었다. 이후 부부의 신발장에는 언제나

 똑같은 두 쌍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김미순씨(우)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하다

 

2005년 10월 춘천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 부부가 뛰었던 첫 마라톤 풀코스다. 김미순씨는 긴장이 되어 전날

푹 자지 못했다.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해 속도 좋지 않았다. 밤새 잠을 설친 것은 남편 김효근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에게는 아내가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책임감도 뒤따랐다. 둘은 서로 운동화 끈을 묶어주며 완주를 다짐했다. 이내 부부는 손을 꼭 잡으며 출발선에 섰다. 곧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고 동시에 부부는 힘찬 발걸음을 뗐다.

 

김미순씨가 마라톤을 통해 느낀 것이 있었다. 바로 남편의 사랑이었다. “마라톤을 하면서 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여보, 단풍이 멋지네’ ‘여보,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저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서로의 믿음과 사랑 덕분이었을까. 부부는 춘천 마라톤 풀코스 4시간 40분대의 좋은 기록을 세웠다.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다

 

“우리 대한민국종단 울트라마라톤에 도전 해보자”

 

어느 날 문득 꺼낸 아내의 제안에 김효근씨는 깜짝 놀랐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울트라 마라톤이라니. 일반인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울트라 마라톤은 풀코스 보다 긴 거리를 뜻한다. 울트라 코스라고하면 보통 풀코스의 두 배 거리(84.39km)이상을 의미하며 국제육상연맹에서는 울트라마라톤의 기본으로 100km로 공인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종단 538km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이전에 했던 마라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리다. 부산 태종대를 출발해 김해-밀양-청도-대구-왜관-구미-상주-문경새재-괴산-음성-경기도 광주를 지나서 하남-상일동-천호대교-용산-서울역-구파발-벽제-금촌-문산-임진각까지 제한시간 127시간 내에 완주해야 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마라톤 대회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김미순씨이지만 자신조차도 제대로 완주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다. 이때 남편이 ‘한 번 해보자’며 그녀에게 힘이 되어줬다. 옆에 있던 딸까지 거들며 엄마의 지원군이 되었다. “엄마! 할 수 있어! 엄마가 아니면 누가 해!” 그녀는 남편과 딸의 손을 꼭 붙잡으며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대회당일, 아침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이 부부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참고로 부부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의 울트라 마라톤 도전자다. 이내 사람들이 출발선에 모여들었다. 앞으로 이들에게는 극한의 레이스가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두렵지 않았다. 뒤에서 부부를 바라보는 딸이 있기에 더욱 든든했다.  

 

야심차게 출발한 마라톤이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때는 여름이 한창 찾아 올 무렵인 7월이었다. 도로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등에는 땀이 넘쳐흘렀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보지만 땅에는 금세 땀방울이

떨어졌다. 도중 얼굴에 생수를 부어도 더위를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양말은 구멍이 나있고 신발은

헐거워졌다.  

 

더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끼니는 길에서 쭈그려 앉아 해결해야 했고 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위에서 잠을 청했다. 그나마 시간 내에 완주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쉴 수도 없었다. 밤에는 축축한 비까지 내리는 날씨에 부부는 애석함을 느꼈다. 어느 덧 마라톤 경쟁자들의 숫자는 81명에서 33명으로 줄어 있었다.

두 사람의 체력은 떨어져갔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손을 잡고 있던 김효근씨가 아내를 안심시키려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남편의 간절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쉰 부부는 이윽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효근씨와 김미순씨,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538km의 코스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뜻하는지를. 그리고 지금 지나가는 레이스는 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기적을 바라며 앞을 바라보던 김효근씨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보..다 왔어!”

 

 

 

 

인생은 아름답다.

 

 이 세상의 간단한 이치를 가족은 알고 있다. 결승 지점을 통과한 세 사람은 부둥켜 울었다.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서로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사랑이 더 컸으리라. 앞으로도 가족은 똘똘 뭉치며 험한 세상을 이겨나갈 것이다. 잃은 것이 있다면 얻는 것이 있다고 부부는 말한다. 건강을 잃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가족애를 얻은 거 같아 아내 김미순씨는 언제나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어 옆에 있던 남편 김효근씨가 살포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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