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엄윤진
▲이영표 해설위원(왼쪽)과 조우종 아나운서(오른쪽)
[사진출처-이영표 해설 트위터]
많은 것들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던 2014 브라질월드컵. 이번 브라질월드컵의 최고 반전은 무엇일까? 스페인의 조별리그 탈락, 코스타리카의 8강 진출, 브라질 축구의 몰락 등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반전은 이영표 해설위원의 화려한 등장이 아닐까 싶다. 크게 본다면 KBS 중계팀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월드컵 중계는 그 어느 월드컵 때보다도 지상파 방송 3사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SBS가 단독으로 중계방송했으나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SBS와 함께 KBS, MBC가 같이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특히 해설진에 가장 큰 변화를 주면서 시청률경쟁은 불꽃을 튀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해설위원으로 뛰어든 것이다. MBC는 송종국·안정환 해설위원, SBS는 차범근·차두리 해설위원, 그리고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맡았다.
월드컵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필자는 송종국, 안정환 해설위원과 김성주 캐스터 가족이 출연하는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즐겨보는지라 MBC 중계를 기대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 역시 개성 있는 MBC 중계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SBS는 입담좋은 배성재 아나운서가 차범근, 차두리 부자 해설위원과 함께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KBS는 초보라고 할 수 있는 조우종 아나운서과 해설을 처음맡은 이영표 해설위원이 이끌어 경쟁력에서 밀릴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시작한 직후, 사람들의 이목이 이영표 해설위원에 집중이 되기 시작하였다.
➀‘문어’ 영표의 등장
처음 그의 해설 스타일은 예상대로 반듯하고 정직한 인상처럼 친절하면서도 교과서적인 느낌이었다.
그런 이영표 해설위원의 존재감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뛰어난 예측력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몰락, 예상스코어 적중, 키 플레이어까지 예측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예언이라 칭하며, 이영표 해설위원을 예언가 수준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해외 언론에서까지 이영표 해설위원의 예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그에게 주목을 했던 사람들이 그의 비밀노트가 공개되면서 그의 정확한 예측은 단순한 예언과 우연이 아닌 정확하고, 많은 분석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축구해설을 단순히 일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축구를 빅데이터로 활용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비밀노트 [사진출처-KBS 방송 캡처]
이 비밀노트가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영표가 단순히 선수출신으로서의 감과 경험만으로 해설위원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기 위해 많은 노력과 분석,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KBS 중계팀의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➁캐스터와 해설위원의 적절한 역할 분배
이영표 해설위원의 파트너인 조우종 아나운서는 타 방송사 김성주, 배성재 캐스터와 비교했을 때, 축구중계의 ‘신생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월드컵 중계 경쟁이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과 호흡으로 타 방송사와는 차별화를 두었다.
조우종 아나운서는 자신이 돋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경기의 전반적인 상황만을 설명하고, 나머지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전문적인 분야는 모두 이영표 해설위원에게 고스란히 양보한다.
이는 전체적으로 안정을 주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중계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서로 한마디라도 더하려다가 오히려 경기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여 차별화를 둔 것이다.
또한 이영표 해설위원의 중계를 듣고 있다 보면 축구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확한 정보와 궁금증을 적재적소에 해결해주는 신통함, 축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이영표를 찾게 되었다.
➂때로는 편파적으로, 때로는 냉철하게
이렇게 정확하고, 올바른 해설만 할 것 같았던 이영표가 편파해설을 해서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조별리그 C조 경기에서 이영표는 “일본 유니폼을 보면 선수시절이 생각나 편파해설이 염려된다. 머리는 일본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중계 가운데 코트디부아르가 일본에 역전을 성공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시원하다”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계는 사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다. 중계석은 중립의 입장에서 사실을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리원칙대로 할 것만 같았던 이영표가 천진난만하게 편파해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비난이 아닌 일본의 패배에 함께 즐거워하고, 이영표의 또 다른 모습과 매력에 빠져들었다.
▲조우종 아나운서(왼쪽), 이영표 해설위원(오른쪽)
[사진출처-KBS 월드컵 중계화면 캡처]
한 편으로는 대표팀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이영표는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월드컵에 경험 쌓으러 나오는 팀은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알던 이영표 해설위원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때로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때로는 열정적이고 감정적으로, 때로는 냉철한 그의 모습.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이영표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움을 느끼고, 점점 그를 기대하고 있던 것이었다.
④非선수출신 해설위원들에게는 없는 그의 무기
선수출신 해설위원과 비선수출신 해설위원과의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선수출신 해설위원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느낌과 감정, 경험들을 가지고 중계에서 자신의 경험을 상황에 녹여 시청자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비선수출신 해설위원에게도 장점은 있다. 뛰어난 표현력과 정확한 정보 전달, 조금은 더 시청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수출신인 이영표 해설위원은 비선수출신 해설위원이 가지고 있는 장점마저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함께 보는 것처럼, 때로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 이영표 해설위원은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앞으로의 중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스포츠 중계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중계와 해설을 하는 데 있어서 결코 정해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은 우리나라 모든 중계진이 배워야 할 정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진심을 담은 노력 그리고 열정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과 더욱 멋진 반전의 주인공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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