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문수
체육수업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고, 학생들의 통제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체육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물론 체육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시대를 사는 성인들의 과거 학교교육에서 체육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는 체육교사들이 각성해야 될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만연된 체육 경시 풍조를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체육이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체육 자체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해본다.
1. 눈치 보기
초등학생들이라고 하여 교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교사가 체육수업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게 되었을 때,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교사의 요구에 저항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 드러나듯이 학생들은 적극적인 저항에 대해서는 아주 짧은 시간으로 끝나고, 소극적인 저항은 당분간 지속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막 모라고 하죠. 어떤 애는 일어나서 막 화내기도 해요. 그러다 선생님이 갑자기 화를 내요. 그래서 다들 조용해지죠.” <이체육과의 면담>
“맞아요. 너무 오래 (우리가) 화내면(저항하면) 오히려 체육도 못하고 혼나기만 해요. 사실 선생님이 잘못 한 거 아니에요?” <일체육과의 면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혼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어기제’로서 작동한 것이다. 성인이라면 감정 조절을 통해 금방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아동기에 속한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나 거절당했을 때, 성인보다 더 큰 디스트레스(distress)와 감정의 상처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생님들이 우리 공부 때문에 라고 하면서 체육을 안 하잖아요. 아 그럴 때면 짜증나요. 그러면 뭘 해도 안 할 거예요.” <삼체육과의 면담>
“맞아. 어차피 (공부하고) 체육 안 할 거면서 괜히 물어봐서 기분이 나빠요. 원래 체육 안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선생님이라) 말도 못하고 답답해요.” <오체육과의 면담>
두 학생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사는 단순히 체육 한 시간 안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긴 듯한 감정의 상처를 입고 이러한 상처는 다음시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의도가 무엇이고 왜 체육수업을 안하려고 하는지, 체육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체육의 면담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은 이미 교사가 체육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견디기 힘들어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학생들의 체육 정서나 신체적 개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교사의 요구에 학생들이 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요구에 불합리성을 들어 저항하려고 한다. 이러한 저항은 적극적인 저항이라기보다는 체육수업을 하고 싶으니 시켜달라고 하는 부탁의 소극적 저항의 표시인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그들의 저항에 대해 교사들은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표출하였다.
“사실 미안하죠. 그렇다고 진도를 맞춰야하는데 밖에 나갈 수도 없고, 학생들한테 강요 할 수도 없는 거죠. 예를 들어 미술을 하다가 시간이 모자라는데 그냥 끝내고 체육 하러 나갈 수는 없잖아요.” <김과거와의 면담>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체육교과만을 통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학생들이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들을 억제하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체육을 인식론적으로는 중요한 수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인 측면에서 체육수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은 계속 반복성을 갖고, 학생들의 감정에도 상처로 자리하여 체육을 경시해도 되는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
2. 비(非) 마시멜로 체육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쉘(Walter Mischel) 박사는 아동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실험(The Marshmallow Experiment)을 실시하였다. 3시간 정도 공복을 유지하게 해서 배가 고픈 학생들에게 마시멜로 한 봉지를 건네주면서 지금 당장 먹을 수도 있지만 30분을 더 참으면 그 보상으로 마시멜로를 추가로 한 봉지 더 주겠고 하였다. 이는 당장의 충동과 감정을 얼마만큼 잘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만족지연능력’이 성공적인 인생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금의 학교 체육은 어쩌면 마시멜로 실험에서의 마시멜로와도 같다. 하지만 이 실험과의 차이는 지금 참았을 때 나중에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만족지연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받고 체육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팽배해질 수 있다. 결국 학생들은 체육을 경시해도 되는 교과로 인식할 수 있다.
“왜 선생님들은 체육을 빼먹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작년 샘은 오히려 체육을 많이 해줬어요. 그래서 애들이 엄청 샘을 좋아했어요. 근데 다른 샘들은 잘 안 해요. 그래서 어느 땐 체육이 불쌍하기도 해요.” <삼체육과의 면담>
학교현장의 체육수업 결손에 대한 연구는 더 심각하다. 윤만형(2002)의 연구에서는 1개월 동안 수업 결손 정도 가운데 1~2회가 61.03%나 나타났다. 수업을 하더라도 수업내용과의 일치여부 또한 일치하지 않음이 59.82%에 이르렀다. 결과여부를 떠나 학생들이 체육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체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교과로 전락해버리고 운동과 건강이 학교 체육과는 별개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이 현재 나타나고 이는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순환과 반복을 경험하게 된다. 보상이나 추가적인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긍정적인 능력의 향상을 보이지만 오히려 박탈이나 상처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주어지면 거부하게 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인 경우 보다 잘 수긍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또 다른 체육수업의 박탈을 걱정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편 체육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체육수업 자체를 경시의 대상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사실 한 두 번 학교사정 등으로 못하게 되면 학생들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이 자꾸 반복되는 경우엔 저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이 갑자기 바뀌고 그럴 때는 학생들이 많이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서 미안해하기도 해요. 그럴 때면 다음에 꼭 해주겠다고 하는데 약속을 항상 잘 지키지는 못해요.” <김과거 면담>
“울 반 샘이 잘 말해주시면 애들도 이해는 하는데 ‘이럴 거면 체육복을 입고 오지 말라고 하지’ 하면서 굉장히 싫어해요. 그냥 체육을 하지 말라고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샘이 화나서 더 못하면 안 되니까 그냥 참아요.” <삼체육과의 면담>
“사실 체육하면 좋고 안 해도 전 그냥 참는 편이에요. (중간생략) 모 그냥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계속 그래 왔으니까요.” <오체육과의 면담>
학생이 좋아하는 마시멜로와 같은 체육이 마시멜로 실험의 효과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교사와 학교행정가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식의 전환은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은 바뀔지 모르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서서히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체육수업을 통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Marzano(2007)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결정짓는 세 가지를 발견하였다. 첫째, 학생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교사는 교사 지배적이다. 부정적으로 들릴지라도 이것은 실제로 긍정적인 성향을 갖는다. 교사는 분명한 학습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확신에 찬 행동으로 확실한 기대와 결과를 조성하고, 이것은 내용과 행동에 있어서 확실한 목적과 강한 지도력을 제공하게 된다. 둘째, 적절한 수준의 협동(강력한 정서로서 소속감, 약속 그리고 헌신)은 실제 학습이 일어나는 교실에 존재한다. 이러한 수준의 협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교사는 학생들에게 유동성 있는 학습목표를 제공하고, 학생에 대한 개인적 흥미를 주고, 긍정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셋째,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학생들(주의집중에 문제가 있고, 소극적이며 공격적이고, 완벽 주의적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학생들 포함)의 높은 요구수준을 교사가 알고 있을 때 극대화된다. 모든 학생들이 평생 동안 신체활동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체육수업에서 창조해야할 것이 바로 긍정적인 학습 환경의 조성과 동기 마련이다.
3. 뛰어 놂 교육
교사들은 학생들이 체육을 단순히 노는 시간으로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체육교과의 가치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체육의 ‘논다’라는 것은 컴퓨터 게임처럼 흥미만을 위한 놀이로서의 의미보다는 학생들의 ‘뛰어 놂’의 문화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뛰어 논다’의 의미를 통해 재미와 협동, 문제해결, 갈등과 같은 정의적․인지적․신체적 영역을 고루 발달하게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체육을 노는 시간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운동장에 나오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통제도 안 되고. 여하튼 그러다보니 자꾸 음… 말 안 들으면 (체육을) 안 한다고 하면 애들이 조금 말을 들으니까 그러는 거 같아요. 저도 어쩌면 체육에서 공부라는 생각을 갖고 대해야하는데 그것보다 놀려주는 시간이나 선심 쓰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도 한 적도 있는 거 같아요. 반성해야죠.” <이현재와의 면담>
뛰어노는 것이 교육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계성이 중요하다. 수업 운영이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수업 내용이 일치성과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단순히 노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체육은 뛰어노는 과정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유일한 교과이다. 그 의미와 가치를 실현시키고, 유지․발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고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진다. 학교 체육의 인식이 단순히 노는 것으로 끝나버린 데에는 그 의미와 가치를 심어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의미와 가치가 없는 교육은 노는 과정 속에서도 지루함이 있고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의무적인 참여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의미 없이 노는 체육은 학생들에게 좌식문화로 입문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인은 많이 먹고 소비는 줄이려고 하는 좌식 문화중심의 생활패턴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신체활동의 부족 현상을 초래하여 다양한 질병과 건강에 위험을 높이고 청소년에게는 올바른 성장,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운동과 건강을 슬로건으로 갖고 있는 학교 체육이 오히려 좌식문화로의 안내 역할을 한다면 어불성설이요,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없애려하는 것이다.
“재밌어서 그런지 자꾸 하고 싶지만 자주 할 수 없어서 더 애타게 하는 교과가 체육인거 같아요.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죠. 그래서 그런지 체육수업 기회의 박탈은 오히려 반감을 가져오게 되는 거 같아요.” <오체육과의 면담>
“학생들도 한 두 번 안하고 그러면 ‘에이, 또 안 할 거잖아요.’ 그러면서 그냥 잘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이런 게 얼마 전 책에서 본 좌식문화로의 입문인가 봐요. 원래 잘 움직이지 않는 애들은 점점 체육 하는 것을 싫어하는 거 같아요. 정말 저부터 반성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김과거와의 면담>
학생들이 좌절감을 맛보도록 원하는 교사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체육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인식되어온 부정적인 인식이 문화가 되어 그 문화를 다시 유산으로 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훌륭한 문화유산은 계승하고 발전되어야 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문화유산을 바꾸지 않으면 부정적 사회문화로 자리매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육도 단순히 학생들에게 놀고 끝나는 놀이수업이 아니라 유의미한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제시한 교사의 감정적 협박에 대한 학생의 인식을 바탕으로 초등 체육 문제의 해결책과 긍정적인 방향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체육수업을 바라보는 학생의 관점에서 체육전담교사제의 활성화는 체육교과 인식에 대한 전환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체육 전담의 활성화를 위한 해결책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체육전담 제도는 그동안 학교에서 실제로 운영되어져 왔다. 그러나 학교상황에 따라 운영하기도 하고 운영하지 않기도 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교사의 참여 부족이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담임을 선호하고, 전담을 하고자 하더라도 체육보다는 과학, 실과, 음악 등을 선호한다. 이러한 점에서 체육전담 신청교사에 대한 가산점 부여나 학교전출시 혜택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교육대학교에서 심화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체육교육과의 역할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교대 입학시험에서 체육교육과에 대한 특별전형 제도를 마련하여 실기능력을 갖춘 학생이 들어오고,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체육전담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제도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체육전담 제도에 대한 제도적․정책적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감정적 협박과 대비되는 것으로 ‘건강한 협정’이 있다. 이는 학생들의 감정과 요구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이 체육을 좋아하기 때문에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왜 좋아하는지 교육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교사와 학생의 이해의 장을 마련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체육수업을 통한 그리고 체육수업 상황에서의 갈등 상황에 대해 교사와 학생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알고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도록 함으로써 합리적인 협정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스포츠둥지
'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여자하키, 아시아 정상에 서다. (0) | 2014.10.23 |
---|---|
’Road to Brazil’ 2010~2014 월드컵대표팀의 이야기 (0) | 2014.06.16 |
교사와 학생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0) | 2014.05.29 |
두 영웅이 함께 하던 날 - 박지성 고별경기를 다녀오다. (0) | 2014.05.27 |
2014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이야기 (0) | 2014.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