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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대한민국 여자하키, 아시아 정상에 서다.


/사진 이아영



 대한민국 여자 하키 대표팀이 드디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16년만이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의 설욕을 제대로 해주었다.


  아시안 정상에 선 대한민국 여자 하키 국가대표팀



맏언니들의 부상 투혼 그리고 눈물...


 올해 나이 서른인 대표팀 맏언니 김종은(아산시청), 한혜령(KT), 박미현(KT)의 어깨는 무거웠다.


                                                  박미현과 한혜령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 멤버인 맏언니 삼총사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경기에서 투혼을

발휘했다. 대한민국 여자 하키 대표선수들은 유독 큰 경기에서 운이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네덜란드,

중국, 호주, 스페인을 만나 전패 했고, 런던 올림픽에서는 일본, 벨기에 전에서는 이겼으나 중국과 영국 전에서 패하면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더 아쉬운 것은 2012년 1월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던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영국, 대한민국이 참가했던 4개국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만큼 전력이 좋았던 것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때에는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 A조 라운드 결과 / 런던 올림픽 예선 A조 라운드 결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표선수들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한 경기 한 경기가 너무 중요하고 또 소중했다.

 우리에게는 금메달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었다.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 중국 vs 대한민국

 

 고등학교 때부터 FIH 세계하키협회의 MVP에도 선정될 만큼 공격적인 플레이어인 박미현 선수는 최근 들어 부상으로 많은 고생을 했었지만, 고맙게도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는 큰 부상 없이 제 몫을 다 해주었다. 이번 팀 구성원 중 유일하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을 만큼 국제무대 경험이 많은 박미현은 결승 경기에서도 위협적인 공격을 수차례 강타하며 중국의 골문을 두드리며 중국을 응원하는 여럿 중국인들의 심장을 마비 시켰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종료되자 박미현은 벤치로 달려 들어와 한참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관중석에서 달려 나온 선배 엄미영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미영은 박미현과 함께 오랫동안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멤버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찡한 순간이었다.

결승 경기 후 선배 엄미영과 박미현 선수의 모습


 

 등번호 9번 한혜령선수는 시야가 넓어 빠른 판단력으로 볼 배급을 잘하며 공격적인 플레이로 상대 선수들을 위협하는 대한민국의 Key Player다. 베이징 올림픽 무대 때부터 큰 무대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한혜령은 중국팀의 견제 대상 1순위 중 하나였다.

                    부상 입은 다리에 테이핑을 감고 결승 경기에 나타난 한혜령


 워낙 플레이가 위협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 선수들로 하여금 항상 견제를 많이 받는 선수다.

한혜령은 카자흐스탄과의 예선에서 1골을, 인도와의 준결승에서 역전골을 터트려 결승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몫 톡톡히 했던 믿음직한 대표팀의 해결사였다. 그러나 결승 경기에서 한혜령은 평소와는 다르게 움직임이 다소 느리고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인도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하다 무릎과 허벅지

 부위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하루의 휴식만으로는 결승 경기를 뛸 만큼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인도전에서 한혜령이 부상을 입은 후로 중국 하키 대표 선수들은 선수촌 내에서 결승에서 만날 한국 여자 하키 선수들만 지나가면 하나같이 한혜령을 주시했다. 걷는 모양새를 보면 부상 정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팀 키 플레이어의 부상은 그들에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한국팀 코칭 스태프는 그런 중국 선수들의 심리를 흩트리기 위해 중국 선수들을 만나면 일부러 다리를 더 아픈척 하며 절뚝거리며 걸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중국

선수들은 아마 한혜령의 연기로 그가 결승에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절뚝거리며 아픈 연기를

했지만 실제로도 많이 아팠던 한혜령은 결승 경기가 시작되자 마치 정상인 것처럼 의기 양양 필드를 누비고

다니며 말도 안 되게 과감한 인터셉트로 상대방의 공격을 번번이 차단 시켰다.

 결승 경기에서 중국 선수의 볼을 가로챈 후 질주하는 한혜령 선수의 모습


 아마 한혜령이 뺏은 골 때문에 중국 선수들 여럿 혈압 올랐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혜령이 인터셉트 한 골로

인해 속공이 가능했고 분위기는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대표 선수들의 경기를 응원 온 전국의 많은 하키 선수들은 관중석에 앉아서 “방금 혜령언니가 한 거 봤느냐, 저게 인간으로써 가능한 동작이냐, 어떻게 슈팅 때리는 걸 저렇게 빨리 막을 수 있었냐, 정말 말처럼 빠르다” 등의 현장 해설을 해줘서 옆에 있던 필자는 경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대표팀에서 말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혜령 선수의 결승 경기 정말 멋있었다. 사랑스러웠다.



경기를 보던 김해 인제대 선수들은 “팀에 말이랑 사자가 있는데 우릴 어떻게 이기겠노”라며 김종은 선수를 사자라고 불렀다. 사자 같은 김종은 선수는 대표팀의 주장이다. 한 쪽 발에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을 누비는 김종은 선수는 지난 준결승 경기 때 잠시 그 완장을 한혜령에게 넘겨줬다. 격렬한 몸싸움을 하던 도중 발목에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상대팀 골 포스트 근처에서 쓰러진 김종은은 소리를 지르며 통증을 호소했고 스스로 걸어나올 수 없어 대표팀 트레이너 양혜정의 부축을 받아 겨우 벤치로 돌아 나와야 했다. 김종은이 빠진 준결승 경기는

다행히 다른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3대 1의 우승으로 마쳤다. 발목뼈가 골절되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만큼 통증이 심각했지만 다행히 골절은 없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결승 경기에 나타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필드를 누비는 김종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어쩌면 동료들과 함께 뛸 수 있는 마지막 국제무대라고 생각했을까? 몸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 주장 완장을 찬 김종은은 몸에 아무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듯 날쌔게 움직였다. 결승 경기는 우리가 승리하는 분위기로 기울었고

1대 0 상황에서 경기가 종료되기 불과 2분여 밖에 남지 않은 그 순간 김종은이 필드에서 쓰러졌다. 

넘어진 김종은과 그를 일으키러 달려 온 박미현


 부상을 입은 다리로 풀 경기를 다 뛰니 다리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었다. 김종은은 쥐가 난 듯 다리를 부여잡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포효하며 울부짖었다. 그녀가 쓰러진 곳은 바로 선수들을 응원 온 부모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곳 이었다. 그렇다보니 바로 눈앞에서 쓰러진 김종은 선수를 향해 “딸아 일어나라!”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며 울지 말고 일어나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김종은의 부상으로 경기는 잠시 중단 되었고 급기야 들것에 실려 나가고 말았다. 김종은의 아웃으로 필드는 순간 위기를 맞을 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오로지 우승해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미친 플레이를 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잘했다. 공격을 시도할 틈도 주지 않고 오히려 계속 중국 골 포스트의 문을 두드렸다.


 경기 종료 40여초를 남겨둔 순간 이번에는 한혜령이 쓰러졌다.


경기 중 쓰려져서 들것에 실려 나가는 한혜령의 모습


종아리를 움켜잡으며 김종은처럼 포효하며 울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최선을 다해 싸우고 쓰러지고, 울고, 부러진 다리로 경기에 나갈 만큼 미쳐있었다. 오늘까지만 하키 하고 이제 안 할 사람들처럼 달려들었다. 정말 살다 살다 이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한혜령은 언제 쓰러졌냐는 듯 필드로 달려 나가 동료들과 껴안았다.

                       언제 다쳤냐는 듯 금방 일어나 필드로 향하는 한혜령의 모습



    동료들의 품으로 질주 중인 룸메이트 NO.9 한혜령과 NO.7 신혜정의 뒷모습



김종은도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뱉어 내고 있던 고통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전환시키며 들 것 장비에서

일어나 달려 들어오는 팀원들의 품 속 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골키퍼 장수지의 등에 업혀 경기장을 돌며

승리를 만끽했다.


                                 골키퍼 장수지의 등에 업혀 들어오는 김종은



언니들의 빈자리를 채워졌던 든든한 동생들...
김다래(아산시청)는 맏언니 삼총사(한혜령, 김종은, 박미현)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멤버였다. 

 

                                                아산시청 김다래 선수



오늘의 결승골은 바로 국제대회를 140여회 출전한 베테랑 다래 선수의 손에서 터져나왔다.

김다래는“주장 종은이 언니가 보내준 볼이 운 좋게 자신의 앞에 와서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며 김종은 선수에게공을 돌렸다. 


오선순(평택시청)은 준결승 경기에서 한혜령 선수와 부딪히며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여자 하키 대표팀 수비의 핵인 오선순은 무릎 연골 통증으로 인해 일본과의 예선 경기에는 아예 출전하지 않기도 했었는데 준결승에서 부상을 입기까지 하자 대표팀 전력에 많은 차질이 있었다. 그러나 오선순은 부상투혼으로 결승 경기에 참가하기로 했고 다리에 온통 테이핑을 한 채 필드에 들어섰다.

                                                다리에 테이핑을 한 오선순의 모습



 오선순은 경기 내내 절뚝거리는 다리로 몸을 날려 수비 했다. 오선순은 파워가 좋고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위협적인 수비로 유명하다. 특히 결승에서 중국의 패널티 코너에서 오선순은 빛났다. 패널티 코너에 강한 중국이라 긴장되기도 했지만 오선순은 날아오는 볼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공격을 차단시켰다.


김종은, 한혜령, 오선순 등 맏언니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대표팀 전체에 전력 차질이 생기는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허재성(KT)은 상대팀 선수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선수다.

 

교체를 기다리고 있는 허재성의 뒷모습

 

  이런 선수가 무서운 것이 상대팀이 플레이어의 특징을 모르는 경우가 있고 주요 견제인물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므로 방심했다가 큰 코를 다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단거리 주파능력이 특히 좋은 허재성은 결승 경기에서 공격 진영에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써클 안까지 돌파를 시도해 상대 발에 볼을 맞게 해 패널티 코너를 만들어 냈다.

 

우리가 금메달 딴 바로 그 날, 특히 이영실(평택시청)이 몸이 좋았다. 그러나 이영실도 사실 아시안게임을 앞둔 훈련 도중 눈에 볼을 맞아 시야에 지장을 받을 만큼 큰 피멍이 부어올라 있었다. 한 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예선 모든 경기를 풀로 다 소화해내고 결승에서는 마치 지난 몇 일 동안 한 경기도 안 뛴 사람처럼 날아다녔다.

 

중국팀의 공격을 과감히 차단시키는 이영실

 


 런던올림픽에서는 최종 훈련까지 함께 했으나 명단에 오르지 못했던 이영실은 큰 무대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브라질 올림픽에서도 좋은 기량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베스트 프렌드 이영실과 김옥주의 금메달 미소

 

 

신중히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며 수비 중인 김옥주의 모습


 

 

런던올림픽에도 참가했었던 김옥주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2골을 넣으며 이번 대회 전체 골 순위 10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 김옥주는 부상 입은 여러 언니들의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김옥주 플레이 모습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른 한국팀 골문 앞에는 골키퍼 장수지(아산시청)가 있었다. 장수지는 이번 대회에서 인도와의 준결승에서의 1골을 제외하고는 카자스흐탄, 일본, 홍콩, 중국 전에서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 내내 관중들은 필드에서 뛰는 플레이어에게 관심이 쏠려 있지만 무실점을 만들어내는 든든한 골키퍼가 

있기에 오늘의 우승이 있을 수 있었다. 5경기에서 딱 1골이라니...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자 하키 국가대표 선수단

 

 

대한민국 대표팀 17번째 선수 NO.4 김영란
1, 2, 3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중국, 인도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시상식을 위해 한 곳으로 모였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시상복을 갈아입고 시상식을 준비하는 중에 김종은이 어디론가 이탈했다. 금세 다시 돌아온 김종은의 손에는 방금 경기를 뛸 때 입었던 빨간 유니폼이 있었다. 시상식을 위해 대한민국을 호명하자 선수단은 필드로 입장했고 등번호 11번인 김종은의 두 손에는 NO.4가 적힌 유니폼이 있었다.

 

등번호 NO.4의 주인공은 바로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에 대한민국 여자 하키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던 김영란 선수다. 김영란은 최근까지 대표팀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했지만 갑작스러운 무릎 부상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없었다.

 

국가대표 NO.4 김영란 선수 @ 김영란 선수의 페이스북

 

  한 몸처럼 플레이 했던 김영란 선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수들은 김영란 선수의 유니폼을 시상대 위로 가져가 1위 단상 위에 올려놓거나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등 김영란 선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경기를 보러왔던 KT 소속 김영란 선수는 누구보다 그들의 우승에 감격스러워했고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1위 단상 위에 올려져 있는 김영란 선수의 유니폼

  

김영란 선수의 대표팀 유니폼을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종은 선수

 

 

대한민국 여자 하키팀이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수고가 아니었다.

 

경기 종료 직후 기뻐하는 대표선수들의 모습

 

그들이 정상에 서기 까지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그들의 금메달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많은 하키 선배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껴안고 울고 웃는 모습을 보니 서로를 생각하는 팀스포츠 선수들의 끈끈한 정이 얼마나 깊은지... 곁에서 보며 부럽기도, 멋지기도 했다.

 

번번히 큰 무대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이들의 가슴 아픈 뜨거운 눈물, 함께 하지 못했던 동료에 대한 미안함, 믿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간절한 응원 등 그런 순간들을 이들 곁에서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멋진 추억이었다.

 

(엄미영, 조혜숙, 김성희), (박미현, 한혜령) 하키 국가대표 선수들과

체육인재육성재단 스포츠 둥지 기자 이아영의 마지막 기념사진

 

 ⓒ스포츠둥지

 

-감상용 사진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