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성수
역전(逆轉) 사전적 의미로 형세가 뒤집힌다는 뜻으로,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에선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어 승리로 이끌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사실 역전은 상당히 힘든 것이다. 실점 한다면, 상대에게 완벽히 흐름을 내주고, 지고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전승은 평소보다 두배, 세배의 힘을 발휘해야 가능한 결과다.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역전승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이들의 역전승은 멋진 드라마를 연출하며 많은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기적의 드라마’ 라고 불리는 역전승. 이제부터 어떤 드라마가 축구팬들을 울리고 웃겼는지 알아보자.
1954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서독 대표팀 (사진출처-FIFA)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대회는 대한민국이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대회이기도 하다. 결승전 매치업은 서독과 헝가리의 대결이었다. 현재 헝가리는 별 볼일 없는 실력을 보이지만 당시 헝가리는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페렌치 푸스카스, 산도르 콕시스, 졸탄 치보르, 난도르 히데쿠티 등으로 구성된 헝가리 대표팀은 52년에 열린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A매치 31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며 ‘무적의 마자르 군단’ 이란 애칭으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반면 서독은 2차 대전에서 패망하며 나라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시기였고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본선에 올랐지만 당시엔 무명에 가까운 팀이었다. 게다가 조별예선에서 이들은 한 차례 맞붙어 헝가리가 8-3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당연히 결승전에서도 많은 이들은 헝가리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전반 8분 만에 헝가리가 먼저 2골을 넣으며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그 후 서독의 거센 반격이 시작 됐고 2골을 따라 붙어 경기를 원점으로 끌고 가는데 성공한다. 서독은 이에 그치지 않고 후반전 6분을 남겨놓고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며 헝가리에 3-2 역전승을 거둔다.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파란으로 남아있으며 패전국이 최강 우승후보를 격침 시킨 이 사건을 ‘베른의 기적’ 이라고 부르고 있다. 2003년엔 이 경기를 주제로 영화까지 제작되었으며 당시 독일의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이 영화를 보고 세 번이나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수비수 튀랑은 프랑스 대역전극의 주역이었다. (사진출처-FIFA)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와 맞붙은 홈팀 프랑스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있었다. 홈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데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풋내기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경기는 프랑스 생각대로 쉽게 풀려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크로아티아의 다보르 수케르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앞서 나갔다. 경기장은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지만 프랑스는 이대로 물러 나지 않았다. 결국 수비수 튀랑의 발끝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지며 크로아티아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튀랑은 연습경기에서 조차 골을 넣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골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두 골을 성공시키며 프랑스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결국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브라질마저 3-0으로 제압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우승을 확정 짓고 환호하는 맨유 선수들 (사진출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1999년 누 캄프(FC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기적이라 불릴 만한 역전극이 펼쳐 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이 맞대결을 벌인 결승전에서 전반 6분 뮌헨이 마리오 바슬러의 선제 프리킥골로 앞서 나갔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에도 스코어는 1-0으로 유지되며 뮌헨의 우승이 점쳐졌지만 후반 45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테디 셰링엄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3분 뒤엔 올레 군나르 숄샤에르가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며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1로 승리를 거두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이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남아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해에 트레블 달성에 성공하며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매김 했다.
데포르티보는 판디아니의 활약으로 거함 AC밀란을 침몰시켰다. (사진출처- 데포르티보 홈페이지)
2003~2004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데포르티보가 보여준 역전극도 많은 팬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당시 AC밀란과 8강전에서 만나게 된 데포르티보는 산시로에서 열린 1차전 원정경기에서 4-1로 완패했다. 2차전이 남아있었지만 당시 AC밀란은 카카를 비롯해 루이코스타, 파올로 말디니 등 다수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네스타를 필두로 막강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있었기에 데포르티보의 승리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데포르티보는 2차전에서 왈테르 판디아니,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알베르토 루케 등을 앞세워 AC밀란을 4-0으로 격파하고 4강전에 진출한 것이다. 3골차 패배를 극적으로 뒤집은 데포르티보의 역전극은 역대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역전극으로 아직까지도 회자 되고 있다.
포항은 분요드코르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벌인 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사진출처-FIFA)
비슷한 사례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도 있다.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포항은 16강에서 뉴캐슬 제츠를 6-0으로 대파하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우즈베키스탄의 분요드코르. 당시 분요드코르는 거액을 투자해 스콜라리 감독을 선임했고, 왕년의 슈퍼스타 히바우도를 영입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였다. 아시아 슈퍼클럽을 꿈꾸는 분요드코르에게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필수였다. 포항 역시 파리아스 감독의 지도력이 절정에 올라있고, 데닐손, 최효진, 노병준 등 우수한 선수들이 포함되어있던 터라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1차전에선 분요드코르의 압승으로 끝났다. 전반 7분 노병준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전반 30분 분요드코로의 빅토르 카르펜코가 동점골을 기록했다. 후반 21분엔 김형일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고, 결국 후반 33분과 40분에 제파로프가 연속 골을 기록하며 분요드코르가 3-1로 승리를 거뒀다. 2차전이 남아있긴 했지만 포항에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수비라인의 중심인 김형일이 결장해야했고, 세 골차를 극복하긴 어렵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으로 돌아온 포항은 1차전과는 다른 경기를 펼쳤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포항은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였고, 파리아스 감독은 전반 37분엔 황진성을 빼고 스피드가 좋은 김재성을 투입하며 일찌감치 승부수를 던졌다. 포항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후반 1분 노병준의 패스를 받은 김재성이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후반 12분엔 추가골마저 터졌다. 데닐손이 헤딩슛이 그대로 골망에 꽂히며 2-0으로 앞서나갔다. 후반 32분엔 스테보의 패스를 받은 데닐손이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4강 진출에 한걸음 더 다가섰지만 후반 43분 빅토르 카르펜코에게 골을 허용하며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한껏 불붙은 포항의 공격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연장 전반 11분 박희철의 크로스를 스테보가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스코어를 4-1로 만들었다. 결국 포항이 4-1로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올랐고, 그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축구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대역전극은 정말 감동적이다. 더불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여 결국 역전승을 일궈내는 모습은 삶에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축구에서 어떤 역전승이 팬들을 감동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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