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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할매, 야구를 말하다


글/ 권순철(스포츠둥지 기자)




“할매, 야구 룰은 알고 야구 보는교?”


경주에 사는 야구 올드팬 구차숙 할머니(78). 그녀가 야구 중계를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이 물음에 그저 옅은 미소를 띨 뿐, 이내 다시 TV 속 야구 중계에 집중한다. 아무런 룰도 알지 못하고 그저 TV 앞에 앉아있는 것 보이지만,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부터 이른바 ‘야구 마니아’로 살아오며 한국 야구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고 한다면 오랜 야구팬들도 깜짝 놀랄 것이다.



야구룰은 알고 보냐는 물음에 시원한 어퍼컷을 날려버릴 수 있는 

‘살아있는 야구의 역사’ 구차숙 할머니를 만났다.


“니들이 야구를 알아?”

 


: 유네스코 지정 양동민속마을에 야구 할머니가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뵈러 왔다. ⓒ 권순철




< 양동할매 야구에 빠지다. >


둥지 독자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야구 할매 구차숙입니더~


Q. 야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야구를 본지는 한 40년이 되었지. 프로야구 역사가 30년 조금 넘었는데 40년이 되었다고 하니까 이상하지? 프로야구 출범 전부터 고교야구와 대학야구를 접해오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된 거지. 야구 도시 부산에 살면서 접할 기회가 많았어. 고교야구 시절 경남고등학교 최동원 선수와 선린상업고등학교 박노준, 김건우 선수를 참 좋아했었지. 야구장에 많이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라디오 중계를 매일 들었고, TV 중계가 있을 때도 다 챙겨보니 지금 이렇게 야구 할매가 되었네.




: 야구 중계를 위한 설치한 케이블. 장독대와 케이블 이색적이면서도 정감이 간다 ⓒ 권순철



< 응답하라, 양동 갈매기 >


Q.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있나요?


부산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 주위에서 왜 롯데가 좋은지 많이들 물어보는데, 머 이유가 있나. 그냥 롯데다. 그래도 계속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프로야구 원년팀 중에 이름이 안 바뀐 두 팀 중 하나가 롯데여서 더 친근감이 생겨서 좋다고 말하고 다녀. 


선수는... 롯데 선수들은 다 좋아. 굳이 몇 명 꼽아보자면 김용철 선수를 참 좋아했었어. 남자답게 생기고 야구도 잘하고. (부끄) 그 후에는 경성대 때부터 봐온 박정태 선수와 공필성 선수를 좋아했었지. 좋아하는 선수들은 꼽아보니 주로 파이팅 넘치는 선수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



Q. 기억하는 최고의 경기는?


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삼성 김일융 투수를 상대로 유두열 선수가 역전 3점 홈런을 쳤을 때 정말 좋았어. 기분 좋아서 소리도 지르고, 손뼉도 치고, 이 경기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경기야.



Q. 올해 롯데의 부진 이유는?


제대로 된 붙박이 4번 타자가 없었어. 몇 년동안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선수가 다 나가버리고, 특히, 홍성흔 선수가 두산으로 간 것이 너무 아쉬워.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고 든든했었는데.


올해 롯데는 용병 빼고는 투수가 너무 약했어. 내년에 조정훈, 장원준 선수가 돌아오면 선발 투수구성은 기대해볼 만하지. 하지만 중간계투와 마무리가 항상 불안한데···. 내년에는 잘 준비했으면 좋겠어.


타격 부분도 예전만 못했지. 올해 전준우의 부진이 너무 아쉬워. 손아섭은 혼자 너무 고군분투 중이고, 강민호 FA 때 잡아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야.


그나마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신인들이 한둘씩 두각을 보이고 있는 점이 희망적이지.



: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TV를 통해 중계되는 롯데경기에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 플레이 하나 하나에 환호와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 권순철



< 할매, 과거와 현재를 말하다. >


Q. 과거와 지금의 프로야구가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선수들의 투구자세나 타격자세만 봐도 누군지 다 알 수 있었어. 지금은 특징 있는 선구가 드물고 자기만의 개성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가장 발전한 점은 중계. 지금은 4개 채널에서 모든 경기를 중계해줘서 매우 좋아. 중계와 더불어 해설도 정말 많이 발전해서, 누구나 듣고 이해하기 쉬운 해설을 하지.



Q, 선호하는 해설위원이나 스타일이 있나?


야구 중계를 오래 들어서인지 하일성, 허구연 위원의 해설이 가장 좋고 듣기 편해. 두 분은 적재적소에 분석을 해주는데, 적중률 또한 상당히 높아.


최근에는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많이 나오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아. 일례로 이병훈 위원을 들 수 있지. 지금은 예전과 달리 잘하지만, 초창기에는 많이 부족했었어. (웃음) 특히 선수들의 사생활에 집중된 해설을 많이 했었는데, 이 부분이 듣기 불편했어. 내 생각에 선수들도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너무 많이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해설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게 세대 차겠지.



: 단출한 할머니의 화장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야구공. 추석 때 손녀가 달라고 했지만, 이것만은 안된다고 거절. 할머니의 야구사랑을 느낄 수 있다. ⓒ 권순철



Q. 다른 할머니들처럼 드라마는 안 보나?


나는 드라마 안 봐. 일과를 끝내고 돌아오면 야구부터 보지. 보통 야구가 끝나고 나면 뉴스를 잠깐 보고, 다시 야구 리뷰 프로그램을 봐. 야구 리뷰 프로그램을 보면 그날 열린 모든 경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아. 그래서인지 야구가 없는 월요일은 너무 무료해.



Q. 내가 뽑은 베스트 멤버?


아·· 너무 많은 선수가 있어서 뽑기 힘드네···. 지금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게, 롯데 팬이다 보니 롯데 위주로 뽑아볼께.


선발투수 염종석 / 마무리 : 롯데에는 확실한 마무리가 잘 없었어.

포수 : 심재원

1루수 : 이대호

2루수 : 박정태

3루수 : 공필성

유격수 : 김재박 (롯데 선수는 아니지만 정말 정말 잘했었다.)

좌익수 : 딱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중견수 : 김용철

우익수 : 손아섭


갑자기 뽑으려니 어렵네. 이건 며칠을 줘도 뽑기 힘들 거 같아.



Q. 내가 본 최고의 감독?


롯데 감독을 뽑아야겠지만, 예전부터 롯데와 잘 맞는 감독이 없었어. 로이스터 감독이 와서 ‘No Fear’ 정신으로 화끈한 야구를 했었던 기억이 나네. 재밌었지.

내 기억에 최고의 감독은 김인식 감독이야. 항상 꾸준하게 성적을 냈었고, 믿음의 야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었지. 최고 명장이었던 것 같다.




< 포항 야구장 답사기 >


: 야구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동네 딸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포항야구장에 다녀왔다. ⓒ 권순철



Q. 최근 포항야구장을 갔다 왔는데, 다녀온 소감은?


집 가까운 곳에 포항야구장이 있어 다녀왔는데, 편안하게 봤어. 내가 좋아하는 롯데 경기는 아니었지만, 야구장을 찾으니 기분 좋더라고. 예전에는 입구도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본인 출구가 딱 정해져 있어서 좋았어. 구장도 깨끗하고 선수들의 플레이도 잘 볼 수 있고, 야구 인프라가 계속 발전해 가는 것 같아 좋아.



Q, 야구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 느끼나?


많이 느끼지. 예전에는 본인이 알아서 야구 보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선수별 응원에 맞춰서 응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특히, 롯데 경기 막판에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는 모습이 제일 좋아. 팬들이 이렇게 응원을 해주면 선수들도 더 기운이 나겠지.

 과거 야구장에는 여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었는데, 지금 야구장 풍경을 보면 여성팬이 정말 많은 점도 보기 좋아.


제일 좋아진 점은 과거에는 홈팀 경기장에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오거나, 원정팀 응원을 하면 욕도 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없어진 것 같아 좋아.



Q.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다 보면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을 것 같은데?


외부에서 TV를 통해 야구를 보고 있는데, 젊은 총각이 다가와서 “할머니 야구 보실 줄 아세요?” 하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그냥 본다고 대답했더니, 룰은 알고 보느냐 등 야구에 대한 설명 및 지식을 내게 가르쳐 주는데 웃기지. 참다 참다 룰도 다 알고 야구도 볼 줄 안다고 말했더니 총각이 놀랐었지. (웃음) 내 나이 또래의 야구 보는 할머니들이 많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런 할매도 있다는 것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 올드팬으로 야구팬에게 바란다 >


Q. 올드팬으로서 프로야구 팬들에게 바라는 점?


지금 야구 인기가 많아졌어. 특히 여성팬들이 많아졌는데, 응원이 신이 나고 특정선수가 좋아서 야구장을 많이 찾는다 하더라고.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야구 자체를 좋아한다면 더 오랜 기간 야구팬으로 지낼 수 있을 거야.



Q. 야구만의 매력은?


다른 스포츠도 많이 보는 편이지만, 야구가 가장 재밌어.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 점이 가장 좋아. 역전할 가능성이 항상 있지. 요즘에는 중계도 좋아져서 보기에도 편하고 화면도 훌륭해서 더 좋아.



Q. 할머니의 꿈은?


자식들과 함께 사직 구장에 가서 롯데 경기를 보는 것!



Q, 마지막 질문이다. 나에게 야구란?


나에게 야구란 하아···. 내 남은 삶의 ‘하나의 벗’이야.




: ‘Sport Nest’ 로고와 야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한 할머니, 아직도 롯데 경기에 집중. ⓒ 권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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