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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31억의 가치가 있는 무형(無形)의 기술 ‘리더십’

 

 

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팀을 이끄는 핵심요소 ‘리더십’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 정도일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무형(無形)의 기술은 정말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지난 19일, 두산 베어스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지난 4년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맹활약한 FA(프리에이전트) 홍성흔(36)을 4년간 31억의 조건으로 재영입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홍성흔이 통산 타율 3할을 넘기는 대타자지만 전성기를 넘긴 30대 중반의 선수에게 마흔 살까지 선수생활을 보장함은 물론 31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이에 두산 베어스는 “재영입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다. 당장 내년 시즌부터 주장을 맡아주길 바란다”라며 30대 중반의 노장을 거액에 재영입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36살 노장선수에게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다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2012/2013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가 열렸다.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장거리 종목 세계최강 스벤 크라머(26)라는 선수가 있다. 우리에겐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어이없는 실격패를 당하며 이승훈에게 금메달을 넘겨준 선수로도 유명하다.

 

스벤 크라머가 주축이 된 네덜란드 남자 계주팀은 팀추월 경기에서 한 수 앞선 기량을 선보이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크라머는 경기장을 가득채운 홈 관중들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지 않고 인상을 찌푸린 채 그대로 경기장을 나가버렸다. 1위 세리머니를 하려던 동료 선수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크라머가 짜증을 내며 스케이트도 풀지 않은 채 경기장을 나가버린 이유는 골인 직전에 자신이 앞 선수와 간격을 유지하지 못해 동료의 스케이트에 정강이가 부딪혔기 때문이다.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고, 큰 부상이 발생할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크라머는 온갖 짜증이 난 표정으로 스케이트를 신은 채 뚜벅뚜벅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가 버렸다. 순식간에 네덜란드 팀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되어버렸다.

 

다음날 열린 남자 500m 경기. 7조에서 힘차게 출발한 네덜란드의 로날드 멀더가 스타트에서 큰 실수를 하며 하위권으로 쳐졌다. 이어 8조에서 출발한 오테르스피어 역시 스타트를 하자마자 큰 실수를 저질러 뮬러와 함께 최하위권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9조에서 출발한 마이클 멀더는 아예 스타트에서 넘어져버리며 꼴등을 기록했다. 홈 관중들은 탄식을 넘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네덜란드 코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최강의 기량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선수들이 스타트에서 연달아 세 번이나 큰 실수를 저지른 이 사건에 ISU 영상 중계팀 역시 놀라워하며 계속해서 이 세 선수의 스타트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이 선수들의 연달은 실수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제일 먼저 느껴진 것이 ‘리더의 부재’였다. 팀의 에이스이자 국민스타인 크라머는 자신의 실수를 동료들에게 화를 내며 시합장을 나가버렸고, 팀의 최고참인 밥데용(37)은 누군가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어린 스타가 자신을 조절 못하고 짜증을 낼 때, 선수들이 잇달아 실수를 연발할 때 그들을 다시금 일으켜 수렁에서 끌어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선장이 없는 배는 좌초하게 된다. 그렇기에 ‘집단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거액을 들여서라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