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문영광 (스포츠둥지 기자)
‘닭싸움’. 깨금발 싸움이라고도 불리는 닭싸움은 한쪽 발을 뒤로 들어 올리거나 앞으로 꺾어 올려 손으로 잡고, 같은 동작을 한 상대와 몸을 맞부딪쳐 서로 쓰러뜨리는 한국의 전통 놀이다.
닭싸움은 그동안 즐거움을 위한 전통 놀이로만 여겨져 왔다. 소풍, 엠티, 워크숍 같은 자리에서 레크리에이션의 하나로써 접할 수 있던 것이 닭싸움이다. 닭싸움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하체가 튼튼한 사람에게 좀 더 유리한 놀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전통 놀이 닭싸움을 생활체육으로 보급하기 위해 ‘(사)대한닭싸움협회’가 창설되었다. 지난 11월 초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활동을 시작한 대한닭싸움협회에 의해 닭싸움 종목이 생겨나고 규칙도 정해졌다.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기술을 겨룰 수 있는 대회도 개최되었다. 지난 11월 24일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개최된 제 1회 전국생활체육 닭싸움대회의 현장을 그 뜨거운 열기를 직접 확인해 보았다.
박진감 넘친다! 남,녀 총력전 경기모습 ⓒ 문영광
알아보자, 닭싸움 경기 규정
생활체육 닭싸움의 규칙은 대중들이 아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땅을 딛고 선 디딤발의 발목에 밴드를 채워 확실히 구분한 다음 기능발(디딤발의 반대)을 앞으로 올려 손으로 잡는다. 이때, 기능발을 잡는 손은 기능발과 같은 편 손(고정손)이며 반대편 손(보조손)은 반칙을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닭싸움 종목은 ‘총력전’, ‘왕중왕전’, ‘서바이벌전’의 세 가지 종목으로 나뉜다. 쉽게 보자면 총력전은 단체전이고 왕중왕전과 서바이벌전은 개인전이라 할 수 있다.
총력전은 미리 정한 상대팀의 왕(수탉)을 3분 내에 먼저 쓰러뜨리면 승리하는 종목이다. 많은 아군이 남았어도 왕이 죽으면 그 팀은 패한다. 총력전의 선수 구성은 15명 이내로 하되 출전 선수 몸무게의 총합이 700Kg을 넘기면 안된다.
총력전은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경기에 앞서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 왕을 맡은 선수의 센스 역시 필수조건! ⓒ 문영광
왕중왕전은 팀 별 1명씩 참가하는 1대 1 토너먼트 경기다. 3판 2선승제, 경기시간은 1분이다. 첫 판(홀수판)은 오른발, 둘째 판(짝수판)은 왼발이 디딤발이 되고 연장전은 디딤발을 자율선택하게 된다.
왕중왕전은 화려한 다리기술의 향연이 펼쳐진다. 강인한 체력 또한 필수이다. ⓒ 문영광
서바이벌전은 역시 팀 별로 1명씩 참가하여 동시에 경기장에 들어가 5분 내에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기이다. 만약 시간 내에 우승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경기장을 계속 반으로 줄여가며 진행, 최종 승자를 가린다.
그밖의 닭싸움대회 풍경. (좌) 훈남 심판, (우) 즐겁게 경기 관전 중인 정운천 대한닭싸움협회장,
(하) KBSn SPORTS 중계팀. 김기웅 아나운서와 김범룡 객원해설 ⓒ 문영광
닭싸움대회? 생각보다 재밌네!
처음으로 열리는 닭싸움대회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띈 것은 파란 경기장 매트였다. 얼핏 보면 태권도 경기장과 같은 모양새의 대회장은 무척 보기 좋았다. 예상을 뛰어 넘는 광경이었다. ‘과연 닭싸움대회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까, 잘 될까?’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은 이내 안심과 관심으로 변했다.
앉을 자리를 찾기도 전에 경기에 눈길이 쏠렸다. 여자부 경기였음에도 박진감이 상당했다. 일제히 상대편 왕에게 덤벼들었고 왕들은 그 사이를 신통하게 빠져나갔다. 재밌고 신기했다. 순간 선수로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한 경기가 끝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관중석을 둘러봤다. 적잖이 메워진 관중석에는 참가선수들과 그 일행, 호기심에 관전하러 온 가족단위 관중들도 많았다. 닭싸움대회라는 문구에 이끌려 들어온 후 경기 모습에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아예 자리 잡고 앉는 관중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닭싸움협회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대회의 질을 높였다. ⓒ 문영광
장내 아나운서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경기의 재미를 더했다. 관중석에서는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우렁찬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선수 입장 시에는 좌우에서 불을 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다수의 치킨외식업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첫 대회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총력전과 달리 화려한 다리기술을 볼 수 있었던 남자부 왕중왕전에서는 경희대 김우곤(22, 태권도학과) 씨가 우승을 차지했다. 김 씨는 “첫 대회라서 약간 긴장은 됐지만 한두 번 이기다 보니 기술과 욕심이 생겨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닭싸움의 운동효과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닭싸움이 종아리 운동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또한, 요즘 어린 아이들이 운동부족으로 골밀도가 상당히 떨어지는데 그런 부분에도 큰 효과가 있는 운동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닭싸움대회 초대 우승자로서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SNS 등을 통해서 닭싸움의 재미와 운동효과 등을 많이 전파할 것이다”라며 닭싸움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임을 밝혔다.
남자부 왕중왕전 우승자 김우곤 선수는 태권도 전공자답게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 문영광
“닭싸움 생활체육화 반드시 이뤄낸다”
닭싸움은 단일 종목으로 보자면 씨름에 이어 두 번째로 사단법인 협회로 등록된 전통 놀이다. 대한닭싸움협회 서희정 사무처장은 협회 창립 취지에 대해 “전통 놀이인 닭싸움을 현대 스포츠 종목으로 승화시켜 생활체육으로 보급하고자 대한닭싸움협회가 창립되었다. 닭싸움은 경기가 어렵지 않고 거부감 없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면서 그 운동효과는 탁월하다. 어렵게 새로 배워야하는 것이 아닌 접근의 용이성이 있는 전통 놀이를 생활체육으로 자연스럽게 보급하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대한닭싸움협회는 조만간 국민생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할 것이다. 이를 통해 공식적인 생활체육 종목으로써 인정받고 국민들에게 보급 및 확산시킬 구체적 계획을 이미 세워놓은 상태다. 협회에서는 닭싸움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규정 보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노력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서희정 사무처장은 “이번 제 1회 전국생활체육 닭싸움대회는 사실 홍보성이 강했다. 사람들에게 웃음이 아닌 스포츠로 다가가고자 했다. 생활체육으로써 닭싸움대회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는 초, 중, 고, 대학, 일반 등 체급에 맞춘 다양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닭싸움에는 예상 외로 많은 기술이 존재한다. 대한닭싸움협회는 각 기술의 명칭을 정하고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정립하고 있다. 기술 정립 후에는 전문지도자와 심판도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1회 대회를 통해 1대 심판들을 배출했다.) 현재 전반적인 대회의 규칙을 체육과학연구원의 노용구 박사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처음 협회 창립 당시부터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생활 속에 자리 잡는 스포츠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한닭싸움협회는 전통놀이도 진정한 생활체육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희정 사무처장은 마지막으로 “민속스포츠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씨름을 입에 올린다. 앞으로는 씨름보다도 먼저 닭싸움을 떠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앞으로 펼쳐질 닭싸움의 대약진을 기대해 본다.
※제 1회 전국생활체육 닭싸움대회는 KBSN SPORTS를 통해 12월 1일(토) 오전 11시부터 녹화 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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