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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소통’은 어느 전술보다 뛰어나다.

 

 

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질문있습니까, 없으면 여기서 수업 마치겠습니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질문이 없는 수업분위기 때문에 어느 교수님은 가산점을 주어 질문을 독려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 단편적인 사례만 보아도 한국사회에서 스스럼없이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각을 스포츠분야로 돌려 보면 ‘소통의 힘’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많다.

 

 

10년만에 재회한 히딩크 감독과 TEAM 2002 ⓒ 연합뉴스

 

 

먼저 단체종목을 보자면 2002년 한일월드컵 감독 거스 히딩크는 확실한 의사표현을 요구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할 얘기를 가슴에 담아두기 보다는 해줄 것을 원했다. 선수들은 처음엔 히딩크 감독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말들도 많아졌고 연습 때도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곤 했다. 속에 있는 걸 털어내고 구성원 모두가 가슴을 열어젖혔을 때 조직의 전력은 극대화된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자기 전술에 대해 곧이 곧대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면서 크게 화를 내었다. 선수가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감독의 의중대로 끌려간다면 그것 선수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독에게 전술적으로 묻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이전 대표팀 문화는 식사자리에서 선·후배 테이블이 구분되어 있었다. 히딩크감독은 선·후배를 모두 같은 테이블에다 섞어 놓았고 감독이 자리를 뜰 때까지 선수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 간의 소통하는 문화가 생겼다.


 10년 뒤인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도 이 같은 소통 문화가 이어져왔다. 주장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이 수동적으로, 기계적으로 축구하는 걸 지양했다.   팀의 중심인 구자철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선수들에게 경기 전날 공평하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대화가 부족하면 사소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미리 차단하고 팀을 더욱 돈독히 만든 것이다.

 

 

2008년, 2010년, 2012년 메이저대회 3관왕을 휩쓴 스페인 축구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혹자들은 스페인 대표팀 멤버들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화려함으로 대회 3관왕을 거머쥐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로2008 이전에는 스페인 대표팀은 실상 둘로 쪼개졌다. 카탈루냐출신과 스페인출신선수간의 갈등으로 인해 여러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같은 선수들의 갈등을 한데로 묶었고, 부진할 때마다 감독은 선수들을 보호해 주었다. 이러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덕분에 선수들은 감독에게 신뢰감이 쌓였고 항상 우승후보이지만 탈락의 고배만 마시던 스페인이 유로2008 우승한 계기였던 것이다.

 

아라고네스의 핵심포인트는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는 능력이었다.  “감독님은 뛰지 못한 선수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어요. 하루는 30분 훈련 뒤에 저를 부르셔서는 저와 같은 포지션에서 뛰었던 자신의 선수생활 일화를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고 큰 도움이 됐어요. 저와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파브레가스

-서적 ‘스페인 대표팀의 비밀’ 발췌 

 

앤디와 최경주 ⓒ SK텔레콤 조직위원회

 

개인종목으로 가보면, 골퍼 최경주 선수는 2004년 앤디 프로저를 영입하면서 그의 실력이 향상되었다. 앤디와 함께 PGA투어 6승, 종합 16승이라는 쾌거를 얻어내었다. 캐디의 역할은 단순히 골프백만 옮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선수보다 한발 앞서 코스답사를 해서 전반적인 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선수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냉정하게 조언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선수와 캐디간에는 소통이 원활이 이루어져야 신뢰감이 쌓인다. 또한 선수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잠잘 때는 어떤 자세인지 표정만 보고 그날의 컨디션을 파악할 정도다. 최경주는 캐디에 대해서 ‘경기중에 선수에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캐디밖에 없다. 코스에서 캐디는 유일한 내 편인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캐디와 선수는 신뢰가 두터워야 되며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됨을 짐작할 수 있다.

 

 

볼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박태환 ⓒ 런던올림픽공동취재단

 

박태환 선수의 경우에는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 대회 실패 이후 볼 코치와 만나게 된다. 절치부심하여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 참가하였으나 실격처리되고 만다. 절망하고 있던사이 볼 코치는 조직위로부터 4시간여만에 실격처리에서 판정번복을 이끌어낸다. 그 와중에는 박태환에게 평상시대로 하라고 조언하고 평상심을 유지할 것을 강조해주었다. “예선 때 있었던 일은 빨리 잊자. 이제부터 결승만 준비하자” 선수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었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너질 것 같았던 박태환에게 2위라는 성적을 거두게 해주었다. 2009년 이후에 박태환은 일종의 ‘경쟁불안’상태였다. 경쟁불안이란 개인종목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리적, 생리적. 신체적으로 ‘남보다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경쟁심에서 비롯된 불안이다. 이러한 것을 볼 코치가 심리상태를 잘 해소해 주어 박태환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현재 박태환은 볼 코치와 함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중에 있다.

 

 위 사례들 뿐만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감독과 선수사이에서 소통으로 일구어낸 일화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소통의 문화를 한국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0여가지 전술보다 말 한마디의 함축된 힘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서적

스페인 대표팀의 비밀, 미겔 앙헬 디아스 지음

코리안 탱크, 최경주 지음

홍명보의 미라클, 국영호 전광열 지음

이기려면 기다려라, 이운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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