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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NEST POWER STORY] “해설은 발로 하는 겁니다”-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교육 연수기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첫날 강의부터 가슴이 뛰었다. TV에서 봤던 잘 생긴 아나운서가 수업을 해 부끄러워 강사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전날 밤을 새고 출석해 내심 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흥미로운 강의를 듣다보니 잠잘 틈도 없었다.

 

 

SBS 이승윤 아나운서 ⓒ 이아영

 

 

첫 시간 강의를 맡은 SBS 이승윤 아나운서는 발성법과 표준발음 등 전문방송인으로서 배운 많은 지식을 공유했다. 해설위원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겁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소개를 시키는데……. 괜히 앞에 앉아 있다가 일찍 매를 맞았다. 교정을 시작한지 3개월 차였던 나는 한참 대인기피현상을 겪고 있었다. 입술로 교정기를 가리는 습관이 생겨 소심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자신이 없고 몇 개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래 자신 있게 말을 잘하는데 교정을 하느라 그렇다 고백을 하니 동료 교육생들은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정기를 꼈으니 환하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개강식 ⓒ 이아영

 

 

체육인재 육성재단이 주관하고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가 교육을 맡은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2기 교육은 9월1일부터 시작돼 10주간 실시됐다. 나는 교육생의 일원으로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을 공부하는데 투자하느라 지인의 결혼식에 못 간적도 있었다.  10주가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대인기피증 증상은 사라지고 자신 있게 웃고 자신 있게 말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주변에 그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5월 개설된 1기 교육생 중 몇 명은 실제 런던올림픽 경기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했다. SBS에 서울시청 핸드볼 임오경 감독과 삼성생명 레슬링 박장순 감독이 해설위원으로 활약했고, MBC에 핸드볼 홍정호(전 국가대표 선수) 해설위원이 기용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NAVER 스포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핸드볼 조은희 해설위원 역시 1기 교육생으로서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

 

 

SBS 핸드볼 임오경 해설위원 ⓒ 방송캡쳐화면

 

 

이렇듯 1기에는 소위 말해 “잘나가는” 교육생들로 포진되어 있었기에 지원서를 냈던 나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지니 서운했다. 그러나 1기 교육생 명단을 확인하고 나니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아영 기자! 왜 스포츠 미디어 교육생이 되었나?

 

“이아영씨는 현재 스포츠코칭 대학원생이고...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도 들으려고요?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에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고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제가 얼른 커야 하니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던지 함께 면접에 들어갔던 동료가 나중에 그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스펙을 쌓고 싶어서 교육에 참가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 교육은 내 인생에서 필수코스라고 생각했다. 3년 전 나는 스물네 살로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다. 당시 스켈레톤 국가대표였던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MBC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세계선수권 중계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해설위원 자리에 앉았다.

 

MBC 해설위원 당시 모습 ⓒ MBC SPORTS 방송 캡쳐화면

 

 

당시 국내에서 스켈레톤에 대한 경험이 있거나 지식이 있었던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해설은 꿈에서도 해 본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막상 큐 사인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편해졌다. 함께 했던 MBC 김완태 아나운서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위주로 잘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너무 민망한 나머지 내가 나오는 TV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교육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제가 빨리 커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심사위원들을 당황시킨 후 지원 목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앞으로 6년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개최국으로서 준비된 해설자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며 교육에 집중했다. 맹목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해설위원이 되면 꼭 써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밤을 새고 와도 수업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업은 알찼지만 종종 점심을 먹은 후 수업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하다 딱 걸린 적도 있었다. 책에 침은 안 묻어서 다행이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 할 텐데요?”

 

 교육 6주차인 10월 6일의 강의 주제는 <방송 인터뷰론>이었다. 강사는 현재 SBS에서 스포츠 취재부장인 김유석씨였다. 그날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하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잘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해설위원이랑 인터뷰랑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을 했었지만 요즘은 해설 중 멘트도 기사화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 앵글을 주시하면 시청자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인터뷰 기자의 눈을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했다. 김유석씨의 강의는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12일 금요일에 방송촬영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6일을 앞둔 그 시점에서 인터뷰에 대한 교육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나는 ‘희망 국민들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KBS, KTV에 방영된 대통령 라디오 100회 특집 방송에 출연했다. 방송을 처음 해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관련 방송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과 함께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김유석 부장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잽싸게 뛰어나가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 내게 방송의 목적, 출연하는 이유 등을 묻고는 진행자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편안한 분위기였던지라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모두 꺼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걱정할 것이 없겠다. 조금 전에 나한테 말한 것처럼 편안히 하면 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말을 길게 한다고 해서 방송에 다 나가는 것이 아니다. 꼭 해야 하는 말을 메모해두고 필수적인 대답만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조언을 했다. 그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차분하게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청와대 상춘제 앞에서 진행된 “희망 국민과의 대화” 촬영 당시 ⓒ 이아영 

 

수업을 듣는 10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바로 “해설은 발로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었다. 전KBO 사무총장 하일성 해설위원은 해설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자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해설위원이 아닌 캐스터의 역할이다. 해설자는 전문가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보다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앞으로 3주 동안 못생긴 제 얼굴만 봐야 합니다.”


전 KBS 캐스터 유수호씨가 한 말이다. 우리는 7주간의 이론 강의를 들은 후 남은 3주를 해설 실습을 하는데 보냈다. 3주 동안 유수호 전 캐스터와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교육생들은 기뻐했고 그는 두 손을 곱게 모아 미안하다고 했다.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유머를 날리는 바람에 교육생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빵! 터졌다. 스스로 못생겨서 미안하다 말했지만 수료하는 교육생들에게는 단연 인기스타였다.

교육생 이광섭씨와 유수호씨의 모습 (좌) 수료식 장면을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고 있는 유수호씨의 센스 (우) ⓒ 이아영

 

 

해설 실습을 한 첫 날에는 유수호씨가 캐스터 역할을 해주고 교육생들은 해설자 역할을 했다. 준비를 잘해온 몇몇 교육생들은 당장 현장에 투입해도 될 것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준비가 미흡했던 교육생들은 실습에 앞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유수호씨는 전문가였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피하고 언제 질문 받아도 편안히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전현직 해설가도 있고 앞으로 해설가를 꿈꾸는 교육생들도 있었다. 마치 진짜 해설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성캐스터 탄생시대가 온다! 

 2주차에는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한 명은 캐스터, 한 명은 해설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날 나는 사격 국가대표 출신 한혜경씨와 함께 2012 런던패럴림픽 복사 사격(엎드린 자세에서 사격)경기를 진행했다.

 

전 사격 국가대표 한혜경씨 ⓒ 이아영

 

 

사격 선수 출신인 한혜경씨에 비해 종목 이해도가 낮았던 나는 실습에 앞서 여러 번 경기 영상을 시청했다. 캐스터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실수가 많이 연발되는 바람에 여러 번 폭소를 터트렸다. 중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둘이서 경기 보러가서 대화하는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내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부족함을 느꼈다. 파트너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덕분에 나머지 교육생들이 웃을 수 있어서 기뻤다. 아마 수명이 몇 년은 연장되었을 것이다. 내가 캐스터 역할을 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 스포츠 해설위원은 본 적이 있는데 여성 캐스터는 왜 본 적이 없지?” 
 이번 교육을 계기로 나는 그 동안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고민 하게 되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여자였던 적이 없었다. 시대는 변한다. 앞으로 여성 캐스터의 탄생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누구라도 관심이 있다면 당장 캐스터가 되기 위해서 도전해보길 기대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먼저 마이크를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포츠 미디어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지난 10주간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보았다. 수업을 진행했던 강사들의 주옥같은 메시지와 실제로 카메라 실습을 했던 교육생들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또 한 번 교육된 27명의 예비 전문 해설가들이 배출되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을 거쳐 간 NEST POWER 인재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 이아영

 

 

* 깨알 같은 이기자 수첩 [NEST POWER?]

 

NEST(Next Generation Sport Talent)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을 뜻한다. NEST POWER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양성하는 모든 체육인재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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