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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의 모든 것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아영씨는 무슨 운동했어요?"

"저는 역도 하다가 스켈레톤로 전향했다가 봅슬레이까지 총 3개 종목 해봤어요.^^"
"아~ 역도랑 봅슬레이는 알겠는데 스켈? 이름도 어렵다. 그건 뭐에요?"

 

 필자가 역도에서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바꾼 운동선수였다는 말을 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들이다. 스켈레톤은 올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한데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흥미롭게도 스켈레톤을 이야기 하면 종목 특성이 전혀 다른데도 “컬링”과 헷갈리는 이들도 적지 않게 만났다. 2007년에 역도를 그만두고 12월에 종목을 바꾸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1998년 나가노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실제 경기장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해 여자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2007년 12월, 일본에서 1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일본 나가노 경기장 인근에 위치했던 대표팀 숙소의 모습 ⓒ 이아영

 

 

예전에는 스켈레톤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설명을 해야만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다르게 설명했다.

 

“아..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혹시 보셨어요? 거기에 보면 엎드려 타는 1인승 썰매 같은 종목 나와요. 그걸 스켈레톤이라고 하는거에요. 방송에서 스켈레톤 시범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나오는데 그게 저였답니다.”
“아~ 그러니까 대충 뭔지 기억이 나네요.”

 

 

스켈레톤 경기의 스타트 ⓒ 대한스켈레톤연맹

 

 


스켈레톤으로 기억해주세요! 
 무한도전의 인기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이 두 종목은 홍보 효과를 단단히 누렸다. 그러나 봅슬레이 특집이었기에 스켈레톤에 관한 내용은 자세히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자막에서 스켈레톤을 “스켈리톤”으로 자막 표기하기도 했다. 외래어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스켈레톤으로 정해진 이름이기 때문에 내 이름을 잘못 부른 것 마냥 불편했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스켈레톤은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스켈레톤을 검색창에 쳐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종목 덕에 활발히 기사가 나오는 편이다. 스켈레톤을 시작한 2007년에 검색 기록을 살펴보면 스포츠 “스켈레톤”보다 게임 “스켈레톤”에 관련된 정보가 더 많았다. 스켈레톤은 1인승 밖에 없다. 머리가 앞으로 향하고 엎드려 타는 이 종목은 엄청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익사이팅 스포츠다. 원통 같은 곳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봅슬레이와는 달리 스켈레톤은 얼음벽과 부딪치면 몸에 바로 충격이 가해진다. 이는 엄청난 정신력이 요구된다. 차가운 얼음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속 때문에 한 번 잘못 긁혔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안 무서워요? 속도가 얼마나 되요?  
 무서웠다. 처음 탔을 때 눈도 떠보지 못했다. 바이킹처럼 뚝 떨어지는 이상한 느낌도 아니고 청룡열차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이전, 이후에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 어찌나 중력이 강하던지 고개를 들지 못해 얼음바닥에 몇 번이나 턱을 찧어서 턱과 목 사이에 뼈가 하나 더 자란 것과 같은 혹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잘 타고 내려오면 재밌고, 잘 못타면 무서워요.” 스켈레톤 선수로 데뷔한 이후 놀이기구가 재미없어졌다. 극한의 스릴 때문이다. 한 예로 경기도에 소재한 모 놀이공원에서 나무로 된 롤러코스터가 만들어졌을 때 첫 시승식으로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초청했다. 선수들은 실제로 느끼는 체감 속도가 봅슬레이에 비해 훨씬 느리니 무섭지도 않고 큰 감흥도 없었다. 결국 탑승 후 반응이 방송사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원치 않는 탑승을 한 번 더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도 하다. 그 만큼 시속이 빠르고 중력의 3배 이상을 느끼게 되니 웬만한 놀이기구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봅슬레이 실화 영화인 “쿨러닝”은 캐나다 캘거리 경기장을 배경으로 했다. 그 경기장에 가면 쿨러닝 영화 제작과 관련한 기념표식도 세워져 있어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나는 2007-2008년 시즌에 아메리카컵 출전을 위해 그 곳에 갔다. 실제 영화에도 나왔던 경기장에 직접 가보니 너무 설레었다. 경기에 앞서 트랙워킹을 하던 중 경기장 커브가 360도로 이루어진 구간을 발견했다. 원심력에 의해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며 코스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선수들 중 90% 이상은 코스 마지막 구간에 좌측 얼음벽에 몸을 부딪치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실제로 트랙워킹 중 얼음벽에 얼음이 다 깨져 없어지고 시멘트벽이 노출된 것을 보았다. 등이 오싹해지면서 경기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 골반은 그 구간을 지나갈 때마다 벽에 충돌하며 짙은 멍이 들었다.

 

 

조종은 어떻게 하죠?
 조종은 전신을 이용해야 한다. 스켈레톤은 날이 스케이트 날과 다르게 동그랗게 생겼다. 그러나 날의 뒷부분에 엣지(EDGE)라고 부르는 날카로운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스켈레톤 날의 절반의 길이를 차지하며 선수의 하반신 부분에 위치하게 된다. 이 부분은 엎드려 탄 선수가 한쪽 무릎으로 힘을 가하면 얼음에 박히면서 방향 조종을 할 수 있게 된 구조다. 무릎을 눌러서 엣지가 얼음에 박히게 하는 행위를 엣지를 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오른쪽으로 방향 조종을 하고자 한다면 오른쪽 무릎으로 엣지를 주는 동시에 왼쪽 어깨도 썰매의 앞부분을 눌러줘야 한다. 또한 공기의 저항을 덜 받아야 기록이 더 잘나오기 때문에 고개를 많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앞을 보고 주행한다. 사실 주행의 초반에는 속력이 비교적 느린 편이기 때문에 앞을 보고 운행할 수 있는 반면 중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구간에서는 머리를 들고 있는 자체가 어렵다.

 

 

시간을 거스르는자 !
 스켈레톤 선수들은 자신이 경기를 할 트랙의 코스를 모두 외워야 한다. 그래서 경기에 앞서 트랙워킹(Track Walking)이라는 것을 한다. 종이와 펜을 챙겨 들고는 신발 위에 아이젠을 신고 얼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한겨울에 얼음동굴 속으로 들어간 기분처럼 얼굴에 한기가 느껴진다. 선수들은 이 과정에서 굉장히 집중한다. 자신이 걷는 속도로 살펴보는 느낌과 실제 경기 시 느낌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주행을 하면서 선수들은 다음 코스에 대비해 순발력 있게 운전한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벤쿠버 휘슬러 경기장을 기준으로 스켈레톤의 현재 최고 시속은 130키로가 넘는다. 잘 타는 선수일수록 공기의 저항도 덜 받고 운전도 잘하기 때문에 시속이 빠르다. 트랙워킹을 잘하고 코스를 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기 시 한 번 부딪히거나 중력의 압력을 강하게 느끼고 나면 코스를 순간 까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어느 코스에서 부딪혔는지도 잊어버렸던 적도 있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선수들은 트랙워킹을 하는 시간 동안 코스를 분석하고 운행할 라인을 구상하기 위해 진지하게 연구한다.

 

코스를 외운 선수들은 경기에 앞 서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모든 선수들이 경기 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데 선수대기실에서 그 분위기를 처음 느꼈던 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눈을 감고 느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전신타이즈, 스파이크, 헬멧 그리고 마우스피스까지 제대로 갖춘 상태에서 선수들은 원더걸스의 “텔미” 춤을 추듯 양 어깨를 교차로 흔들며 시범 운행을 해본다. 초보였던 나는 어찌나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몰래 카메라에 담아두기도 했다. 스켈레톤은 봅슬레이와 마찬가지로 모터 없이 단순히 몸과 장비만으로 운전을 한다. 무동력으로 주행하기 때문에 멈추고 싶어도 한 번 출발하고 나면 도중에 멈출 수도 없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켈레톤 날의 모습 ⓒ 이아영

 

 

타는 시간은 1분인데 준비시간은...
 스켈레톤은 경기장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60초 이내면 완주한다. 그러나 한 번 타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스켈레톤 날 관리이다.

 

 

일본 NAGANO 올림픽 경기장 훈련기간 중 스켈레톤을 정비하는 모습 ⓒ 대한스켈레톤 연맹

 

 

기록 단축을 위해서 날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한 번 닦고 나면 손에 불이 나는 느낌이다. 훈련할 때에는 날씨 때문에 손이 얼어서 괴롭지만 날을 닦을 때는 뜨거워서 괴롭다. 샌드페이퍼(일명 사포)는 표면이 거친 것부터 부드러운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선수들은 자신의 스켈레톤 날을 닦기 위해 한 쪽에 평균 100번씩 동일한 힘으로 밀어서 날을 닦는다. 표면이 거친 샌드페이퍼 일수록 마찰력이 강해 손바닥이 금방 뜨거워진다. 표면이 거친 샌드페이퍼로 시작하여 점점 부드러운 것까지 닦는데 그런 작업을 마치고 나면 손바닥에는 매번 물집이 생긴다. 동일한 힘으로 해야 하기에 한 손바닥에만 물집이 든다. 이 과정은 봅슬레이나 루지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다.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이 열렸던 US OLYMPIC TRAINING CENTER에는 장비를 점검하는 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선수들이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다.

 

 

역도 선수 시절의 굳은살이 없어지기도 전에 스켈레톤 물집을 가져야만 했다. ⓒ 이아영

 

 

 날을 잘 정비했으면 보관도 중요하다. 날을 보호하고 보온하기 위해 선수들은 정비 후 스켈레톤 날에 커버를 씌운다. 일반 물 호스를 가로로 잘라 만든 것이 스켈레톤 커버이다. 스켈레톤 날을 보온하기 위해 사이에 휴지를 접어 넣기도 한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선수들은 스켈레톤 정비를 끝내고 이 커버를 모두 제거한 후 지정된 위치에 두는 것이 규칙이다.

 

 

스켈레톤 경기 전 경기장의 모습 ⓒ 이아영

 

 

현재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수는 4명(남자3, 여자1)이다. 국내에 실제 경기장이 없다는 것 말고는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봅슬레이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는 체력훈련과 스타트 훈련밖에 할 수 없지만 선수들의 기량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스켈레톤이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이었다. 루지 종목에서 스켈레톤으로 전향한 강광배(현 한국체대 교수) 전 국가대표 선수는 대한민국 스켈레톤의 창시자이다. 이후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대한민국 스켈레톤의 자존심을 지켰다.

 

 

 

토리노 올림픽 스켈레톤 경기 모습 ⓒ 토리노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2010년 벤쿠버 올림픽에는 조인호 선수가 출전권을 획득하며 스켈레톤 종목에서 대한민국의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이뤄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 코치이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역대 최초로 올림픽에서 봅슬레이(강광배, 김정수, 이진희, 김동현), 스켈레톤(조인호), 루지(이용) 세 종목에 모두 출전했다. 아직까지 여자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바가 없다. 평창올림픽에서는 출전할 수 있는 루지 1인승, 2인승, 스켈레톤 1인승. 봅슬레이 2인승, 4인승(남자만)에서 남, 여 모두 출전하여 금빛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현재 국가대표 스켈레톤, 봅슬레이 코치진(좌측부터 김정수, 조인호, 이용) ⓒ 이아영

 

 

<제1회 스타트 챔피언십>

 

2012년 9월 23일. 마침내 달콤한 열매가 찾아왔다. 최초로 대한체육회가 인정하는 공식 국내 대회가 개최된 것. 외국에서만 개최하던 스타트 대회가 열린 것이다. 봅슬레이, 스켈레톤 두 종목에 참가하기 위해 등록한 선수는 무려 70명에 달했다. 다른 종목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숫자이기는 하나 주최 측은 기대 이상의 등록인원에 놀란 눈치였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한 꿈을 갖고 있었다. 비록 환경이 열악하기는 하나 그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선수들은 하고 싶은데 그들을 받아줄 팀이 없어 문제가 되었지만 최근 들어서 점차 많은 팀이 생겨나고 있다. 휘문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에 공식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종목이 생겼다.

 

꿈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이진희 선수 ⓒ 이아영

 

또한 강원 봅슬레이 스켈레톤 연맹이 활발한 선수 선발활동을 하고 있어서 점차 스켈레톤에 참여하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번 스타트 챔피언 대회에 참가한 스켈레톤 선수들은 신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강원도청 이진희 선수는 벤쿠버 올림픽에 봅슬레이 4인승 부문에 출전했던 선수다. 스타트대회에는 스켈레톤 종목에 참가했다.

 

봅슬레이 선수였던 그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인해 장기간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체중이 20kg 가량 빠져버렸다. 은퇴할 법도 한데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스켈레톤 선수로서의 꿈을 펼치고자 경기에 다시 출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바로 전 봅슬레이 국가대표 송진호 선수이다. 그는 이진희 선수를 봅슬레이 선수로 끌어들인(?) 주인공으로서 6년차 경력을 가진 베테랑 파일럿이다. 그저 운동이 좋아서 여전히 현역선수로 활약 중이었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한 형님이었다. 그렇다 보니 국가대표 선수들부터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선수들까지 그를 위한 함성소리로 경기장은 꽉 찼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봅슬레이를 곁에 둔 송진호 선수 ⓒ 이아영

 

이날 스켈레톤 여자 부문 1위는 5.822초의 기록으로 유희정(성결대) 선수가 차지했다. 그는 1년여 전 국가대표 선수가 됐으며 연습이 힘들기 보다 몸이 무거워서 아쉽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스켈레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보였다.

 

스켈레톤 유희정 선수 ⓒ 이아영

 

이번 달 10월 말이 되면 대표 선수들은 캐나다 휘슬러 경기장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밴쿠버 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으로서 현존하는 경기장 중 가장 빠른 시속이 나온다. 그녀는 걱정도 앞선다고 했다. 스켈레톤을 하기 위해서는 강심장이 필요하다. 컨디션이 안 좋고 순간 겁이 나서 타기 싫어도 선수들은 그냥 타는 경우가 더 많다. 국내로 돌아오고 나면 타고 싶어도 경기장이 없어서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인데 익사이팅 스포츠에 겁 없이 뛰어들어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스켈레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be 인기종목”이 되기 위해 스켈레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보너스!

무한도전 봅슬레이편 촬영 당시 모습 ⓒ 이아영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