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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미국은 학생이 먼저, 한국은 선수가 먼저 (1)

 

 

 

글 / 서우리 (스포츠둥지 기자)

 

 

        얼마 전 야구 팬들 사이에 한 고등학생 야구선수가 화제로 떠올랐었다. 주인공은 덕수고에 재학중인 이정호(3학년, 외야수)다. 그가 화제가 된 이유는 뛰어난 야구기량 때문이 아니다. 거포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지도 않았다. 바로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공부하는 운동선수’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수업에 집중하고 시험이 끝나면 전교등수의 변화에 민감해하고 쉬는 시간엔 선생님들을 귀찮게 하며 질문을 쏟아내는 학생이다. 수업이 끝난 오후엔 운동장에 나가 유니폼 차림에 야구 배트를 들고 훈련하며 전국 대회를 준비한다. 국내 학원스포츠 환경에선 이는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이정호는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고등학생’이다. 정규 수업시간만큼 교육 받을 권리가 있고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정해진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며 방과 후에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제 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한 한국의 청소년 대표 선수들 ©서우리

 

 

운동선수에게 과연 학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혹자는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되지 학업까지 충실하게 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하나에만 매진하여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 하기도 한다. 학업과 운동을 균형 있게 병행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 고민하던 중 동부 명문대학들의 모임인 아이비리그에서도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는 미국의 시스템에 주목하게 되었다.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IBAF 18U Baseball World Championship 2012)를 위해 최근 입국한 미국 대표팀의 단장 브랜트 어스트(Brant Ust)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미국 청소년 야구 대표팀의 단장 브랜트 어스트(Brant Ust) ©서우리

 

 

 어스트 단장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1년간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 선발과 코치진 구성부터 미국 대표팀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감독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덕분에 미국의 고교와 대학 야구선수의 학교 생활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운동선수의 학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미국에서는 스포츠가 중요한 만큼 학업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청소년야구 대표팀 선수들 역시 학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도 매일 하루 두 시간 동안 공부를 한다. 각자 숙제를 노트북으로 작성해 보내고 인터넷을 통해 검사 받는다. 미국은 운동을 잘하는 학교들이 학업 면에서도 훌륭한 명문학교들이 많아 선수들에게 학업과 운동의 기회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주고 싶다. 운동선수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때문에 학업을 오히려 더 강조한다.

 

미국의 학생 운동선수들은 하루 스케줄을 어떻게 보내나.
미국에는 스포츠에만 특화된 학교는 없다.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7시에 등교하여 오후 2시 정도까지 수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모든 학생들이 다 운동을 하러 간다. 사실상 학생 운동선수들 만의 특별한 스케줄은 없다. 미국의 학교는 일정 학점을 채우지 못하면 아예 선수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수업 이수는 당연한 일이고 예외는 없다. 오후 2시에 수업이 끝나고 모두 운동 하러 가면 그 때 야구부들끼리 모여서 훈련을 시작한다. 다른 일반학생들의 운동시간에 함께하는 것 그뿐이다.

 

한국 학생들은 훈련이나 대회참가로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고교선수들은 졸업하고 프로가 될 수도 있고 대학에 가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운동선수의 선수생명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30살에 은퇴했다. 은퇴한 후에 짧게는 40년의 남은 삶이 있다. 그 인생을 무엇을 가지고 살 것인가. 특히 미국은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회에서 굉장히 불리한 대우를 받는다.  학생의 남은 인생에 대한 보장을 위해서라도 학업을 이행할 기회를 주고 수업을 받도록 제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운동 선수들이 잘하는 운동을 통해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서 오히려 학업에서도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적합한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 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한 미국 대표팀 선수들 ©서우리

 

 

두 가지를 병행하다 보면 운동을 정말 잘하는 선수를 키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쳐 본 입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선수들은 물론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어하고 야구를 더 잘하고 싶어한다.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운동에 더 시간을 들이고 싶고 여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은 둘 다 잘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학업에 들이는 시간 때문에 운동실력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야구를 시작하는 어린 나이에 ‘운동만 할래’ 또는 ‘공부만 할래’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운동에 실패 했을 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중요하지 않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닌 팀 스포츠이다. 팀에 어떻게 잘 적응하고 융합하는지도 실력만큼 중요하다. 공부를 통해 이를 배울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 실력만 키운다고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만 하는 것은 그들이 프로에 계약한 후에 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본인의 학업을 마칠 때 까지는 둘을 병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브랜트 단장은 한국에 와서도 원격으로 수업과 과제를 진행한다는 말에 놀라는 필자를 보고 당연한 사실에 왜 놀라냐는 눈치였다. 불가피하게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데에 대한 조치였지만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 학생들은 대회로 인해 학교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프로에 지명 된 선수들은 평일에 진행되는 구단 메디컬 테스트 등을 위해 수업에 빠지기도 한다. 3학년 학기를 다 채우지도 않은 채 구단 훈련에 합류하기도 한다. 선수 본인은 물론 주변의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는 프로구단 관계자들 조차 학생 선수의 학습권에 대한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트단장에 따르면 미국은 ‘운동하는 일반학생과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이상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잡혀있었다. 운동과 학업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 둘을 병행하고 있었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학업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운동이라는 특기를 살려 명문 학교에 진학하고 더 질 높은 수업을 받을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운동 특기자로 고교나 대학에 입학한 선수들이 훈련으로만 학교생활을 보낸다는 것은 한쪽면만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운동선수는 직업의 특성상 수명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운동 이후의 인생에 대한 대비로 학업이 필수적이라는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당장 눈 앞의 프로 진출이나 대학진학만을 보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들의 인생을 고려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눈 앞의 이익 때문에 학생선수들에게 오직 운동만을 강요하는 부모님이나 감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이 끝난 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부모님도 선생님도, 감독도 아닌 선수 본인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어떠한 욕심이나 강요 없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아직 학생인 그들에게 학업이 중요한 이유이다.

 

 

- 2편에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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