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둥지 기자단

‘한중수교 20주년’, 韓中 핑퐁커플의 외교는 계속된다

 

 

 

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 현장에서 또 하나의 한중(韓中)핑퐁커플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장애인탁구선수로선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문성혜와 중국의 차오닝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문성혜-차오닝닝 커플 [사진출처=문성혜 홈페이지]

 

 

지난 200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친분을 쌓게 된 두 선수는 지난해 문성혜가 차오닝닝이 훈련하는 중국 난징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게 되며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두 사람은 이번 대회에서 여자단체 동메달과 남자단체 금메달을 획득하며 ‘안재형-자오즈민’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메달리스트 핑퐁커플’이 됐으며,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혀 국내외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커플이 모두의 축하 속에서 결혼을 할 수 있기까지 ‘한중수교’와 ‘서울 올림픽’, ‘원조 한중 핑퐁커플’ 등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난 1992년 8월 24일, 중국 북경에서 만난 한국의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의 첸지천 외교부장은 양국 간의 냉전 이데올로기(Ideologie)를 청산하고,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협력에 관한 내용을 골자로 한 외교관계 공동성명을 교환했다. 이 한중수교(韓中修交)를 통해 동북아시아를 포함, 전 세계의 정치적 흐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양국 간의 냉전을 그치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시대적 흐름이 반영됐겠지만 가장 큰 원동력으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핑퐁커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던 소련이 힘겨루기를 하던 주요지역이 바로 ‘분단국가’ 한국이었다. 그로인해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공산국가들의 참가여부가 세계적인 이슈가 됐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참했었고,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는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마저 일찌감치 참가를 선언하며 냉전을 뛰어넘는 스포츠를 통한 화합에 동참하게 됐다. 이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중국의 수교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한중 탁구국가대표 안재형과 자오즈민 커플이었을 것이다. 1984년 파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에서 알게 된 이후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오던 이 두 사람에겐 크나큰 고민이 있었다.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동반 입상에 성공한 한중 탁구 챔피언 커플의 결혼이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지만 당시 비수교(非修交)국가였던 한국과 중국 간의 국제결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사마란치 당시 위원장이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이 핑퐁커플의 결혼허락을 언급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럼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국은 서울 올림픽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양국 간 관계개선을 위해서였는지 두 사람의 결혼을 암묵적으로 허락하게 됐고, 이런 내용이 일본 외무성을 통해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이르렀다. 결국 두 사람은 1989년 스웨덴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3년 뒤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게 됐다.

 

 

서울 올림픽과 핑퐁커플이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는 물질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스포츠로 인해 양국 간의 냉전종결이 한걸음 더 빨리 고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안재형-자오즈민 커플이 20세기 한중 외교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쳤듯이, 문성혜-차오닝닝 커플로 인해 21세기 한국과 중국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발전해나가기를 바래본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