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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신의 장난'이 아닌 열정으로 이루는 올림픽 챔피언의 꿈

 

 

 

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송대남 Ⓒ www.teinteresa.es

 

 

2012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예상치 못한 심판 판정이 속출하며 '올림픽 금메달은 신이 정해준다'라는 속설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올림픽 금메달은 속설처럼 신의 장난으로 결정되는 것 일까?

 

 

▶ 조롱받는 챔피언, 그의 과거는 땀과 눈물이었다.

지난 3일, KBS 2TV에서 방영된 '스펀지 - 올림픽 특집'에서 호주의 쇼트트랙 선수 스티븐 브래드버리(Steven John Bradbury)가 소개됐다. 방송을 통해 올림픽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챔피언으로 소개된 그였지만 사실 올림픽을 향한 그의 열정과 집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 참가한 호주의 브래드버리는 이미 30대에 접어든 노장 선수였다. 그리고 그의 실력 역시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적처럼 호주 최초의, 남반구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000m에 출전한 브래드버리는 계속되는 선두권의 실격과 전복사고로 운 좋게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올림픽 메달을 예상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결승전에는 안현수를 비롯해 미국의 안톤 오노, 중국의 리쟈준, 캐나다의 마크 투르콧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브래드버리가 단독 꼴등으로 경기를 하고 있던 찰나, 선두권 선수들이 결승선을 불과 10m 앞두고 모두 뒤엉켜 넘어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참 뒤처져있던 브래드버리는 앞 선수들의 전복사고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모두가 그의 타고난 운과 신의 장난으로 받게 된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조롱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올림픽 메달리스트였으며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실력파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브래드버리는 1991년 자국 시드니에서 열린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 호주 대표팀으로 출전해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금메달은 호주 동계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었으며, 그는 1993년 베이징 선수권 계주 동메달과 1994년 길포드 선수권 계주 은메달을 획득하며 호주의 에이스로 활약하게 됐다.

 

또한, 그는 올림픽에 이미 세 번이나 출전한 베터랑이자 실력파였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벤치 멤버였기에 시합을 뛰어보지는 못했지만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5000m 계주팀의 주전으로 출전해 당당히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메달은 호주 역사상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해 계주와 개인전에서 활약했다.

 

어린 나이에 호주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브래드버리는 2000년에 훈련 중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당시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그가 두 번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브래드버리는 피나는 재활훈련 끝에 빙상장으로 돌아왔다. 올림픽 개인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한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네 번째 올림픽이자 마지막인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참가했을 당시 이미 브래드버리는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진 그저 노장 스케이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홀로 올라서게 됐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인터뷰를 통해 "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케이터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난 십수년간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달려왔다"라며 "금메달은 내 열정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삼수 끝에 잡은 기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12 런던올림픽 유도 90kg급 국가대표 송대남(33.남양주시청). 20대 시절 81kg급 세계랭킹 1위까지 올라갔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세 번에 걸쳐 아픔을 겪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김재범(27.한국 마사회) 같은 능력 있고 젊은 선수들로 가득 찬 81kg급에서 올림픽 챔피언은 고사하고 출전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선수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체급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국 송대남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 첫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지난 2일, 송대남은 런던의 엑셀 유도경기장에서 열린 90kg급 결승에서 쿠바의 곤잘레스를 물리치고 감격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올림픽 무대를 화려하게 마무리 한 것이다. 역대 한국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 30대는 그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그의 출전 자체를 놓고 많은 선후배들의 조롱과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 메달 획득을 위해 경쟁력 있는 젊은 선수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열정과 의지로 삼수 끝에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12년에 걸친 올림픽 도전기를 마치게 됐다.

 

정훈 대표팀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촌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가 송대남이었다"라고 말할 만큼 그는 열정과 노력의 사나이였다. 또한, 유도 66kg이하급에서 판정번복 피해를 입고 동메달을 획득한 조준호(24.한국마사회)는 자신의 꿈을 묻는 질문에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이룰 때까지 송대남 선배처럼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에 관한 '신의 장난'은 없다. 그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며 십수년을 묵묵히 달려온 선수들의 땀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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