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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금빛만큼이나 값지고 기억해야할 ‘한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글 / 제갈현승 (스포츠둥지 기자)

 

 

한국 선수단, 64년 만에 다시 런던 땅에 오다.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은 한국의 올림픽 역사에 있어서 감회가 남다른 대회다. 1948년 당시 런던올림픽은 한국 선수단이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한 대회였다. 그 때는 비행편이 열악하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발하여 20일 만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1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 당시 런던에서 동메달 2개로 시작하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금13, 은10, 동8를 기록하였다. 이렇듯 런던은 한국에게 스포츠 강국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첫 디딤판이 된 곳이다 (현재 영국 런던 Royal Thames Yacht Club에 있는 홍보관에는 ‘From London to London’라는 컨셉으로 개도국에게 여러 가지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올림픽 동메달史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올림픽 정신에 부합과는 거리가 멀게 지나치게 금메달에만 의존도가 높아왔고 한국 특유의 ‘일등주의’, ‘성적지상주의’로 인하여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들이 조명을 받지 못했다. 여타 국가와는 다르게 ‘금’이 아닌 은과 동을 획득하면 죄인인듯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이며 지내온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금메달만큼이나 값지고 우리가 기억해야할 동메달리스트들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남승룡(제11회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시상식에 오른 두 선수, 하지만 가슴에 일장기를 단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작자미상

 

일제시기 조선인으로서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사람은 마라톤 손기정, 남승룡을 비롯하여 농구의 장이진, 이성구, 염은현, 복싱의 이기환, 그리고 축구의 김용식 등 7명이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우승, 남승룡은 3위를 차지해 온 국민을 감격시켰다. 3위인 남승룡은 2시간 31분 42초였으며 시민들은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라며 소리가 터지기 시작하였고 모두들 거리로 쏟아져 나가 ‘기쁨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불운한 것은 IOC홈페이지에 이 두 선수가 아직도 국적이 일본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마라톤 메달리스트 검색에도 일본으로 검색해야 두 선수를 찾을 수 있다. 이에 IOC측은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수많은 국가 출신 선수들의 국적을 모두 변경하려면 혼란이 초래된다는 이유로 국적변경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2. 김성집(제14회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동메달)

 

동메달을 딴 김성집 선수 대한체육회

 

 

 처음으로 일장기가 아닌 태극마크를 달고 메달을 단 선수는 역도의 김성집 선수다. 정부수립 이틀 전인 1948년 8월 13일이었다. 당시 28세의 휘문고 체육교사였던 김성집은 올림픽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회고했다.

 

 이후 4년 뒤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내어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성집은 2011년 9월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고 4년 뒤에 또다시 메달을 딴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3. 한국여자배구대표팀(제21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배구 동메달)

 

동메달에 기뻐하는 여자 배구 대표팀 ⓒ AP연합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최초의 메달은 여자배구였다. 동구의 강호 헝가리를 상대로 첫 세트를 13대15로 졌지만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며 승리를 거뒀다. 큰 키를 이용한 장신 블로킹을 앞세운 동구국가들을 단신의 한국 선수들(164cm)이 연일 이겨나가자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주장 이순복, 세터 유경화, 유정혜, 정순옥, 변경자, 백명선, 조혜정 등이 당시의 멤버였고 이들은 1976년 2월부터 아침 9시에 훈련을 시작해 밤 11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13시간씩 훈련을 계속했다. 피와 땀의 결과이기도 하였으며 올림픽 메달획득 이후에는 여자배구의 인기를 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올해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이 26년 만에 런던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4. 양태영(제28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 동메달)

 

 오심사건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양태영선수 ⓒ 연합뉴스

 

양태영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 남자 개인종합 평행봉 종목에서 10점 짜리 출발 점수 연기를 펼쳤다. 금메달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으나 심판은 이를 잘못 적용해 9.9점을 매겼고 폴 햄(미국)에게 0.012점 차이로 패했다. 10점을 받아 0.1점 높게 받았더라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지만 오심으로 인하여 동메달에 그치고 만 것이다. 이에 국제체조경기연맹은 한국 선수단의 이의 제기에 오심을 인정한다고 밝혔지만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양태영 측이 "경기장 안에서 제 시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선수단이 제기한 소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각했다. 대회 오심 직후 체육회에서는 명예 금메달을 양태영에게 수여했고 그는 절치부심하여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탈락에 그쳤다.

 


5. 한국여자핸드볼대표팀(제29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동메달)

 

동메달을 얻은 후 기뻐하는 선수들 ⓒ REUTERS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동메달 결정전에서 KBS '최승돈 아나운서는 '20년 동안 올림픽에 나왔던 언니들의 졸업식이 1분 남았습니다'는 온 국민을 감동과 눈물로 적시게 한 멘트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친 핸드볼 팀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금메달'을 목표로 한 도전하였으나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에서 버저비터 이후 노르웨이 선수의 슛이 득점처리가 되어 석패하고 말았다.(오심논란)


하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헝가리를 상대로 여유있는 리드와 함께 종료 1분전 임영철 감독은 오영란, 오성옥 등 고참 언니들을 대거 기용하며 "마지막을 너희가 장식해라"라며 20년 동안 국가대표를 위해 운동해준 선수들에게 감동의 선물을 주었다.

 


4년간 노력해온 선수들에게 격려를...

이외에도 4년간의 피와 땀이 맺힌 노력으로 얻어낸 메달리스트들이 무수히 많다. 현재 런던 올림픽에서 조금 아쉬운 성적을 냈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면 따뜻한 박수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 선수들에게 4년간의 훈련이라는 것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훈련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도전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올림픽의 정신이고 올림피언이 지녀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치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강준만 저, [축구는 한국이다.]
[한국근대사 산책 8권]

김학균, 남정석, 배성민 저, [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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