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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런던올림픽 특집: [역도] 국민 영웅 장미란, 뭉클했던 마지막 기도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대한민국 역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 선수 이아영

 

 

대한민국 역도 간판 장미란 선수의 경기가 있었던 지난 새벽,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며 두 손을 모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국민 영웅 장미란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존재이다. 모든 선수들의 경기가 다 끝나고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을 펼쳤던 감동의 베이징 올림픽! 국민들은 기적의 순간을 또 한 번 기대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런던올림픽 결단식 현장에서 스포츠 둥지 기자를 보며 웃어 주는

역도 대표팀 김순희(코치), 장미란, 양은혜, 임지혜 선수 이아영

 

 

기다리던 장미란 선수가 무대에 등장하자 그녀를 기다렸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영국에서 열리는 경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 시합할 때 못지않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미란을 응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한국 관중들이 있었던 건지 감히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인상 1차시기 120kg에 도전하는 장미란은 평소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늘 그랬듯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가뿐히 성공했고 2차시기에 125kg로 증량하여 또 다시 성공시켰다. 하지만 129kg에 도전했던 3차 시기에서 위험한 장면이 잠시 연출되었다. 마지막 기구를 받아내는 동작에서 기구의 중심이 뒤로 넘어가다가 애매한 위치에서 멈추는 바람에 앞도 뒤도 아닌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연한 대처로 끝까지 기구를 놓치지 않았고 고개를 숙여내며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중량급 중에서도 최고중량급 경기다 보니 기구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경기를 하다보면 이러한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며칠 전 남자 77kg급의 기대주였던 사재혁 선수 팔꿈치 부상으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대한민국은 순간 아찔할 수밖에 없었다. 메달을 따며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스스로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또한 그 것에 만족하는 모습을 기원할 것이다. 내 몸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우려했던 부상은 없었다. 장미란은 3번의 시기 중 두 번을 성공하며 2차시기의 도전 기록이었던 125kg으로 인상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실 이 무게는 140kg을 성공하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던 베이징 올림픽 당시보다 15kg이나 낮은 무게였다. 쏟아지는 매스컴 보도와 장미란 선수 중계 자막은 내심 올림픽 2연패를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장미란 선수는 사실 금메달 경쟁을 하기에 몸이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국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태릉선수촌 역도장 구석에는 선수들 몸에서 떼어낸 것으로 만든 테이핑 공이 있다.

이는 선수들이 얼마나 부상의 고통에 시달렸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아영

 

 

 

라이벌 경기가 다 끝난 후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홀로 경기를 치렀던 베이징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장미란 선수의 모든 시기가 다 끝나고도 두 명의 선수가 더 남아 있었다. 바로 그녀의 세계신기록(326kg)을 이미 2011세계선수권과 2012유럽선수권에서 차례로 갈아치운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시리나(21)와 중국의 주룰루(24)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번갈아 나오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을 보니 박수를 아낄 수는 없었다. 특히 타티아나 카시리나 선수는 인상에서 151kg을 성공하면서 인상 종목에서의 1위를 확정지었고, 여자 역도선수 사상 처음으로 인상에서 150키로 대열에 진입을 하게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새 역사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장미란은 인상에서 5위의 기록을 안고 용상으로 넘어갔다. 155kg을 1차시기로 신청했고 이내 작전을 변경하여 158kg에 도전했다. 장미란의 컨디션과 인상 경기 결과를 두고 보았을 때 1,2위와는 많은 격차가 있었기에 동메달 싸움을 준비해야했다. 동메달을 쟁탈하기 위해서는 1,2위 두 선수를 제외하고 인상에서 3~4kg의 기록으로 두 명의 선수가 앞서고 있었기에 용상에서 3번의시기를 모두 성공해야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무리한 도전은 실격을 유발할 수도 있기에 코치진은 안전한 작전으로 시합을 진행했다. 1차시기에 도전했던 158kg은 가뿐히 성공했고 이어서 164kg으로 2차시기에 도전해 김순희 코치의 화끈한 비명소리와 함께 짜릿한 성공을 알렸다.

 

 

 

용상 2차 시기에서 164kg을 성공한 모습 Ⓒ 대한체육회

 

 

 

동메달을 두고 각축을 벌였던 아르메니아의 쿠루슈디안은 그녀의 마지막 도전에서 장미란이 들어 올렸던 164kg보다 무려 2kg나 더 무거운 166kg을 성공시키며 장미란을 압박시켰다. 장미란은 마지막 시기가 남은 상태에서 동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인상에서 4kg, 용상에서 2kg이나 앞서있는 쿠루슈디안를 합계(295kg)에서 이기기 위해서 종전 무게보다 6kg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장미란 선수가 170kg에 성공할 경우 합계 기록에서 쿠루슈디안와 같은 기록인 295kg를 기록하며 체중이 덜 나가는 유리한 조건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용상의 첫 번째 동작인 클린(Clean)에서 실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장미란은 두 번째 동작인 저크(Jerk)에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부상 부위가 바로 좌측 어깨였기 때문이다. 사실 인상 3차시기 동작에서 위험한 동작이 연출되었던 것도 마무리 동작에서 어깨가 순간적으로 파고들어가며 확실하게 잡아주지 못한 부분도 기여를 했다. 부상 재활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터라 용상 2차시기도 약간은 빠듯해 보이는 무게였다. 그러나 우린 기적을 믿었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응원했다.

 

 그녀에게 마지막 올림픽, 마지막 시기였다. 경기장 내에는 장미란 선수가 호명되었고 그 순간 1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김순희 코치의 마지막 지시를 듣고 계단을 올라갔다.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펴 바르며 마인트 컨트롤을 했다. 관중들은 하나 되어 장미란 파이팅을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대에 섰고 마지막 기합을 쏟아냈다. 숨 막히는 순간, 먼저 데드리프트(땅에서 바를 끌어 올리는 동작), 그리고 클린을 하며 앉았다 일어나는데 잠시 중심이 뒤로 빠지며 앞발이 살짝 들렸으나 이내 중심을 찾으며 일어섰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두 번째 저크 동작! 하지만 장미란 선수의 어깨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아쉽게도 기구가 뒤로 떨어졌다. 관중들은 탄식을 자아내며 미처 다 밀어내지 못한 우측 팔꿈치의 힘겨운 사투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가 끝났다. 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쿠루슈디안 선수에게 양보하고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무대를 곧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올림픽 3연속 출전에 첫 노메달이었지만 무대 뒤로 물러 나와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보답하기 관중을 향해 감사의 큰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 키스를 선사했다.

 

 

 

 

운동을 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는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고마운 바벨에게

손 키스를 선사한다.  Ⓒ 대한체육회

 

 

전 세계에서 힘이 가장 센 여자들의 마지막 축제는 접전 끝에 스무 네 살 어린나이의 주룰루(중국) 선수가 차지했다. 합계 세계신기록을 두고 신기록 경신을 거듭했던 치열했던 마지막 승부가 종료되었다. 다행인 점은 베이징 올림픽 당시 장미란 선수가 세웠던 용상 올림픽 신기록인 187kg은 깨어지지 않았다. 주룰루가 타이기록에 도전해 성공 후 190kg에 도전했으나 실패하면서 용상 부문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은 지켜냈다. 장미란 선수는 비록 시상대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잘 싸웠다. 그녀는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같이 출전할 수 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한 '그랜드슬래머'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세계 여자역도의 최강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랑스러운 KOREA 대표선수 장미란 이아영

 

 

 

부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이루어 낸 그녀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경기 직 후 믹스트 존에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눈물을 훔치며 취재진들을 울게 했고,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며 오히려 국민들을 걱정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부족한 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셔서 과거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취재 내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경기는 끝났지만 대한민국은 잠들지 못했다. 그녀에게 감동받은 한 여성 네티즌은 “임산부이기에 밤새 올림픽을 보는 것도 자제해왔는데 장미란 선수의 경기는 놓칠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감사 기도와 바벨 키스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여 함께 울었다.”고 했다. 지난 새벽 육상 100m 달리기 우사인 볼트가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장미란 선수를 응원하는 글로 인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녀의 이름 세 글자는 실시간 검색 순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선수 장미란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쟁이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국민들의 혼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평소 심성이 곱고 정이 많기로 유명한 장미란은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비인기 종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꿈나무 선수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장미란 선수는 재단이 설립되기도 훨씬 이전부터 몰래 선행을 베풀고 있었다.

 

모 선수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미란에게 선행을 당한(?) 모 선수는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어 국제시합을 출전하게 되었는데 출국 날 아침 장미란 선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개인별 공항 소집이었던지라 무거운 짐을 홀로 운반해야 했던 그 선수를 걱정하며 장미란은 직접 공항버스 정거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며 오전 휴식 시간을 반납했다. 그리고는 헤어지면서 빨간색 편지봉투를 건네었다. 그 선수는 분위기 상 용돈을 주는 줄 착각하고 죄송한 마음에 거절을 했지만 장난끼 섞인 표정으로 편진데 왜 거절을 하느냐며 오히려 반문하자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떠난 후 홀로 남아 봉투를 열었던 그 선수는 봉투 속 들어있던 깨알 같은 손 편지와 달러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은 항상 통하기 마련이다.

 

 

 

장미란 선수가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며 쓴 감동의 손 편지  이아영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인정하는 장미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녀의 겸손함과 감사할 줄 아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경기가 끝나고 6시간 후 4년간 그녀의 곁을 함께 했던 장미란 전담 코치 김순희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4년여의 시간을 이 선수와 함께 걸어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고개 숙이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미란이란 이름만으로도 이미 역도계에선 소중하고 값진 보물이며 많은 국민들에겐 영웅입니다. 미란아, 너의 세 번째 올림픽을 함께 준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그 도전은 너무도 멋졌다……. 고맙고 사랑한다.!!”

 

 

즐겁게 분위기 속 훈련을 시작하는 김순희 코치와 장미란 선수의 모습  이아영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의 장미란 선수 자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STRONG IS HAPPY"
강하지만 부드러운, 부드럽지만 강한! 역도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미란은 우리 가슴 속에서 진한 감동으로 오래토록 남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 "STRONG IS HAPPY"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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