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둥지 기자단

“아들아, 내 꿈을 너에게 바친다.”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열정으로 뜨거워진 대한민국 서울, 조용한 함성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서울은 올해로 7회째에 접어드는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를 여는 개최지로써 총 14개 종목, 30개국의 2,500명의 손님을 맞이하였다. ‘서울의 힘 하나로! 아태의 꿈 세계로!’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5월 26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막식을 갖고 6월 2일까지 열전에 돌입했다. 이번 대회에 사이클 종목으로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고병욱, 김명회, 김재범 이렇게 3명이다. 28일~31일 4일간에 걸쳐 치러진 이번 사이클 경기에서 선수들의 성적은 금1(고병욱- 1000m  스프린트), 은1(김명회-1000m 스프린트), 동2(김명회-35km 독주도로, 고병욱-포인트레이스 50km)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대회 사이클 공식 마스코트 서울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 공식홈페이지

 

이번 경기에서 은1, 동1의 성적을 거둔 김명회(22) 선수는 사실 이번 시합이 국제무대의 첫 데뷔전이었다. 비장애인들과 같이 참여한 시합은 있었지만 국제경기이면서 농아인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이클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3살 때부터 자전거를 처음 타보았고, 10살이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사이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아버지는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김재범(49)선수다. 아버님도 김명회 선수와 똑같은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농아인 경기에 출전한 두 사람의 모습은 수화로 대화할 때 말고는 보통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친구처럼 느껴졌다. 둘째 날 열렸던 -35km 독주도로 경기에서 3위에 입상한 아들의 시상식장면을 행복하게 지켜보고 있던 그는 영락없는 아들바보였다.

 

 

-35km 독주도로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명회 선수 이아영

 

아들과 태어나 처음으로 나란히 국제 경기에 참여하여 아버지는 모든 경기에서 입상 하지 못했지만 그는 충분히 아들의 입상만으로 만족하고 계셨다. 김재범(49) 선수는 사실 장애인 올림픽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는 실력파였다. 11년 동안 국제대회에 참가 하며 최고 성적 5위까지 기록할 정도로 유망한 사이클 선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 살만 더 먹으면 50세가 되는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꿈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명회 선수에게 운동은 누구에게 지도를 받느냐고 묻자 아버지가 코치라고 답했다. 국제경기에 참가한 경력도 많고 잘 알려주신다며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비추었다. 다른 종목도 아니고 빠른 스피드를 요구하는 사이클인데 함께 운동 하면서 어떻게 지도를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비장애인 선수들은 서로 말을 하면서 소통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서로의 수화를 통해서만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런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다는 듯이 운동 중에도 충분히 수화로 이야기를 하거나 수신어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한 구간이 나오거나 체력적으로 지칠 때는 운행 중에 대화가 당연히 힘들기 때문에 훈련이 끝난 후 서로 얼굴을 보며 수화로 훈련에 대한 피드백을 준다고 전했다. 처음 사이클을 시작했을 당시 김명회 선수는 아버지에 비해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훈련도 많이 힘들어서 지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운행 중인 한 손을 놓고 묵묵히 아들의 엉덩이를 세게 밀어주며 힘을 보태었다. 그는 지치지 않게 아들의 곁을 지켜주셨다.

 

 

김명회선수(좌)와 김재범선수(우)의 모습 이아영

 

아버지는 한 때 자신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길 꿈꾸었지만, 지금은 아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길 꿈꾸고 있다. 아들은 단 한 번도 사이클이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유쾌한 성격 때문에 사이클을 재미있게 배웠고 또 그런 아버지가 항상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집안의 두 남자가 모두 사이클과 사랑에 빠져 있지만 김명회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꼭 아버지가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길 소망하고 계신다고 했다. 김명회 선수는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 종목에는 농아인 경기가 없기 때문에 출전할 수 없기에 내년에 열리게 되는 농아인 올림픽에 출전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용코치(좌)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고병욱선수(우) 이아영

 

농아인 사이클 협회 회장이시기도 한 이상용회장님은 이번 대회에서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들에게 열정이 많으셨고 선수들 역시 그에게 애정이 많아보였다. 이상용 코치님은 인터뷰 내내 나의 옆에서 수화로 이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셨고, 나의 노트를 가져가서 경기 기록과 선수들의 신상 정보에 대해서 자세히 써주시기도 하셨다. 이들의 이야기가 기사로 전해지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경기 진행을 수화로 하는 농아인 경기대회 이아영

 

농아인 대회는 경기 시작에서부터 시상식까지 모든 진행이 수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박수소리도 없었다. 박수 대신 두 손을 머리 옆으로 올려서 “반짝 반짝”하는 동작으로 시각적인 박수를 보내주었던 것이 가슴 속에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모든 사람들의 눈이 진행하는 사람의 손을 따라다니며 집중하는 모습이 소름끼칠 정도로 멋있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이들은 핏줄도, 장애도, 꿈도 닮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아닐까?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