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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유로대회를 빛나게 해주는 다양한 스토리들


 

 

 

 

글 / 김성수 (스포츠둥지 기자)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유로2012가 드디어 개막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월드컵이라고 평가받는 유로대회는 유럽의 내로라하는 강호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축구팬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축구팬들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축구전쟁을 보기위해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시청할 것이다. 이렇게 유로대회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오랜 역사에 있다. 1960년에 시작된 유로대회는 올해로 14번째 대회를 맞이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스토리는 유로대회의 흥미를 높여주는 요소다. 그래서 이번엔 유로2012 개막에 맞춰 역대 유로대회에선 어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스페인 팬들 ⓒUEFA

 

1. 유로64. 이념대립으로 얼룩진 결승전

 유로64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열렸다. 당시 스페인은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통치하고 있던 시기였다. 스페인 내전을 승리로 이끌며 총통에 오른 프랑코는 비민주적인 독재정치와 인권탄압, 학살 등으로 악명 높은 지도자였다. 그 덕에 유로64가 스페인에서 열린다는 것에 걱정을 보내는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회 내내 불상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개최국 스페인은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소련. 당시 스페인과 소련 사이에는 앙금이 남아있었다. 첫 유로대회이자 이전 대회인 유로60에서 프랑코는 공산국가인 소련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이유로 자국 팀이 모스크바에 입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소련이 부전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 소련 언론들은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들’이라며 프랑코를 조롱했고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과 소련이 결승에서 맞붙었으니 긴장감은 고조되었고, 프랑코 역시 소련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했다. 현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무려 10만5000여명의 관중들과 정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다행히도 후반 41분 마르셀리노의 결승골로 소련을 2-1로 물리치며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다음날 스페인 언론에선 ‘공산주의와 그 일당들을 제압하고 태어난 국가의 역량이 성장한 증거’ 라고 논평하며 이념대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념대립은 훗날 1980년에도 벌어진다. 모스크바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자 미국을 축으로 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과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을 문제 삼아 불참했고, 우리나라 역시 참가하지 않았다. 4년 뒤 열린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선 이번엔 사회주의 국가들이 불참하는 등 좌우이념대립이 극심했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 냉전시대가 스포츠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시대가 끝난 현재엔 폴란드와 소련에서 분리된 우크라이나가 함께 유로2012를 개최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 팬들 ⓒUEFA

 

2. 유로92, 유로2004. 덴마크와 그리스가 보여준 기적

스웨덴에서 열린 유로92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깜짝 우승을 차지한 덴마크. 사실 덴마크는 유고슬라비아에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된 상태였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으로 인해 UN 안전보장이사회에게 참가를 거절당하자 덴마크가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어부지리 격으로 본선에 진출한 탓인지, 덴마크를 향한 기대는 낮은 편이었다. 거기에다 당시 덴마크 최고의 스타였던 미하엘 라우드롭 마저 대회에 불참하였기에 덴마크의 전력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잉글랜드와의 첫 경기를 0-0으로 비긴 덴마크는 이어서 열린 홈팀 스웨덴과의 경기에선 0-1로 패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탈락하는가 했지만 프랑스를 2-1로 꺾으며 조 2위로 4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4강전 덴마크의 상대는 오렌지군단 네덜란드. 당시 네덜란드는 전 대회인 유로88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고 마르코 반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함된 강팀이었다. 하지만 덴마크는 전반 5분 만에 라르센의 골로 앞서나갔다. 이후 베르캄프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전반 28분 라르센이 다시 한 번 골을 터트리며 앞서나갔다. 대파란이 일어나는가 했지만 네덜란드는 후반 41분 레이카르트가 동점골을 넣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결국 승리의 여신은 덴마크를 향해 미소지었다.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까지 갔고, 덴마크의 수문장인 피터 슈마이켈은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마르코 반바스텐의 킥을 막아내며 5-4 승리를 이끈 것이다.

 

결승진출에 성공한 덴마크는 독일과의 결승전에서도 슈마이켈의 신들린듯한 선방과 옌센, 빌포르트의 골로 독일마저 2-0으로 누르며 사상 첫 유로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깜짝 우승을 차지한 덴마크는 신흥강호로 급부상했고, 이번에 열리는 유로2012 본선에도 진출했다. 재밌는 것은 덴마크가 유로92 결승 토너먼트에서 붙었던 네덜란드, 독일과 B조에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강팀들이 많아 죽음의 B조로 불리고 있고, 덴마크는 열세라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그들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또 한 번 승리를 거둘지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유럽축구의 변방인 그리스도 유로2004에서 기적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2004에서 개최국 포르투갈과 개막전을 가진 그리스는 카라구니스와 바시나스의 골로 호날두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포르투갈을 2-1로 누르며 개막전부터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스페인과도 1-1로 비기는 등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인 그리스는 1승1무1패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프랑스. 당시 프랑스는 지단, 앙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진된 팀이었고, 객관적인 전력에서 그리스에 한 수 위였지만, 그리스는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공세를 막아냈고, 결국 후반 20분 하리스테아스의 헤딩 결승골로 프랑스를 1-0으로 꺾으며 또 다른 이변을 보여줬다. 4강에서 만난 체코도 수비수 델라스의 헤딩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한 그리스. 상대는 개막전에서 맞붙었던 포르투갈이었다. 개막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긴 했지만, 많은 이들은 포르투갈의 승리를 점쳤다. 포르투갈은 개막전 패배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는 데다,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이변은 결승전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리스의 단단한 수비는 포르투갈의 공격을 튕겨냈고, 결국 후반 12분 코너킥 상황에서 하리스테아스가 헤딩골을 터트리며 포르투갈을 1-0으로 꺾고 사상 첫 유로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사실 그리스는 유로2004 참가국 중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탄탄한 수비와 레하겔 감독의 지도력으로 강호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그리스가 토너먼트에서 만난 상대를 모두 1-0으로 이겼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안티 풋볼’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우승이라는 결과물은 이러한 논란을 덮기에 충분했다. 그리스가 보여준 성공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압박을 바탕으로 하는 수비축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 덕에 2년 후 열린 독일월드컵에서는 역대 월드컵 사상 최소득점 득점왕(클로제 5골)이 탄생할 정도였다.

 

한때 세계축구의 중심이었던 그리스는 유로2004 이후론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유로2012에서 다시 한 번 신화에 도전한다. 현재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는 그리스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면, 그리스 국민들의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유로92.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로대회에 출전한 독립국가연합

 유로대회에서 1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큰 족적을 남긴 소련. 하지만 소련은 1991년 모스크바에서 쿠데타가 시도되는 등 공산당이 쇠퇴의 길을 걸었고 결국 고르바초프가 사임을 발표하며 그해 소련은 붕괴되기에 이른다. 다음해엔 소련 축구협회 마저 해체되었다. 하지만 소련 구성공화국 중 11개국이 독립국가연합이란 정치공동체를 결성했고, 축구협회까지 신설하며 FIFA의 승인을 받고 유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이미 축구협회를 만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독립국가연합 대표팀에 선수들을 차출되지 못했지만, 안드레스 칸첼스키스, 세르게이 유란 등 우수한 선수들로 구성되었고, 당시 감독은 훗날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던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맡았다.


하지만 독립국가연합은 유로92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독일 네덜란드와 각각 1-1, 0-0 스코어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스코틀랜드에 0-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후 카자스흐탄(2002년 탈퇴 후 유럽축구연맹으로 옮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축구협회를 창설해 아시아 축구연맹에 가입했고, 94 미국월드컵 때는 러시아가 단독으로 참여하며, 독립국가연합 축구팀은 유로92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소련은 사라졌지만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유로96, 유로2004, 유로2008에 출전했고 특히 유로2008에선 히딩크 감독의 지휘아래 아르샤빈, 포그레브냑등을 앞세워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러시아는 이번 유로2012에도 출전해 A조에 속해 있다. 그들이 과거 ‘붉은 군대’ 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시절 영광스런 모습을 재현할 지도 관심이다.

 

 

 

   이렇듯 유로대회의 역사를 통해 단순한 축구 결과뿐만 아닌 각 나라의 정치 상황이나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유로대회는 이러한 스토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인 대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스포츠가 재미있으려면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 유로2012에선 어떠한 스토리가 대회를 빛나게 해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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