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우리 (스포츠둥지 기자)
가장 조용한 야구경기가 펼쳐지는 그라운드? 아니다. 그들의 눈짓과 몸짓은 그 어떤 언어보다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지난 5월 13일 제3회 아프로배 전국 농아인 야구대회가 열린 송도LNG야구장을 찾았다. 그곳에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광고 속의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농아인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 3회 ‘아프로배전국농아인야구대회’의 포스터 ©서우리
야구는 두 번의 스트라이크, 세 번의 아웃카운트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경기
총 11개 팀이 참여한 이번 대회는 12일 예선 경기에 이어 13일에 준결승과 결승전이 열렸다. 경기장에 도착하자 챔피언스 야구단과 농아인 국가대표팀과의 이벤트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챔피언스 야구단은 메달리스트 출신의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사회인 야구팀이었지만, 농아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챔피언스를 상대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날 국가대표팀의 일일 타격코치로 전 넥센 히어로즈 선수인 이숭용 해설위원이 다녀간 덕분이었는지 좋은 타격 감을 선보이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번 이벤트 경기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일반적인 야구경기와 전혀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똑같이 사인을 주고받고 모여서 파이팅을 하고, 공평한 볼카운트와 아웃카운트 속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 받는 모습. 오히려 농아인들의 야구경기는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 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그들도 똑같은 야구선수였다.
경기하다 보면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라는 걸 느껴요
농아인 국가대표팀과 직접 경기를 뛴 챔피언스의 박세우 선수(현 쇼트트랙 감독)는 이런 경기를 통해 농아인들도 약간의 장애가 있을 뿐이지 일반 사회인 야구팀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전에도 농아인 선수들과의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는 챔피언스의 박세우 선수는 “오히려 농아인 선수들이 더 응집력 있고 파이팅이 넘쳐요. 저렇게 열심히 하면 우리보다 더 잘하겠구나. 우리와 충분히 어울릴 수 있는 선수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라며 농아인 선수들과의 경기 소감을 전했다.
대한 농아인 야구협회 사무국장이자 서울빅토리 팀의 매니저 김정아씨 ©서우리
지난 2년 동안 예선탈락의 설움을 딛고 전 경기 콜드 승을 이룬 서울 빅토리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결승전은 이번 대회 유일한 학교 팀인 ‘충주 성심학교’와 2년 연속 예선 탈락 팀의 결승진출이라는 이변의 주인공 ‘서울 빅토리’의 대결이었다. 서울 빅토리는 지난 2년간 단 1승조차 해보지 못하고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준결승까지 전 경기 콜드 승이라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날 결승전을 앞두고 서울 빅토리 팀의 매니저이자 수화통역 담당 김정아씨를 만나 보았다. 대한 농아인 야구협회의 사무국장까지 맡고 있는 그녀는 농아인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농아인 친구들이 야구 유니폼 입고 있는 사진을 봤어요. 물어보니 일반 사회인 야구팀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야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들 이야길 들어보니 의사소통이나 소외감 등의 문제 때문에 농아인들만 할 수 있는 야구팀을 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럼 만들어 보자고 했죠.” 그렇게 김정아씨는 성심학교 졸업생이 아닌 선수들로 구성된 전국 최초의 농아인 야구단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서울빅토리를 따라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에 12개의 농아인 야구팀이 탄생했다. 그 중 서울 빅토리 팀은 비장애인 감독이 지휘하는 다른 팀들과 달리 감독과 코치 진이 모두 농아인으로 구성된 팀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참고로 이 팀의 서승덕 감독은 충주 성심학교 최초의 투수출신으로 직접 경기에 나서기도 한다. 이날 결승전에서도 서울 빅토리의 마지막 투수는 서승덕 감독이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가 진짜, 농아인 야구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결승전은 3회까지 7점을 내며 7대3의 점수로 앞서간 성심학교가 무난히 승리를 차지하는 듯 했다. (이번 대회는 이닝은 7회, 경기시간은 2시간이라는 규정하에 진행되었다) 서울 빅토리의 마지막 공격인 7회 초에 성심학교는 투아웃을 잡고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7회 초 2아웃 상황, 풀카운트에서 날린 타구를 3루수가 살짝 더듬었고 그 사이 타자는 전력질주와 슬라이딩으로 1루까지 살아나갔다. 뒤이어 좌전안타가 나오며 주자는 1,2루가 되었고 결국 성심학교는 투수를 교체했다. 그러나 이번엔 1루수 실책이 나오며 이제 만루상황이 되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농아인 야구에서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처음 7회초 2아웃까지 갔을 때, 장내 아나운서도 경기가 이제 끝날 줄 알고 주변 정리를 부탁하며 폐막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빅토리 팀의 선수들은 결코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나올 때까지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전력 질주와 슬라이딩으로 보여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농아인 야구선수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인사를 나누는 성심학교와 서울빅토리 ©서우리
결국 만루까지 간 끝에 후속타자를 땅볼로 처리하며 충주 성심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성심학교 역시 두 번의 준우승을 딛고 차지한 값진 우승이지만,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서울 빅토리 팀에게도 박수를 쳐 주고 싶은 멋진 승부였다.
5월 26일~6월 2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 7회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
5월 26일부터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에서 농아인 야구선수들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다. 농아인 경기대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5월 30일과 6월 1일 성남에서 경기가 열린다. 우리나라의 농아인 야구는 4~500개 팀이 있는 일본 등에 비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국가대표 농아인 야구 선수들은 열심히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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