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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국제체육 ]

백남준의 시각으로 보는 글로벌 스포츠

/ 이철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절친했던 벨기에 출신 작가 요스 드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대화는 풍요로워 진다.” 라는 말을 남겼다. 요스 드콕은 불어로, 백남준 자신은 영어로 말을 하였는데 서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도 상대방의 말에 대해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서로 하는 말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스포츠’ 라는 분야에서 ‘국가’ 간의 경계가 뚜렷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아무리 뛰어나고 출중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있더라도 모국의 선수가 아니면 굳이 경기를 챙겨볼 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모국의 선수들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인터넷과 케이블 TV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모국 선수뿐만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해외 팀과 선수를 챙겨보기에 이르렀다.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구분선’ 자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모호해질수록 스포츠 문화는 풍요로워진다.” 라는 것.

 

그렇다면 이런 글로벌 스포츠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금이야 새벽까지 밤새워가며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우린 메이저리그에 어떤 유명한 선수가 있는지,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몰랐었다. 정확히 말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국 출신 선수도 없었을 뿐더러 시청할 방법도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야심을 갖고 있었던 박찬호를 통해 우린 ‘한국의 스포츠’가 아닌 ‘세계의 스포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찬호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운동선수들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해외 리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실제로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리그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게 됐다.

선천적으로 월등한 신체조건을 가진(그래서 도전해볼 엄두도 못 냈던) 서양 선수들과 몸을 부딪혀가며 경쟁하다보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로인해 좋은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해외 스카우터들이 한국의 유망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종목의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글로벌 스포츠문화가 관람객 입장에서 주체로 발전해 나가게 된 시초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최근까지도 글로벌 스포츠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스포츠 선진국들의 경기력과 문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통해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와 선천적으로 불리한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금발의 서양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던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했어도 한국의 스케이트 대표 선수들과 감독들은 매년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서 그들과 함께 훈련하며 훈련방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지난 올림픽이 끝난 뒤 전 세계의 스케이트 팀들이 한국 선수들의 훈련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방식을 배우고 싶어 했다. 또한, 전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퀸’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심지어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히어로 100인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의 전반적인 스포츠 문화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여전히 많은 것을 도입하고 받아들여서 익혀야하지만 지난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스포츠 문화도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동물농장’, ‘1984년’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을 쓴 조지 오웰 은 텔레비전의 일방적인 소통 기능으로 인해 1984년에 세계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처럼 매체를 통한 일방적인 정보전달은 군부독재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들은 인터넷과 위성중계의 발달로 깔끔히 해소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좁은 우물을 벗어나 큰 세계로 달려 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포츠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만들었지만(일방적 소통) 국민들 스스로 스포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면서 긍정적인 방향(쌍방소통)으로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인해 우리는 ‘글로벌 스포츠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들의 선진 팬 의식, 경기력, 스포츠 행정 등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글로벌 스포츠 문화를 접하게 됨으로써 적극적 참여와 소통의 의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비록 우리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자국의 스포츠 문화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우린 분명 박찬호와 박지성 같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를 통해 알게 모르게 한 단계 더 성숙해졌을 것이다.

‘개인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이듯 글로벌 스포츠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들 스스로도 발전하였으며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발전하게 되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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