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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육상 스타트와 인간의 한계

 



                                                                                                              
                                                                                                                글/김윤환(고려대학교)


우사인 볼트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실격했다
이유는 부정출발.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에 스타트를 했을 시에 적용되는 파울이다. 출발 신호 전에 정지는 의무이고 정지 상태에 들어가고 나서 스타트까지 사이 시간 동안 몸이 움직였을 경우도 부정 스타트가 된다. 그런데 볼트의 평균 출발 반응 속도는 0.18! 눈을 한번 깜빡거리는데 걸리는 시간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다. 엄청 빠르다. 세계에서 가장 스타트가 빠르다는 아일랜드의 제이슨 스미스 선수와 비교해봤을 때도 고작 0.06초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트는 출발 속도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육상 스타트에 숨겨진 과학들과 재미있는 얘기들. 그리고 과학이 규정한 인간의 한계와 그것을 깨나가는 선수들의 얘기를 알아보자.

 

1. 스타트에 관한 모든 것

0.1초 룰이라는 것이 있다. 육상에서 출발반응속도가 0.1초 이하로 나오는 경우에는 부정출발이 선언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에 의하면 인간이 청각 신호를 받아 뇌로 전달하는데 최소 0.08초, 뇌의 지시에 따라 근육이 반응하는데 최소 0.02초가 걸린다. 즉 0.1초 이내에 소리를 듣고 근육이 반응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출발 총성을 듣고 아무리 빠르게 반응하더라도 결코 0.1초 이내로 반응할 수 없고 만일 선수가 0.1초내에 스타트를 하게 되면 예측 출발을 했다 하여 바로 실격이다.


그런데 0.1초는 엄청나게 짧다. 육안으로는 판독 불가능이다. 그럼 0.1초 이내 출발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선수가 출발할 때 발을 지지해 주는 스타팅 블록은 부정스타트발견장치와 연결되어 있다. 각 레인별 심판은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고 선수가 부정 출발을 할 경우에 헤드폰에서 소리가 난다. 만일 총소리나 공인된 스타트장치가 발사되기 전에 심판이 헤드폰에서 음향소리를 듣는다면 부정스타트발견장치의 반응시간을 검사한다.


참고로 하나 더 말하자면 스타트에 사용되는 총성 소리는 총구에서부터 선수들의 귀까지 도달하는 소리가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각 레인별로 선수 뒤에 스피커가 장착되어있어서 총성이 들리자마자 스피커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다. 0.01초라도 줄이기 위한 선수들과 육상 관계자들의 노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2.
과학이 규정한 인간의 한계

과거에는 인간의 100m 기록이 절대로 10초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1968년 미국의 짐 하인스가 9.95를 찍어 버렸다. 충격이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9.8로 규정했다. 정말로 30년 동안 9.8의 벽을 넘은 선수가 없었는데 99년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 9.79를 찍어 버렸다. 이 또한 충격이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9.7로 규정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9.7대의 기록이 쏟아져 나왔지만 누구도 9.7초의 벽을 깨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우사인 볼트가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2개월 앞두고 종전 세계기록을 9.72로 앞당기더니 올림픽에서는 9.69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것도 막판 스퍼트는 하지도 않고 말이다. 이후 그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58초로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어 불과 1년도 안되는 사이 인간의 한계라는 9.7초를 넘어서서 세계 기록을 0.11초나 앞당겼다. 인간의 한계를 말했던 과학자들을 굉장히 민망하게 만들어버린 사건이 아닐수 없다.볼트가 등장하면서 과학자들은 100m 인간 한계를 앞다퉈 분석했고 그 결과 인간의 한계는 9.4초라는 전망을 했다.

 
과학으로 규정한 100m, 인간의 한계는 시간이 흐르고 좋은 선수들이 나옴에 따라 깨지고 극복됐다.
언제 또 볼트같은 선수가 나와서 9.4초의 벽을 돌파할지 모른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는 세상이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를 과학이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0.1초의 룰도 인간의 한계를 섣부르게 예측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2003년 파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단거리 선수 존 드럼몬드(John Drummond)0.1초 이내의 반응 속도로 출발 했고 그로 인해 실격 당했다.

그 당시 존 드럼몬드는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I didn't move)”를 연신 외치며 경기장에 대자로 드러눕기까지 했지만 결국 1시간만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어쩌면 존 드럼몬드가 정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반응 속도를 보였던 것이 아닐까?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향상. 두 영역의 한계점이 만나는 곳에서 인간의 한계가 존재하고 그것을 늘 넘어서왔기 때문에 스포츠가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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