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수정(한국외국어대학교)
11월, 겨울의 문턱에서 차고 시린 바람이 신묘년의 끝도 머지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목도리와 장갑으로 추위를 견디지만 어떤 이들은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추위를 녹인다. 유독 추웠던 어느 날 코트 위의 뜨거운 열정을 담으러 문일중∙고등학교 배구단을 찾아갔다. 1979년 창단된 문일고등학교 배구단은 전국대회에서 매년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등 그 역사만큼 실력도 빼어난 팀이다. 문일고등학교가 배출한 현역 선수로는 현대캐피탈의 이선규, 주상용 선수, 대한항공의 이영택, 김웅진, 진상헌 선수 등이 있다. 고교 대회가 끝났음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문일고 선수들과 이들의 제2의 아버지, 이호철 감독님과의 만남으로 마음만큼만은 따스한 겨울이다.
<문일고등학교 배구단 탐방기>
* 주장 권영일 선수에게 들어보는 즐거운 우리 팀
문일고등학교 배구 선수들을 체육관에서 기다리며 훈련시간에 맞춰 한 명 한 명 체육관으로 들어왔을 때, ‘우와 키 크다. 부럽다!’라고 감탄하며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들의 키는 우러러 봐야할 정도로 무척이나 컸지만,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서 ‘역시 고등학생이다. 귀여워!’ 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일고등학교 배구단 주장 김승주 (사진의 맨 왼쪽)선수를 선수들이 훈련하기전 주어진 짧은시간에 인터뷰를 통해 만날수있었다.
- “즐거운 우리 팀”
우리 고등학교 선수는 총 9명이며 대통령배, 전국체전, CBS배 등 많은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성적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감독님과 선수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팀의 마스코트는 분위기 메이커인 고1 황원선 선수입니다. 저는 우리 배구부의 제 2의 감독으로써 감독님과 선수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중간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주장의 리더십이란 팀의 중심에 서서 멤버들의 완벽한 팀워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료와 후배들을 대표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것, 그리고 후배들이 잘 안 따라줄 때 가장 힘이 들지만, 우리 팀의 대표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맡은 바 열심히 해내려고 합니다.
- “나에게 배구란?”
저에게 배구란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열정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감독님의 권유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배구와의 인연이 현재는 일주일에 6번, 하루 4시간씩 훈련할 만큼 꾸준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권영일군 외에도 다른 선수들에게 “나에게 배구란?”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나의 꿈과 삶’, ‘내 인생의 한편의 드라마’와 같이 배구가 그들의 전부라는 감정을 잘 표현해주었다.
- “감독님, 그리고 학교에 바라요.”
이호철 감독님의 훌륭한 리더십과 전술력으로 우리 학교가 명문 배구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꾸준한 연습량도 중요하겠지만 감독님께 개인별 맞춤 트레이닝도 심층적으로 받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선수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시합 전 합숙 비용이나 시합 출전 시 재정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현재 체육관이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운 것이 문제여서 더 나은 체육관 시설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기자가 체육관을 방문했을 당시 난방을 사방으로 틀었음에도 실외로 느껴졌을 만큼 실내 체육관은 너무나도 추웠다.)
* 이호철 감독님의 배구로 전하는 솔직담백한 이야기
문일고등학교 배구단 감독직과 한국중∙고배구연맹 총무이사직을 겸임하고 계시는 이호철 감독님을 만났다. 이호철 감독님 말씀 하나하나에서 선수들을 친자식같이 아끼시는 부성애와 배구 발전을 위한 크나큰 애정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Q. 감독님. 안녕하세요. 선수단 분위기가 참 따뜻해 보입니다.
A. 네.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잘 커주고 있어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모든 중∙고등학교 배구단이 그렇겠지만 우리 팀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배구를 하는 친구들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기초수급대상자인데도 정책적으로 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친구들, 재단이나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재정적 지원을 받는 친구들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만 배구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친구들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다른 문제들로 스트레스 안 받고 배구를 즐겁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직접 이곳저곳 지원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문일고등학교 감독직을 20년 이상 해왔는데 선수들 한 명 한 명 애틋하고 다 제 자식 같습니다.
Q. 감독님과의 인터뷰 전 체육관 시설을 둘러보았는데,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한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도 명문 고교 배구단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A. 우선 문일고등학교의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이 가장 큰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잘 따라와 주는 선수들과 코치진의 공이 큽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지훈련을 가거나 대회 출전을 할 때면 늘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칩니다.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여 주고 싶지만 학교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러질 못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배구공이 없어서 배구를 못하는 것은 아닌데, 용품에 대한 지원보다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배구만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융통성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점차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면서 선수의 길이 막막해지면 중국집 배달, 주유소 아르바이트의 길로 빠지기가 대다수입니다.
Q. 고교 배구의 현실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배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이 발전하려면 선수층이 두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생각보다 적은 문일고 배구단 선수 인원에 깜짝 놀랐습니다.
A. 선수층이 두터워야 한다는 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현재 서울시에 초등학교 배구팀이 딱 1팀 있습니다. 2팀 있었던 게 지금은 신강초등학교 딱 한 팀뿐입니다. 선수들이 있어야 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인데, 선수 수급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학교만 해도 선수 수급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체적 조건이 탁월한 친구들을 조기에 발굴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서울 인근에 있는 친구들만을 보고 데려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 만큼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선수들의 처우가 정책적으로 뒤받쳐주고 전반적인 인식이 달라지면서 개선되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 종목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많지만(과학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 분석 지원) 단체 종목에 대한 지원은 두드러지지 않는 이상 지원을 받기란 참 힘이 듭니다.
Q. 선수 수급 문제 외에 우리나라 배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두터운 선수층 뿐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도 배구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도자 처우가 이대로 가다간 10년 안에는 배구 지도자를 하려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며 계약직에다가 보너스는커녕 성적이 좋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로 팀 내에서는 경직된 분위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는데 해외 선진국 팀들을 보면 늘 자유롭고 즐거운 문화를 추구합니다. 배구 선진국의 지도자 처우 환경 사례를 찾아보아 이를 적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총무이사로 있는 한국 중∙고배구연맹에서는 지도자 교육을 위하여 워크샵을 진행하였습니다. 워크샵을 통해 지도자의 자질향상, 지도자 간 공감대 형성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배구 뿐 아니라 스포츠 종목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적 정책이 지도자 양성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전문화된 지도자를 계속적으로 양성하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도 제공하는 정책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배구도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대표 배구선수, 체육 선생님, 헬스장 관장, 프로 배구팀 감독 등 각양각색의 꿈들을 품고 있는 문일고등학교 친구들의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소리를 직접 느끼고 온 기자는 이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할 것이다. 이 어린선수들이 지금의 뜨거운열정과 목표대로 그들의 전부인 배구의 꿈을 환경에 의해 포기하지 않고 즐기도록 말이다. 문일중∙고등학교 배구단 파이팅! 우리나라 배구 발전의 기둥,
한국 고교 배구 파이팅!
※ 전국 중∙고등학교 배구팀에 대해 더 알고자 한다면 한국중고배구연맹(http://www.kmhv.com/)을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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