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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일요일에 스포츠 참여는 형벌? : 잉글리시 선데이


                                                                                                             글 / 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영국의 민속학자 스트럿트(J. Strutt)는 특정한 국가의 국민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레저 생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동적이고 건전한 여가 문화를 지닌 국가의 장래는 밝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레저 문화도 국가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주말엔 스포츠 인파로 가득하다.

스포츠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많은 인파들을 볼 때마다 국민의 레저가 역동적인 종류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사회가 더욱 건강해져 갈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일요일의 스포츠 인파들을 접할 때마다 흥미로운 용어 두 가지도 머리를 스친다.
“잉글리시 선데이(English Sunday)”라는 말“애슬레틱 선데이(Athletic Sunday)”라는 말이다.

영국의 기독교 신교 교파들은 일요일이나 기타 성일(聖日)에 쾌락적인 스포츠 활동을 하는 자체를
죄악시하고, 일요일의 스포츠 참여를 금지하였으며, 적발될 시에는 형을 받았다.
그러한 영국의 전통은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사회로도 전파되어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일요일의
스포츠 참여는 금기사항이었다. 이러한 전통을 영미 사회에서는 ‘잉글리시 선데이’ 전통이라고 한다.

잉글리시 선데이 전통은 20세기까지도 이어졌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육상 대표선수로 참가했던 프린스테인(Myer Prinstein)은
세계 기록보유자였고, 예선에서 7.17m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경기일정이 일요일로
잡히자 일요일 경기를 할 수 없다며 포기했다. 청교도적인 신념의 발로였다.

그는 그 다음 올림픽에 다시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 더 리얼한 역사는 실록 영화 『불의 전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에릭 리들(Eric Liddell) 이야기를 통해서 잘 볼 수 있다.

청교도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1924년 파리 파리올림픽 100m 경기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그러나 일요일로 경기 일정이 잡히자
“저는 주일(主日)에는 달리지 않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출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영국 언론은 그를 배신자로 몰았다.
그러나 동료 에이브람(Harold Abrahams)이 1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리들이 그 다음 주에 열린 400m경기에서 주 종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금메달을
획득해버렸다.

그는 청교도적인 신념에 따라 ‘잉글리시 선데이’ 전통을 지킨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영국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불의 전차』라는 영화로 남게 되었다.
미국 프로 야구의 역사에서도 1870년까지 ‘잉글리시 선데이’ 전통은 유지되었다. 노동자들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야했고, 야구장에 갈 수도 없었으며, 구단들도 일요일에 야구 경기를 하면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일정을 잡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일요일의 스포츠 활동을 금지하는 법인 소위 ‘블루로(Blue Law)’라는 것이 있었고,
일요일에 야구경기를 개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오랫동안 일요일에는
야구 경기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1880년대까지 일요일 골프 또한 미국 사회에서 금기사항으로 통했다.
세월의 흐름과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인간의 의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일요일의 스포츠 금지 전통은 일요일의 스포츠 권장 전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YMCA에는 영국의 강건한 기독교주의(Muscular Christianity) 사상을 수용하면서
스포츠 혁명을 일으켰다.
일요일의 운동 금지라는
‘잉글리시 선데이’ 전통은 사라지고, 일요일에도 건전한 스포츠 활동을
권장하는 ‘애슬레틱 선데이(Athletic Sunday)’라는 전통이 생겨났던 것
이다.

이 신조어의 탄생지는 뉴욕 YMCA이었고, 스포츠 혁명의 베이스캠프는 매사추세츠의 스프링필드
YMCA이었다. 귤릭이라는 YMCA 지도자는 네이 스미스에게 농구를 창안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제자였던 모건은 배구를 창안했다.

YMCA의 스포츠 창안과 보급 운동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YMCA 각 지회는 체육관을 건립하고,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농구와 배구의 창안은 물론 소프트볼의 규칙을 만든 것도 YMCA이었으며,
그 외 공립학교운동경기대회 조직, 1969년 맥가우YMCA(Mcgaw YMCA) 무용가 미셋(Judi Missett)의
재즈사이즈(Jazzercise) 운동 전개, 1970년 소렌슨(Jackie Sorenson)의 댄스운동(dance exercise) 전개,
‘에어로빅스(aerobics) 붐(boom)의 선도, 보디 빌딩 운동의 확산 등은 모두 YMCA가 이끌어낸 것이었다.

YMCA는 청소년들을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유도하려 하였으며, 일요일에도 건전한 스포츠를 권장하는
소위 애슬레틱 선데이 전통을 만들어갔다. 그러한 전통은 점차 미국 전역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잉글리시 선데이‘라는 전통은 사라지고 ’애슬레틱 선데이‘라는 전통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는 자연환경, 종교, 사회사상 등의 영향을 받으며, 진화한다.
스포츠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신교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잉글리시 선데이’라는 전통이 강하여 일요일이나
기타 성일(聖日)의 스포츠 참여를 금지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미국 YMCA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그러한 전통은 사라지고
 ‘애슬레틱 선데이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

복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YMCA의 스포츠 보급과 확산운동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 서양 스포츠가 소개된 것은 기독교의 복음주의 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오늘날 미국에서 조직화된 농구, 배구, 야구 등과 같은 스포츠가 우리나라의 빅4(Big 4) 스포츠가 된 것도
이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오늘날은 일요일 오후에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IOC도 일요일 경기 일정을 잡으며 눈치를 보지 않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혼합복식 배드민턴 선수들은
일요일 밤을
‘배드민턴 선데이’로 만들지 않았던가?
일요일에도 건강의 유지 증진이나 행복추구를 위해 스포츠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말이나 휴일의 스포츠 인파를 바라볼 때마다 스포츠 문화사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잉글리시 선데이’라는 말과 ‘애슬레틱 선데이’라는 용어가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종종 미국 스포츠 보급 운동을 주도했던 YMCA 캐치프레이즈까지도 머리를 스친다.

“튼튼한 아이, 튼튼한 가족, 튼튼한 지역사회 건설
(We build strong kids, strong families, strong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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