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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여자축구 U-17 월드컵 우승이 남긴 숙제는?

                                                                              글/김민정(연세대학교 대학원 스포츠 레저학과)

연휴가 끝나가는 일요일 아침, 아니 새벽 7시부터 아파트의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고, 승부차기 마지막 장슬기 선수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은 아파트 전체가 시끌벅적 했다. 축구라는 종목에서 우리나라가, 그것도 여자 선수들이, 게다가 주니어 선수들이 어느 기사에서나 보듯 ‘FIFA가 주관하는 대회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대단한 성과이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 결과물이다. 우승, 대회 MVP, 득점왕까지.. 한없이 축하해줘야 하며 축구연맹의 체계적 선수관리 시스템은 꼭 본받아야 할 점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필자는 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자 한다. 지난번 여자 청소년 대표팀의 U-20 월드컵의 4강을 축하하며 ‘한국 축구, 이제 4강으로도 배고프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쓰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번 U-17 월드컵에서의 우승이라는 결과를 보고 스스로에게 ‘그럼 이제 우승도 했으니 배부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질문의 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절대 배부르지 않다’라는 것이었고, 오히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만이 입에서 맴돌았다.
 



1. 그녀들의 행보에 주목하라!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중학교 선수에게는 고등학교 진학이, 고등학교 선수에게는 대학교 및 실업팀에 대한 진로가 제일 걱정일 것이다. 자신의 종목을 즐기고, 세계무대에 나가 자신을, 그리고 국가를 알린다는 명제보다 그들에게는 코앞에 닥친 진로문제가 제일 어려운 것이다. 이번 대회의 주전 선수들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345명의 고등학교 여자 축구 선수들 중에서 뽑힌 선수들이다. 사실, 대학교 입시경쟁률보다도 낮은 경쟁률 속에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경쟁률과 선수 인프라가 꼭 경기력을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누가 보아도 기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만을 치켜 세워주고 끝나면 안 된다. 조사된 기록을 살펴보면 현재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팀, 대학교 6개 팀에 불구한 여자 축구팀의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녀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 주어야 한다. 적어도 세계정상급 선수들이 팀이 없어서 혹은 지원이 부족하여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기로에 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팀을 늘린다거나 그럴 수는 없더라도 어린 선수들이 마음껏 공을 차고 학교를 다니며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을 잘 컨트롤 하는 그녀들이라 할지라도 그런 문제들까지 그녀들이 컨트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그녀들을 뛰게 하라!

며칠 전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 김병지 선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안하다, 태극 소녀들아’라는 제목으로 현재 여자 축구의 어려움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번 대회를 뛰는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여자 축구는 30년 전의 남자 축구와 비슷한 현실이라고 한다. 우리는 많은 스포츠 선진국들(유럽, 북미 등)의 시설은 어떻다는 둥 지원이 어떻다는 둥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들처럼 완벽하고 충분한 시설과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학교체육 시스템과 그들의 클럽시스템의 차이, 그리고 인구밀도에 따른 공간 부족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식의 변화는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세계 정상에 대한민국을 올려놓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스포츠만큼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파급력이 좋은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러한 선수들에게 우리는 일시적인 포상금보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질 높은 경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들을 열거할 때 부모님이나 지도자 이외에 국가에서 지원해준 훌륭한 시설적인 부분도 언급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국위선양이 되지 않을까?


3. 헛배로 끝나지 않게 하라!


마지막 결승 승부차기 장면에서 득점왕과 대회 MVP를 차지한 여민지 선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 긴장되는 순간, 공을 차기 전 여민지 선수는 축구공에 키스를 하고 잔디를 양손으로 쓸어내렸다. 얼마나 간절하고 얼마나 더 집중하고 싶어 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관중과 세계적으로 방영될 경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골대의 그물만을 흔들길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승! 세계정상! 당연히 세계를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필자도 (자랑은 아니지만) 세계 정상에서의 그 짜릿하고 심장 터질듯 한 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 기분을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그 배부름. 우리는 그 배부름이 일시적인 헛배로 전락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세계정상에 그녀들이 올랐다고 해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에게는 1년 1개월이 다르고, 대회마다 최대의 기량발휘와 컨디션, 그리고 때론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그 것이 스포츠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그녀들은 U-20, 그리고 월드컵의 주역이 되어 필드를 누려야 하는 선수들이다. 명심해야할 점은 ‘올라가는 것은 어려워도, 내려오는 것은 쉽다’라는 것이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정신력’과 ‘투혼’만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응원을 받음과 동시에 국가의 확실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리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스포츠의 또 하나의 획을 그은 이번 U-17 월드컵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스포츠인 으로써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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