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복희 (안동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올림피아 제전경기 우승자에게 수여한 상은 야생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 코티노스(Cotinos)였다. 올림피아의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관에 대한 기원은 헤라클레스와 관련이 있다.
신화에 의하면 야생 올리브 나무는 헤라클레스가 아르테미스에게 바칠 암사슴의 황금뿔을
구하기 위하여 히페르보레아(Hyperborean)의 땅에 갔다가 올리브 나무를 가지고 와서 올림피아에 심었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를 점령한 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올림피아 제전 경기를 창설하고
형제들과 달리기 경기를 해서 이긴 사람의 머리 위에 야생의 올리브 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씌워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최초로 델포이의 신탁을 듣고 상으로 야생 올리브로 관을 만든 사람은 이피토스 왕이었다.
7회 이전 올림피아의 스타디온 경주에서는 우승자에게 빨간 사과를 상으로 주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피토스 왕은 빨간 사과가 헤라클레스의 전설과 올림피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7회 올림피아 제전경기를 위해서 이피토스 왕은 델포이의 사제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
여사제는 거미줄에 쌓여있는 야생의 번식력이 강한 올리브 나무를 찾아야 한다고
이피토스 왕에게 말하였다. 올림피아에 도착한 왕은 알티스의 푸른 숲 한 가운데에서
거미줄이 쳐져있는 이슬로 빛나는 야생 올리브 나무를 발견하였다.
이피토스 왕이 올리브 나무를 찾으려고 왔을 때는 아침 해가 비치고 있었으므로
왕은 이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고 그 곳을 성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야생 올리브 나무는 올림피아에서 신성시되었다.
그리고 제7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이 야생 올리브 나뭇잎으로 만든 관을 수여 받았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양쪽에는 오피스토모스(Opsthodomos)와 마주보고 있는
칼리스케파노스(Kallistcphanos)라는 아름다운 영관(榮冠)의 올리브 나무가 서 있었다.
최고의 영예를 엮어 주는 영관은 이 나무의 가지로 만들었는데 올림피아 제전경기 우승자의 화관은
부모가 살아 있는 청년이 황금 낫으로 자른 신성한 올리브 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이 관을 헤라신전의 황금과 상아로 된 탁자에 올려놓으면 심판은 그것을 우승자에게 씌워 주었다.
우승한 선수는 올리브관을 받았을 때 신들의 일행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 믿었다.
경주가 무승부로 끝나면 올리브관은 신에게 바쳐진다는 규칙이 있었다.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야생 올리브관 이외에 붉은 양털 띠와 종려나무 가지를 받았다.
운동선수들은 도시의 명예와 올림피아 신들의 영광을 위해서 참여했기 때문에
올리브관, 양털 띠,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에 대한 표시였다.
종교적인 관습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양털 띠는 보통 신성한 대상을 장식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양털 띠를 두르는 목적은 우승자를 신성화한다는 의미이다.
붉은 색은 힘을 강하게 하며 그것을 입는 사람에게 힘이 옮겨간다는 것을 뜻한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후 선수들은 승리한 뒤에 즉시 종려나무가지를 받았으며
5일째 공식적인 대관(戴冠) 의식에 갈 때까지 머리에 이것을 두르고 다녔다.
종려나무가지는 우승자로 확인되면 현장에서 즉시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작가 겔리우스(Gellius)는 왜 우승자에게 종려나무의 가지를 수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화에 의하면 야생 올리브 나무는 헤라클레스가 아르테미스에게 바칠 암사슴의 황금뿔을
구하기 위하여 히페르보레아(Hyperborean)의 땅에 갔다가 올리브 나무를 가지고 와서 올림피아에 심었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를 점령한 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올림피아 제전 경기를 창설하고
형제들과 달리기 경기를 해서 이긴 사람의 머리 위에 야생의 올리브 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씌워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최초로 델포이의 신탁을 듣고 상으로 야생 올리브로 관을 만든 사람은 이피토스 왕이었다.
7회 이전 올림피아의 스타디온 경주에서는 우승자에게 빨간 사과를 상으로 주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피토스 왕은 빨간 사과가 헤라클레스의 전설과 올림피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7회 올림피아 제전경기를 위해서 이피토스 왕은 델포이의 사제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
여사제는 거미줄에 쌓여있는 야생의 번식력이 강한 올리브 나무를 찾아야 한다고
이피토스 왕에게 말하였다. 올림피아에 도착한 왕은 알티스의 푸른 숲 한 가운데에서
거미줄이 쳐져있는 이슬로 빛나는 야생 올리브 나무를 발견하였다.
이피토스 왕이 올리브 나무를 찾으려고 왔을 때는 아침 해가 비치고 있었으므로
왕은 이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고 그 곳을 성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야생 올리브 나무는 올림피아에서 신성시되었다.
그리고 제7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이 야생 올리브 나뭇잎으로 만든 관을 수여 받았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양쪽에는 오피스토모스(Opsthodomos)와 마주보고 있는
칼리스케파노스(Kallistcphanos)라는 아름다운 영관(榮冠)의 올리브 나무가 서 있었다.
최고의 영예를 엮어 주는 영관은 이 나무의 가지로 만들었는데 올림피아 제전경기 우승자의 화관은
부모가 살아 있는 청년이 황금 낫으로 자른 신성한 올리브 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이 관을 헤라신전의 황금과 상아로 된 탁자에 올려놓으면 심판은 그것을 우승자에게 씌워 주었다.
우승한 선수는 올리브관을 받았을 때 신들의 일행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 믿었다.
경주가 무승부로 끝나면 올리브관은 신에게 바쳐진다는 규칙이 있었다.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야생 올리브관 이외에 붉은 양털 띠와 종려나무 가지를 받았다.
운동선수들은 도시의 명예와 올림피아 신들의 영광을 위해서 참여했기 때문에
올리브관, 양털 띠,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에 대한 표시였다.
종교적인 관습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양털 띠는 보통 신성한 대상을 장식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양털 띠를 두르는 목적은 우승자를 신성화한다는 의미이다.
붉은 색은 힘을 강하게 하며 그것을 입는 사람에게 힘이 옮겨간다는 것을 뜻한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후 선수들은 승리한 뒤에 즉시 종려나무가지를 받았으며
5일째 공식적인 대관(戴冠) 의식에 갈 때까지 머리에 이것을 두르고 다녔다.
종려나무가지는 우승자로 확인되면 현장에서 즉시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작가 겔리우스(Gellius)는 왜 우승자에게 종려나무의 가지를 수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종려의 잘라낸 가지에 무게를 가하여 점점 더 무겁게 내리누르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생가지는 밑으로 처지지 않고 그 힘에 저항하여 오히려 위로 튀어 올라온다.
플루타르크의 말에 따르면 이 나무는 압박과 중압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는 성질을 가졌으므로
승리의 상징으로 수여하였다.
우승자에게 주어진 양털띠와 종려가지
자료출처: (Ekdotike Athenon S. A.(1982), The Olympic Games in Ancient Greece. p. 139)
우승자의 표시로 주어진 양털 띠와 종려나무가지는 경기 직후에 우승자에게 수여되었다.
그러나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경기의 마지막 날 대관식에서 올리관을 상으로 받았다.
관은 종교적 상징, 기도와 희생제를 동반하는 표시였지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올리브관은 제우스 신을 숭배하기 위한 표시이자 승리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 상은 교훈적 가치가 크다.
선수들은 어떤 재화보다 더 값지고 검소한 올리브관을 획득하기 위해서
고결하고 공정하고 품위있게 경기를 치렀으며 올리브관의 영예는 개인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그들의 가족, 씨족, 도시, 조상, 신들을 위한 선물로 바쳐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경기에서는 우승자의 승리를 기념하고 찬양하는 색다른 관습이 또 있었다.
가장 위대한 조각가가 경기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용되었고
위대한 서정시인 또한 올림피아의 대관식이나 출신 도시의 개선식 행진에서
소년들의 코러스로 불려지게 될 승리의 찬가를 지어서 우승자의 영광을 축하하였다.
우승자는 승리의 기념으로 알티스의 성스러운 정원에 조각상을 세우고
거기에 승리하게 된 사유를 적어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것은 파격적인 명예였다.
우승자 조각상은 찬양할만한 행위로서 영원히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만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경기, 즉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조각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
플리니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3회 승리를 기록한 우승자에게는 인물상을 새긴 등신대의 조각상을
세우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경기에서는 민족 최고의 시인이 우승자에게
그의 폴리스를 초월해서 송시(訟詩)를 바쳤다.
승리는 최대의 영광이다.
우승한 선수를 위해서 임명된 시인이 최고의 영광된 순간을 노래한 승리의 찬가는
우승자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시인들은 올림피아 제전경기 우승자들의 업적을 신화나 전설, 구전으로 꾸몄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에게 주어진 올리브관은
얼마나 신성하고 영예로운 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승자들은 아레테(arete)를 추구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리스인들은 이들의 탁월성을 예찬하기 위하여 올리브관과 함께 조각상이나 찬가를 통해서
영예를 기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생가지는 밑으로 처지지 않고 그 힘에 저항하여 오히려 위로 튀어 올라온다.
플루타르크의 말에 따르면 이 나무는 압박과 중압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는 성질을 가졌으므로
승리의 상징으로 수여하였다.
우승자에게 주어진 양털띠와 종려가지
자료출처: (Ekdotike Athenon S. A.(1982), The Olympic Games in Ancient Greece. p. 139)
우승자의 표시로 주어진 양털 띠와 종려나무가지는 경기 직후에 우승자에게 수여되었다.
그러나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경기의 마지막 날 대관식에서 올리관을 상으로 받았다.
관은 종교적 상징, 기도와 희생제를 동반하는 표시였지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올리브관은 제우스 신을 숭배하기 위한 표시이자 승리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 상은 교훈적 가치가 크다.
선수들은 어떤 재화보다 더 값지고 검소한 올리브관을 획득하기 위해서
고결하고 공정하고 품위있게 경기를 치렀으며 올리브관의 영예는 개인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그들의 가족, 씨족, 도시, 조상, 신들을 위한 선물로 바쳐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경기에서는 우승자의 승리를 기념하고 찬양하는 색다른 관습이 또 있었다.
가장 위대한 조각가가 경기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용되었고
위대한 서정시인 또한 올림피아의 대관식이나 출신 도시의 개선식 행진에서
소년들의 코러스로 불려지게 될 승리의 찬가를 지어서 우승자의 영광을 축하하였다.
우승자는 승리의 기념으로 알티스의 성스러운 정원에 조각상을 세우고
거기에 승리하게 된 사유를 적어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것은 파격적인 명예였다.
우승자 조각상은 찬양할만한 행위로서 영원히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만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경기, 즉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는 조각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
플리니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3회 승리를 기록한 우승자에게는 인물상을 새긴 등신대의 조각상을
세우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경기에서는 민족 최고의 시인이 우승자에게
그의 폴리스를 초월해서 송시(訟詩)를 바쳤다.
승리는 최대의 영광이다.
우승한 선수를 위해서 임명된 시인이 최고의 영광된 순간을 노래한 승리의 찬가는
우승자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시인들은 올림피아 제전경기 우승자들의 업적을 신화나 전설, 구전으로 꾸몄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우승자에게 주어진 올리브관은
얼마나 신성하고 영예로운 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승자들은 아레테(arete)를 추구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리스인들은 이들의 탁월성을 예찬하기 위하여 올리브관과 함께 조각상이나 찬가를 통해서
영예를 기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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