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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식 경기 전망…이제는 그만

                                                                                             글 / 이종세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한국 언론의 고질 ‘우리팀은 강점만 부각…상대 전력은 평가절하’
독자 시청자 판단 흐리는 주범… ‘분위기’
의식말고 진실 전달해야


주간동아, 한국의 98프랑스 월드컵 ‘16강 좌절’ 정확히 예측…기자협회상 수상

‘…과연 한국은 1승을 거둘 것인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 대답은 노(NO). 그럼 한국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은? 답 1무2패.…'
1998년 6월. 제16회 프랑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동아일보사 발행 주간지 ‘뉴스 플러스’(현 주간동아) 138호는 월드컵 특집 ‘한국, ‘꿈의 16강’… 골문은 바늘 구멍‚  ‘전문기관들 ‘확률5%’… “1무2패가 최고성적”‚제하의 기사에서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이 1무2패로 조 예선에서 탈락, 16강전 진출이 좌절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국내 언론은 신문과 방송 할 것 없이 거의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개최국인 한국이 16강전에 진출했으면 하는 염원과 함께 조 예선 통과를 단정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결과는? 멕시코에 1대3 역전패,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대5 참패, 이 때문에 차범근감독이 중도하차하고 김평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벨기에와 1대1로 비겼다. 1무2패, 뉴스플러스의 예상기사는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적중했다. 당시 이 기사를 썼던 동아일보 체육부의 김화성기자는 한국기자협회로부터 1998년 6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물론 김화성기자의 빈틈없는 취재와 예리한 통찰력이 완벽한 기사를 만들어냈고 영예의 기자상까지 받게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많은 기자들이 한국의 예선탈락을 예상하면서도 ‘분위기’ 때문에 기사화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그렇다 치더라도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등 3개 월드컵 본선에서 잇달아 예선 탈락했던 한국축구가 또 예선 탈락할 것이라고 썼을 경우 그 기자는 쏟아지는 주위의 엄청난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네티즌들로부터 날아드는 항의성 메일과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익명의 비난 전화를 각오했어야했다. 그러나 김화성기자는 이 같은 위험부담을 의식하면서도 과감히 한국의 16강 좌절을 예단했다. 정말 용기있는 결단이었다.


한국여자축구 사상 첫 세계 3위입상 쾌거 달성

태극낭자들이 한국축구사상 첫 세계 3위라는 큰일을 해냈다. 우리나라는 8월1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이하 여자 월드컵 3.4위전에서 남미의 콜롬비아를 1대0으로 물리치고 세계 3위의 쾌거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남자대표팀의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FIFA가 주관한 대회에서 한국축구가 3위에 오른 것은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 모두가 경하해야할 낭보다.

                            FIFA 주관대회에서 사상 첫 3위에 오른 20세이하 여자 대표선수들이 태극기
                            를 휘날리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필자가 축하해야 할 잔치상 앞에서 굳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쓰라린 기억을 되살린 것은 우리나라 스포츠 미디어가 보다 정확한 기사를 써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밀한 전력분석을 바탕으로 열세일 때는 열세라고 해야 하는데 사기 진작차원에서 ‘공은 둥글다’면서 ‘이길 수도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 결국 독자나 시청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지난6월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의 16강전 진출이 확정되자 국내 언론은 우리나라가 우루과이를 꺾은 뒤 8강전에서 미국-가나전 승자를 누르고 브라질이나 네덜란드와 4강전을 치를 수도 있다는 성급한 예상기사를 쏟아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국내 언론은 7월29일 밤 독일과의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도 한결같이 한국의 우세를 점쳤다. 한국팀의 열세나 불리가 불을 보듯 뻔 한데도...


남아공 월드컵 이어 20세이하 여자축구도 전력 과대포장…축구 팬들 혼란

객관적으로 독일은 개최국인데다 FIFA 랭킹 2위로 한국의 21위보다 훨씬 앞서있고 이번 대회 각종 통계에서도 우위가 분명했다. 독일은 예선부터 4전 전승이고 한국은 3승1패, 득점은 13대 11, 유효 슈팅도 43대 27로 독일 우세였다. 팀내 최다득점 역시 독일의 알렉산드라 포프가 7골, 한국의 지소연이 6골로 이 또한 한국의 열세. 다만 한국은 평균 볼 점유율이 56%로 독일에 2% 앞선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강점이 없었다.




                                    7월29일 밤 10시30분(현지시간) 독일 보훔 레비어파워 경기장에서 
                                    열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4강전에서 
                                    한국의 임선주(오른쪽)가 독일의 알렉산드라 포프와 헤딩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특히 우리나라는 여자축구 등록선수가 1,404명, 축구팀은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다 합쳐도 65개 팀에 불과한데 독일은 등록선수 105만301명에 여자 성인팀만 5천개가 넘어 여자 축구 저변에서도 크게 뒤져있는 상황.

누가 보아도 한국이 불리한 여건인데도 국내 스포츠 매체들은 ‘8년 전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진 한국 남자대표팀의 패배를 설욕할 것’이라면서 한국의 강점만 부각시켰다. 조직력과 체력이 뛰어나 전반 독일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낸 뒤  후반 중반이후 체력이 떨어진 독일을 압박하면 승산이 있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독일은 체격이 좋지만 후반에는 체력이 떨어지는 약점을 안고 있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경기결과는 1대5 참패였다. 우리나라는 지소연과 이현영 등이 신체조건이 월등한 독일의 수비를 뚫고 여러 차례 기회를 노렸으나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전반에 2골, 후반에 3골 등을 허용, 완전히 무너졌다. 독일은 북한과의 8강전에서도 2대0으로 승리했는데 한국에는 더 쉽게 이겼다.

모든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의 사명은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전력이 분명 열세인데도 한국의 강점만 부각시키고, 분명 우위에 있는 상대팀의 전력을 평가절하 하는 보도 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스포츠는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 세계7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세계5위에 오를 만큼 부쩍 컸다. 이제 한국 언론도 이에 걸맞게 ‘아전인수식’ 경기 전망이나 해설은 떨쳐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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