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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폴더/스포츠미디어

스포츠와 미디어가 만난다면 ?

                                                          글 / 유상건 (인디애나대학교 스포츠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



20세기 말에 벌어진 가장 세계적인 사건이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라는 농담이 있다.  ‘영국의 전
황태자비가
이집트인 애인을 만났고 일제 오토바이를 탄 벨기에인 파파라치에 쫓기다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독일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대만이 만든 칩에 저장된 후 한국인이 만든
컴퓨터를 통해 전세계인이
확인했다’는 우스개가 그것이다.

종종 글로벌리제이션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이 같은 사례는 사실 스포츠세계에서도 일상적으로
발견된다.
로버트 라이(1991)는  “ 캐나다 자본이 스웨덴에서 디자인한 하키용품은 덴마크에서
조립되며 델라웨어에서
품질개선을 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된다”고 말하고 있다. 골프 대회만
예를 들어도, 미국의 자본이 기획한
골프대회가 유럽인이 디자인한 아프리카의 골프장에서 열리고
웃통을 벗은 호주 갤러리가 지켜 보는 가운데
일본 관광객이 내민 수첩에 한국인 골퍼가 사인해
주는 모습을 중계를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이애나 비 사건과 골프대회의 공통점은 미디어다.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에게 전달되기 까지에는
언제나
미디어가 매개돼 있다. 그래서 미디어가 문제다. (혹자들은 미디어가 아니라 정작 기자가
문제라고도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점령 한 지 이미
오래다.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다.
스포츠라면 아예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범한
일상인 들에게는 이미 삶의 한 요소가 됐다. 미디어와
스포츠는 공기와 같이 우리를 둘러 싸고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섭취하는 음식처럼 이를 소비하고 있다.

미디어스포츠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90년대 말 케이블 방송을 포함해 33개 채널에서 동시에
10개의
스포츠경기를 중계했다. 매년 8000여개의 스포츠 경기가 전파를 탔고 이중 평균 22개 경기가
매일 방송됐다.
( 캐설린 앤 자넷의 ‘미디어스포츠연구:  미디어스포츠의  연구분야와 주제’ 참고).
우리나라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면서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진 데다
골프와 스포츠 채널이 폭
넓은 시청자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사실에 부합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광고도 미디어의 일종이다.
평균적인 미국인이 하루에 1만 6000개의 광고에 노출된다는 조사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치약을 짜는 순간부터 시작해 퇴근하면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라디오 광고를 듣는 우리의
하루를 생각할
때 미디어의 영향력은 놀랍기만 하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출근길 전철에서 읽는
각종 스포츠 뉴스는
회사 휴게실을 풍성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직장인들의 근무시간 중 스포츠 시청
문제는 월드컵이나 WBC
등 큰 경기가 열린 후에는 단골처럼 신문의 사회면이나 기업면에 등장한다. 

미디어와 스포츠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공생을 모색하는 불가분의 관계다. 미디어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고 스포츠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며 이를 통해 확대, 발전하고
있다. 미디어와
스포츠가 만날 때 탄생하는 다양한 현상은 흥미진진한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다. 
특히 모든 학문이 사회가
제기하는 요구와 필요에 대해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
연구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 가지 점에서 미디어스포츠 연구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체제를 불문하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 스포츠를 빼놓고 말 할 수 있을 까.


스포츠는 거대 자본이 모이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이벤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월드컵과 올림픽이다.  미디어가 상투적으로 표현하는 이들  ‘세계인의 축제’가 열릴 때는 거의 모든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공의 향방에 열광하거나 좌절한다.  기술발달에 힘입어 선수의 몸짓 하나
하나가 우리의 탄복과 신음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시대가 됐다.  미디어는 이들 스포츠 이벤트
보도에 집중한다. 스포츠를 주연으로 한 무대에 미디어라는 연출가가 최고의 드라마를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놓칠 수 없는 연구의 장을 제공한다.


미디어스포츠 연구는 우리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많은 주제를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스포츠는 세계로 열린 창’인 셈이다.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의 디어도어 베스터 교수는 참치에 미친(?) 사람이다. 그는 일본의 스시문화가
제트기와 냉동 기술을 등에 업고 어떻게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왜 일본의 맛과 문화가 뉴요커들을
사로잡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참치 관련 논문만 이미 수편을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글로벌리제이션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하물며 참치
(물론 큰 참치는 300 kg이 넘는다고 하지만)로도 가능한데 스포츠야
 말로 얼마나 무궁무진한 자료를 제공하겠는가. 

내셔널리즘이나 성차별, 권력 같은 추상적인 주제도 미디어스포츠 연구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해외 스포츠 현장에서의 성공이 왜 한국인에게는 그토록 중요할까? (미국 LPGA투어에서의 우승이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사례라고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가? 우리의 스포츠 기사를 분석해
보면 해석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70년대를 풍미했던 토털사커가 자신들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고 싶어한다. (문화적으로 우아하고 민족적으로
탁월한 오직 네덜란드인만이 창안할 수 있는 위대한 전술! 이들의 행태를 추적해 보면 내셔널리즘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젠더문제도 마찬가지다. 가장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은 곳 중의 하나가 미디어의 스포츠 보도 분야다.
보도량과 보도태도에서 이는 확실히 감지된다.  또 권력(Power)문제는 어떤가 국제스포츠기구를 둘러
싼 각 나라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총성은 들리지 않지만 치열함은 결코 그 보다 떨어지지 않은 채’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스포츠 세계다.

학문세계(Academia)내에서 해결해야 할 독특한 연구 문제와 연구 분야가 있다면 해당 학문입장에
서는 학문적 정체성(Identity) 과 관련해 확실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이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효율적이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연구방법을 떠나 연구주제에 대해서만 말 한다면 미디어스포츠 (Mediasport) 는 일종의
축복이다. 미디어스포츠 연구는 우리 사회로 연결된 또 하나의 내부 통로다. “미디어를 알면 스포츠가
보이고 스포츠를 통해 미디어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 미디어스포츠 연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설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어떨까? 스포츠 연구자들의 멋진 응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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