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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의 마법, 죽을 만큼 즐겨라~

                                                                                         글 / 박건만 (한국체육언론인회 부회장)


세계 골프가 다시 한국 선수의 마법에 걸렸다.
이번엔 남자다.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서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하더니
지난 17일엔 ‘바람의 아들’ 양용은(37)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 타이거 우즈를 꺾었다.
미국프로골프 PGA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인 처음으로 챔피언에 오른 것 이다. 

타이거 우즈가 누구인가.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가도 마지막 날, 타이거 우즈만 만나면
제 실력 발휘를 못해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선수가 한 둘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오죽 했으면 아일랜드의 한 베팅 업체가 이번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가 2라운드에서 선두에
나서자 최종 결과도 보지 않고 우즈에게 돈을 건 사람들에게 일찌감치 원금의 5배를 나눠줘 2
12만 달러(한화 약 26억5천만원)를 허공에 날렸을까.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업체는
마지막 날, 타이거 우즈가 이기면 더 많은 배당이 예상돼 배당률 5대1선에서 손실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던 셈이다. 그 만큼 양용은이 우승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기적에 가까운 승리였다.  

이런 어마 어마한 우승의 원동력, 아니 마법은 어디서 나왔을까.
많은 사람들이 분석하고 많은 이론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두 가지 만은 확실 것 같다.
골프를 죽을 만큼 하면서도 즐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그맨 김제동이 TV ‘무릎 팍 도사’에 나온 적이 있다. 사회자가 고민을 물었더니
그는 의외로 야구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 야구 스타 이승엽과
오랜 친구사이여서 야구를 좋아 하는데 자신이 실제로 해보니 별로 기량이 늘지 않아
늘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사회자 강호동이 물었다. “죽을 만큼 해봤습니까?”.
김제동은 잠시 생각한 뒤 “방송은 죽을 만큼 해봤는데 야구는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결국 김제동은 방송에서 죽도록 노력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고 야구에선 죽도록
노력을 안했기 때문에 기량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잘 나간다는 CEO들의 필독서 가운데 ‘아웃 라이어-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란
책이 있다. 여기서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제시한다. 어느 분야이든 간에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라면 하루 3시간씩
잡아도 약 10년이 걸리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비틀스는 무명시절 독일 함부르크시의 바에서 하루 8시간씩 3년간 연주를 하며 기량을 닦았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사립고등학교에 다닐 때 밤새 컴퓨터를 만졌는데 그 시간이 어림잡아
1만 시간은 됐다고 한다.
우리의 발레리나 강수진은 한 시즌 토슈즈 150켤레를 버릴 정도로 연습해 별명이 ‘연습벌레’다.
김연아 역시 뛰어난 기량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늘의 축복이 아니라 죽을
만큼 노력한 대가인 것이다. 전담 코치 브라이언 오서는 그의 자서전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 “연아의 유일한 결점은 지나치게 연습하는 완벽주의자라는 점”
이라고 술회했다. 

양용은. 그 역시 한 눈 팔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골프를 쳤다.
그는 프로 데뷔 3년만인 1999년 상금랭킹 9위에 올랐지만 벌어들인 돈은 1800만원 남짓이었다.
스스로 “구두닦이 전국 9위를 해도 이것보다는 많이 벌겠다”고 말할 정도로 적은 돈벌이였지만
먼 밝은 미래를 위해 묵묵히 연습장과 대회장만 오갔다. 김연아가 하나의 점프를 익히기
위해 무려 3000번의 엉덩방아를 찧을 동안 양용은은 하나의 샷을 다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수십만 개의 볼을 치고 또 쳐댔다.

양용은이 졸업한 제주고의 서정필 교장은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좋아 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열심히 하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용은이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두 살 때 미국의 유명 TV쇼에 나와 골프의 신동임을 일찌감치
알렸다. 양용은은 그러나 TV 쇼는 커녕 밥 먹고 살기 어려워 19세 때 골프채를
처음 손에 쥐었다. 이후 양용은이 어떤 역경을 겪었는지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양용은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우승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공 10박스 치면
나는 100박스 칠 정도로 골프가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두 번째 마법은 바로 즐거움
이었다.
그의 이런 ‘멘탈 게임의 승리’가 바로 이번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은 비결일 것이다.
마지막 라운드 내내 양용은은 긴장하기 보다는 배짱 좋게 즐기는 마음으로 샷을 날려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우승에 너무 집착해 힘이 잔뜩 들어가고 긴장되면 자기 실력이 제대로 나올 수 없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처럼 날아온 낭보 속에 이런 엄청난 노력의 피와 땀이 섞여 있었음을 잘 헤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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