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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농아인올림픽 참관 후기-도전과 극복의 감동의 무대

                                                                                                    글 / 이태영(스포츠포럼21상임대표) 


그곳에 좌절은 없었다. 어떠한 어두움도 보이지 않았다.
침묵 속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과 꿈을 향한 희망이 담겨 있을 뿐이다.
타이페이에서 본 제21회 세계농아인 올림픽은 이미 장애를 뛰어넘은 의지와 열망,
그리고 끝없는 도전과 극복의 정신을 보여준 감동의 무대
였다.
‘무성(無聲)의 역량(力量)’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 특별한 올림픽은
장애인올림픽과는 또 다른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지난 5일의 개막식은 베이징올림픽과 견줄 만큼 요란했다.
이것도 두 개 중국의 힘겨룸인지, 중국선수단은 피켓만 입장할 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정치적 이슈와 ‘죽(竹)의 장막’이 드리워진 게 유감이다.
‘타이페이 차이니스’의 한(恨)을 표출하듯 스타디움 밖의 피켓시위로 분위기는 결코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수 천 명이 참가한 북 공연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모든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북 치는 모습을 보며 진동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들의 ‘아우성’은 스탠드 전체를 흔드는 큰 울림으로 어떤 소리보다 더 큰 감동으로 물결쳤다.

흔히 국제행사에 등장하는 노래공연은 물론 오케스트라 연주가 없는 대신에
소리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무언극과 대만의 신화를 주제로 한 무용극이 인상적이었다.
‘지구는 우리 집’ ‘사랑을 나눕시다’ 등의 구호 또한 눈길을 끌었다.
이 이벤트를 통해 눈빛으로 대화하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이 대회를 연 대만은 이러한 자부심으로 국제수화(手話)교실을 개설하고
공무원 5천 명에 수화교육을 실시하여 보이지 않는 소통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소통의 노력은 여러 형태의 편견과 차별,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 지구촌 모든 가족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 했다.

지난 세월, 동계, 하계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 팬아메리칸 게임 등 많은 메가 이벤트를 지켜보면서
놀라운 스포츠파워와 명승부현장의 감동을 체험한바 있는 필자는 디플림픽(Deaflympic)으로 불리는
이번 타이페이의 ‘소리 없는 잔치’에서 ‘차별 없는 세상’ 으로 가기 위한 더 소중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81개 참가국이 겨루는 19종목의 경기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종합우승을 하느냐,
우리나라는 금메달 몇 개를 수확하느냐가 관심의 모두일 수는 없다.
이보다 더 주목되는 건 극복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무한감동의 드라마와 아름다운 도전의 이야기들이다.
더구나 이미 여러 가지 신화를 만들어낸 한국인의 불굴의 의지, 좌절을 모르는 성공스토리를 보고 싶다.

지금도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 한 장면, 그것은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인생을 살면서
우주물리학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여 뉴턴,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위인으로 존경 받는
스테펜 호킹 박사의 연구모습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시각, 청각에다 언어장애의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며 놀라운 의지로 인류 모두에게
숭고한 가르침을 준 헬렌 켈러 여사의 그 꿋꿋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몇 해 전인가 서울에서 열린 세계문화오픈에서 특별연사로 나온 재미태권도 그랜드 마스터 이준구 씨가
소개한 일화는 어떤 스포츠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헬렌 켈러의 전설이었다.  

디플림픽과 함께 이곳에서 열린 세계스포츠포올협회(TAFISA) 콩그레스에서도
장애인스포츠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 나온 미국의 세계연맹 회장이 헬렌 켈러를 연상케 하듯 강렬한 어조로 진정한 스포츠복지는
차별 없는 참여와 경쟁의 기회에서 가능하며 봉사정신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던 모습이
인상적
이다.

TAFISA의 새로운 회장에 선출된 한국의 국민생활체육회 이강두 회장도
디플림픽의 강렬한 교훈을 전하면서 모두의 스포츠는 참여로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활동적인 시민, 활동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그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가 고난을 딛고 일어서 경제부흥을 이룬지 오래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선진국 진입을 꿈꾸며 ‘한강의 기적’을 배우려 한다.
그러나 과연 부자(富者)로서 잘 사는 게 웰빙의 진정한 목표일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신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스포츠천국(天國)일수는 없다.
소외와 차별이 없는 사회가 곧 평화로운 세상이며 스포츠로 건강한 나라가
선진국의 지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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