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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 유도 몰락, 그럼 한국 태권도의 장래는?

 

                                                                                               글 / 이종세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올 세계선수권에서 48년 만에 ‘노 골드’ 수모...누적된 자만의 결과
사람들은 태권도하면 한국을 떠 올리고 유도하면 일본을 떠 올린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태권도와
유도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은 태권도에 4명의 선수가 참가,
전원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종합7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일본 유도 역시 올림픽이든 세계선수권대회든 세계 최강이었다. 그런 일본이 올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남자부에서 48년 만에 ‘노 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누적된 자만의 결과였다. 내분이 그치지 않은 한국
태권도가 일본 남자 유도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1961년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 못 따...한국은 금 2로 남자 종합1위
지난 8월30일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호이 센터에서 닷새간 열린 2009년 제26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한국 남자 유도는 이미 2개의 금메달(왕기춘, 이규원)을 따낸 뒤라 남자부 종합 1위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날의 -100kg급과 +100kg급에서 모두 우승해야 한국을 제치고
남자부 종합 1위에 오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일본은 1956년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도쿄)가 출범한 이후 1961년 제3회 대회(파리)에서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에게 금메달을 내줘 ‘노 골드’를 기록한 적은 있으나 이후 한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는 1회부터 3회까지 체급제한 없이 1체급만 열렸고 4회 대회 때
4체급, 5회부터 9회 대회까지 6체급, 10회 대회(1979년)이후 8체급이 열리다가 올해부터 7체급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본 남자 유도는 이날 두 체급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 1961년 이후 48년 만에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마침 이날은 일본 총선에서 1955년 이후 집권해온 자민당이 야당인 민주당에 대패, 54년 만에
정권을 내줘 일본 남자유도와 함께 몰락의 쓴잔을 든 날이기도 했다.

6회, 8회 대회에서는 6개 전 체급 석권...‘전설’ 야마시타 203연승 신화
사실 일본 남자 유도는 세계선수권대회 창설 이후 지난 50여 년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었다.
특히 1969년 제6회 멕시코시티 세계선수권대회와 1973년 제8회 스위스 로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6개 전 체급 우승을 독차지했고, 8체급으로 늘어난 1979년 파리대회이후에도 20년간 4체급 이상의
정상을 지켜 종주국의 면모를 이어왔다.
일본 남자 유도는 야마시타 야스히로로 대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로
1977년부터 1985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우승, 전(全) 일본 유도선수권대회
9연패 등의 위업을 이루면서 무려 203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장엄한 유도 기계’로 불리기도 했다.

올해는 금 없이 은1,동1 초라한 성적...일본 유도계 내분 반목이 원인
그러나 일본 남자유도는 야마시타 은퇴이후 쇠락의 조짐을 보이더니 1989년 베오그라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체급이 3개로 줄었고 1997년 파리대회에서는 한국(금메달 3개)보다 적은
2개의 금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이어 2001년 뮌헨 대회와 2007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겨우 1체급에서 우승하는 퇴조를 보였으며 마침내 올해에는 48년 만에 금메달 없이 은, 동메달
각 1개로 대회를 마감하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일본 유도는 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부 금메달 3개로 남녀 종합
순위에서는 가까스로 한국에 앞서 1위를 지켰으나 종합 2, 3위를 차지한 한국과 프랑스 등에
언제 종합 우승을 넘겨 주어야할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일본 남자 유도의 재기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남자 유도의 조락은
경쟁국들의 기량 향상 못지않게 일본 유도계의 내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본 유도연맹의 집행부 구성과정에서 파벌다툼이 일었고 이 여파가 국가대표선수 훈련과 선발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태권도, 베이징 올림픽 종합 1위...국기원 등 파벌싸움 위험 수위
필자는 일본 남자 유도의 최근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 태권도의 장래에 대한 우려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총재 선출과 관련, 한국인들끼리 반목하고 있다는
듣기 거북한 잡음이 들려오고 있고 세계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도 주도권 싸움에 난파선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 또한 거물급 정치인을 잇달아 회장으로 추대하고 있지만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협화음이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 국가대표선수들의
경기력 저하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에서 한국에 4개의 금메달을 안긴 임수정 손태진 황경선 차동민(왼쪽부터) 

태권도계 분규 종식...경기 규칙 개선 등으로 종주국 위상 지켜야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우리나라 메달 획득의 효자종목 역할을
톡톡히 해온 태권도. 하지만 유도와는 달리 아직도 올림픽 무대에서 퇴출 위협을 받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는 보장돼있으나 2020년 올림픽에서 가라테 등과 겨뤄 살아남으려면
경기 규칙의 객관화 등 보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또 종주국 한국의 경기력에 거세게 도전하고 있는 경쟁국들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훈련과 공정한 대표 선발 등 부단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당장 10월14일부터 덴마크에서 열리는 2009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도 만만치 않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1위를 했다고 해서 이번 세계대회에서 자만했다가는 일본 남자 유도와 같은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설사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궁극적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이나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등 관련 기관 단체의 분란이 계속된다면 한국태권도의 경기력은 치고 올라오는 신흥 태권도 강국의
도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음을 깊이 새겨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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