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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폭력 관행, 근본적 수술이 필요한 때

 


                                                                                        글 / 이태영 (스포츠포럼21 상임대표)


흔들리는 윤리의식, 폭력은 인격침해

스포츠 폭력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뿐더러 미디어의 비판은 더욱 날카롭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보다 얼마나 오랜 고질병이기에 이 난리인가. 학교 교육과정에서,
선수훈련 현장에서 터지곤 하는 이 폭력사태를 이제는 ‘기합(氣合)이라는 이름의 필요악’이라느니
‘사랑의 매’라느니 하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공영방송 뉴스시간에서 가끔 보는 장면. 경기에 진 학생선수들을 모아놓고 기합을 주는 감독선생의
구타장면은 교육차원을 넘어서 인격파괴 폭력이라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동안 KBS가 학원스포츠의 폭력근절을 캠페인하면서 선수들의 인권차원에서 접근하여 고발하는
기획취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기자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디어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하곤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학교에서 스승의 권위가 흔들려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오히려 희롱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교권확립이니 ‘사랑의 매’라느니 하는 표현은 이젠 구시대의 구호가 된 느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침을 보면 이제는 스승의 심한 욕설, 모욕, 사회통념을 벗어난 체벌(體罰)은
모두 폭행죄에 해당되며 이 경우 지도자는 형법이나 공무원교육법 또는 대한체육회 상벌규정에
따라 처리하게 되어 있다.



대표팀 훈련 중 폭력사고로 파문확대

이와 함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행사건의 악영향으로 스포츠계에 그 피해사례가
늘어나 어느 때보다 경각심이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이번에는 남자배구 대표 팀의
태릉선수촌 훈련현장에서 선수가 코치로부터 손바닥과 주먹, 발로 얼굴과 배를 마구 구타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배구대표 팀의 박철우 선수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상렬 코치로부터 손바닥과 주먹, 발로 얼굴과 배를 마구 구타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 다음 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박 선수의 얼굴은 끔찍했다. 왼쪽에 온통 피멍이 들었고,
배에도 구타당한 상처가 뚜렷했다.

어이없는 것은 구타의 이유다. 단순히 행동이 건방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강잡기 본보기 체벌이라는 이야기다. 해명을 들어볼 필요 없이 어디로 보나 '사랑의 매'는
아닌 듯 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다른 선수들 증언에 따르면 역시 코치의 감정폭발이라고 했다.

코칭스태프의 선수폭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해 전에는 남자배구 LG화재 감독이 구타 사건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배구에서 자주 문제가 터졌다.

폭력사건이 불거지자 이번에도 배구협회는 재빠르게 사과성명을 내고, 당사자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앞으로 폭력근절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윤리불감증 지도자 자질에 문제

이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학교체육 운영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폭력과 성폭력 지도자를
영구 제명하도록 촉구한바 있는데 3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자질미달의 지도자 기용에다
윤리교육 불감증 때문이다. 국가대표팀의 경우 진상조사 이전에 사건을 호도(糊塗)하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유로든 스포츠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이번의 폭력사태야말로 '일회성 파문'으로 흐지부지
되선 안 될 일이다.

체육계 폭력 관행,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 조사를 보면 남녀 학생 선수 80%가 지도자나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그중 25%는 주 1~2회 이상, 5%는 매일 폭력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학생선수들이 ‘운동기계’로 전락하는 걸 막으려면 먼저 음성적 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상담제도의
활성화를 꾀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목표도 폭력이란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다.
한국스포츠가 여러 가지 성공모델로 국제사회에서 특별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선수인권을
보호하고 윤리의식을 높이는 훈련을 갖도록 해야 한다.

배구협회는 물의를 일으킨 이 코치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있다.
박 선수는 선수보호차원에서 대표팀에서 제외키로 했다고 하는데 선수를 두 번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의를 표명한 김호철 대표팀감독에 이어 이종경 강화위원장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협회의 미봉책과 형사고발 강경책 엇박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프로도 이 모양인데, 아마추어는 오죽하겠느냐” 등 비난이 무성하다.
이번 사태는 대표팀의 태릉훈련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어느 종목의 문제로 그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여론의 압박을 의식한 듯 대한체육회는 ‘일벌백계 엄중처벌’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폭력당사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배구협회에 지시했다고 한다.

여기서 해당단체의 미봉책과 강경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혹시라도 협회가 선수보호차원을 넘어
‘구렁이 담 넘어가기’식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려 했다면 제2, 제3의 폭력사고를 부를 수도 있을 터다.
더구나 선수관리를 놓고 감독 팀과 코치 팀의 틈새가 벌어진다면 대표 팀 운영에 결정적인 장애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감독 코치에 대한 ‘형사고발’이란 극단적 조치는 근래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일로서,
감정적 대응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체육계단체에서 일어나는 일은 체육법, 다시 말해서 통상적인
상벌규정에 의해 처리하는 게 온당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상이라면 체육계 특히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분규를 법원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경기장은 물론 훈련장에서의 폭력은 스포츠맨십에 정면 배치되는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원천봉쇄를
위한 철저한 지도자재교육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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