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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챔피언 구하기에 나서야 할 때,,

글 / 이태영(스포츠포럼21 상임대표)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난 지 한참 되었건만
박태환의 좌절에 대해 여전히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애국심으로 볼 때, 어제의 영웅이 내일의 역적이 될지도 모르는 게 스포츠의 마약과도 같은 속성이다.

더구나 한국적 풍토에서는 마녀사냥 식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는
스포츠 스타들의 중압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스포츠를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여유를 가질 만도 한데
무슨 난리라도 난 듯 언론매체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서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과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이해할 만하다.

스포츠 저널리즘의 경우 뉴스 수용자들의 기대를 부풀리기 위해 과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난번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도 최근 컨디션과 기록비교를 통해
박태환의 실패를 어느 정도 예견했어야 마땅하지만
이성적 판단과 치밀한 기록체크의 허점을 드러낸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박태환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한지 1년도 채 안되었으니
이번에도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게 당연하다는 맹목적 논리에 문제가 있다.

과연 미디어의 자기도취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한번 짚어볼 일이다.

그런데 정작 주목할 부분은 영웅을 지켜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그보다 기대치를 잔뜩 부풀려놓고 나서 뒷감당을 할 수 없게 되면 책임추궁의 돌팔매질을 하는 격이고
보면 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고질병임에 틀림없다. 이는 우리의 냄비기질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순간 간일발의 차이로 승부가 가려지는 육상, 수영이나 빙상 등 기록경기에서
컨디션 관리에 따라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환에게 전후사정 고려하지 않고
챔피언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올림픽 현장에서 박태환 금메달 순간을 지켜보며 열광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너무 빠른 침몰에 충격을 느낀다.
영광을 지킨다는 것, 더구나 도전자보다 방어자의 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항상 정상에 선다는 건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박태환의 경우 그는 여론압박에 의한 희생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국민의 우상인 이 젊은 청년, 앞으로도 더 뻗어나갈 이 좋은 재목을 지키지 못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른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상혼(商魂)이 그의 정신을 흐트러트린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미디어는 이 표적에서 피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박태환의 또 한 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언론매체들은 신문, 방송할 것 없이
일제히 우리 수영계 지도층의 갈등과 무능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사실 월드챔피언 ‘마린보이’를 바로 이끌어주기엔 우리 수영계는 너무 허약하고 한심했다.
무엇보다 전담코치도 없는 지도부의 무책임이 문제였다.
여기에 서로 공(功)을 차지하려는 갈등과 반목이 있었다고 하니 수영연맹이 제 역할을 못할 수밖에,,,

40여 년 전, 레슬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챔피언(장창선)이 탄생했을 때,
그리고 세계여자탁구를 제패한 35년 전, 사라예보의 영광이후에도
우리 체육계는 비슷한 홍역을 치른바 있다.
챔피언을 업고 리더십을 잡아보려는 지도자들의 공명심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박태환이 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거의 진실이다.
수영계가 회장파, 재야파, 원로파로 갈라져 싸워온 게 사실이다.
박태환을 키워온 대표팀의 노민상 감독이 있지만 그가 세계챔피언을 지도하기엔 한계성을 느꼈을 터다.

수영연맹이 전담 코치를 못 구해 안절부절했던 것도,
그렇고 거액을 써가며 전담팀을 운영하는 SK텔레콤도 전문성이 떨어지고 보니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그 틈새에서 박태환 본인은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자기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박태환은 미디어를 접하면서 매우 부담스럽고 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 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TV카메라가 다가서면 그는 예의 형식적인 언어로 대답했을 뿐
어떤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미디어 콤플렉스를 의미하는 것 일수도 있다.

로마대회 이후 그는 파벌에 관한 질문을 피하면서 “더 노력하겠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과연 누구 탓을 할 것인가.

이제는 미디어로부터의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고 마케팅 공세의 괴롭힘도 피해주면서
스스로 이 어려움을 풀어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는 자기만의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영의 올림픽 챔피언이 처음인 건 물론 너무 큰 감격을 선물했기에
이번에 실망했다 해서 그 빛이 발할 수는 없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제패한 마라톤의 황영조의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나이 20세, 또 한 번의 영광을 위해 다시 일어서도 충분하다.
새 출발의 각오만 다진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의 실패가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스포츠의 도전에서 언제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와 같다.
역사는 계속 앞을 달리는 사람보다 한번 쓰러졌다가 다시 달리는 사람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박태환이 로마에서의 좌절을 런던에서의 재기로 멋지게 만회하는 장한 모습을 보고 싶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
다만 그 생명을 늘여가도록 챔피언 구하기에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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