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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생활체육 ]

진정한 스포츠강국이 되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글 / 이병진 (국민생활체육회 정보미디어부장)


국민들을 감동과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운이 남아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종합순위 5위(금6, 은6, 동2)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금빛 연기는 극찬 그 자체였고, 스피드스케이팅 남․여 500m
동반우승은 그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쾌거였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을 펼칠 때마다 국민들은
함께 환호하며 잠시나마 삶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힘이다.

 


빙상장 없는 곳에서 제2의 김연아가 나올까

올림픽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피겨스케이팅 동호인들이 많이 늘겠죠?”
 “앞으로 스케이트 타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식이다.
너무도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아이스링크는 전국을 통틀어 10여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서울․수도권에 있다. 제대로 스피드 스케이팅 훈련을 할 수 있는 국제 규격 경기장은
태릉 한 곳 뿐이다.

피겨 전용링크도 없다.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피겨선수들이 함께 사용하다보니 빙질에 민감한
피겨선수들이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롯데월드링크나 과천시민회관링크에는 강습을 받는
아이들과 동호인들이 얽혀 복잡하기 그지없다. 일반인도 써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대부분
새벽이나 한밤에 이용한다. 김연아 선수도 오랫동안 ‘올빼미’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실내에서 열리는 빙상경기는 그나마 조건이 낫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설상, 썰매 종목은 국내 기후조건 때문에 더욱 열악한 환경이다. 때문에 눈이 있는 해외를
찾아다니며 훈련을 한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동계종목 인프라는 최악의 수준이다. “꾸준한 지원과 과감한 투자만이 양질의
선수를 키워낼 수 있다”라는 지적이 늘 되풀이 되지만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선수층이 얇아 우수선수를 발굴한다는 자체가 ‘꿈’

동계종목의 선수층은 지극히 얇다. 대한빙상연맹에 등록된 빙상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530명,
쇼트트랙 500명, 피겨 347명이라고 한다. 초․중․고․대학․실업은 물론 취미로 스케이트를 타는
동호인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다.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는 `진짜 선수'는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빙상선수는 갈수록 줄어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초등학교 선수는 전국적으로 한 학년에 채
10명이 안 된다고 한다. 스키점프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한 4명의 선수가 10년
넘게 대표 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스키 활강부문에서는 등록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하기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실업팀도 없고, 막말로 ‘돈벌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연습할
여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우수재원이 몰리길 기대하는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종합 5위를 차지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한다. 그게 그리 좋은
말은 아닌 듯싶다. 모태범․이상화 선수의 금메달은 해외언론이 지적하듯이 “혹독한 훈련의 결실”이다.

혹독한 훈련은, 훈련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선수폭행,
훈련소 이탈 등의 뉴스도 스파르타식 훈련과 무관치 않다. 우수선수를 육성하려면, 스포츠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굴스키 ‘서정화’는 학업과 운동을 함께 한 모범사례

운동선수의 길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는 포기하고 오로지 선수생활만 해야 하는
구시대적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선수기계만들기(?)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선수는
늘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기적(?)은 생길 것이다.

진정 동계올림픽 강국이 되려면 시스템의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간단한 논리다.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야 한다. 운동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이 많아져야 한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올림픽에서 남자 빙속 개인종목 5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전설 에릭 하이든을
보라. 그의 위대함은 올림픽에서의 성취에만 있지 않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모든 것을 이룬
후 사이클에 도전하여 미국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따냈다. 그는 신뢰받는
정형외과의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 때에는 미국팀 주치의로 출전했다.

이번 대회 모굴스키에 출전한 서정화(20. 남가주대) 선수도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명문대학생인
서정화는 예선전에서 0.043점차로 아깝게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녀는 “재미있어서 모굴스키를
탈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서정화는 서울외고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오전과 밤에는 훈련하고, 오후에는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지난해 8월 남가주대에 입학했다. 올림픽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1학년 1학기
수강 과목의 학점은 모두 A 혹은 B+였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 두 가지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서정화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체육인들이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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