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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운동선수, 맞아야만 잘 한다?

글 / 조남기(숙명여자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
수)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윤창출이라는 기본 명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기업 활동을 통한 경제적 기여와 이윤의 환원을 통한 사회적 공헌이
무시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서는
이러한 기업의 공적 활동도 기업과 기업에서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의 긍정성을 강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http://sta.postech.ac.kr/col/seo-4.htm
                                      포항공대 서의호 교수 “체벌과 욕설 이젠 사라져야 한다.”

과거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다량의 상품을 단시간에 적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며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한 최상의 목적이었다.

소위 “생산성”이라 칭해지는 “효율성”의 확보가 매우 중요한 지상 목표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러 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경공업과 중공업 지향의 과거 대한민국 사회에서 외쳐왔던
“빨리 빨리”가 현재 세계인에게 알려진 수식어가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효율성에 대한
극단적인 지향이 그 한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 더해 스포츠 주류였던 남성들의 상명하복식 군대문화의 가미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아닐까?
어쨌든 이젠 “빨리 빨리”라는 수식어가 우리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을 규정하는 가치가 되어 버렸다.
즉 이 가치가 대한민국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배경에 버티고 서서 우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단어
가 되어 버린 것이다.
 
효율은 유연성보다는 체계를, 그리고 체계에 대한 매진은 엄격함을 먹고 산다.
즉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개별보다는 전체를, 예외나 독특함보다는 획일을,
그리고 융통과 유연함보다는 복종에 더 많은 가치를 둘 수밖에 없다.
빨리 빨리 상품을 생산하고 성과를 내기 위한 사회에서 주어진 틀과 체계를 벗어나는
행위가 “창의”로 대접받기 보다는 “일탈”로 치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몇 십 년을 겪어 온, 그래서 그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에게 
스포츠도 그 “빨리 빨리”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단기간에 기록 단축과 근력의 향상을 위해서 그리고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
지도자-선수, 선배-후배, 규칙과 상벌의 엄격한 체계는 부수적이기 보다는
필수적인 산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단기적 성과를 달성하는 데 있어 상당부분 기여를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소위 “빨리 빨리”와 “엄격함”의 문화를 통한 효율적 성과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몸과 신체활동의 지위가 서구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상은 매우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엘리트 스포츠 환경에서 최고의 스포츠 행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
효율, 복종, 획일, 엄격함은 지상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이 가치 기준을 수호하기 위해 역시 선수는 맞아야 하나?         

기록 달성과 승리를 위한 “노력”과 “열정”은 스포츠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노력과 열정이 육체적인 체벌을 통해 극대화 될까?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가치는 “자율”과 “경쟁”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을 위한 노력과 열정은 때리거나 맞아서 극대화 되지는 않는다.
물론 영화 “실미도”에서 표현된 것과 같이 일정수준의 성과까지는 자율을 배제한 타율로서
달성될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 만들기가 타율로 가능할까?
내일 모레, 다음 주, 다음 달에 계획되어 있는 시합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아마
타율이라는 방법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년, 3년 뒤, 혹은 10년 뒤에 있을지도
모를 경기까지 타율로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물론 답은 “아니다”이다.

스포츠 심리학의 주제 중 “불안”이나 “동기”에 관한 다수 연구자의 연구결과물에서도
타율보다는 자율이 낮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소위 일류, 이류의 차이나 승리, 패배의 차이를 종이 한 장이라고 말하곤 한다.
스포츠 환경에서의 최종의 승리나 패배가 장시간의 노력이나 열정, 혹은 기능의 현격한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의 표현일 것이다.

실제 각종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경기의 결승전에 참여하는 경쟁상대 간의 경기는 경기에 대한 노력,
열정, 기능의 차이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운이나 그 밖의 미세한 그 “어떤” 차이에 의한 경우가 많다.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이 바로 그 “어떤”의 핵심적 자리에 위치해 있다.
선수도, 지도자도 스포츠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모두 예상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능력, 즉 창의적, 문제해결식 능력을 육성하는 것이 코칭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때리고 맞는 엄격한 문화와 분위기에서 육성될 수 없다.
훈련에서의 규칙 엄수는 필수적이지만 훈련 자체가 자율이 되어야 하고 분위기가 즐거워야 한다.
TV에 보여 지는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예전하고 다른 이유도,
그리고 심지어 무도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곡선이 직선을 이길 수 있다”는 말도
신체의, 사고의, 환경의, 그리고 문화의 “유연함”에 대한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신체의 축을 이용한 회전 운동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근력 발달에의 지나친 집중은 유연성을 방해할 수도 있게 된다.

비슷하게도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능력은
저장된 정보의 다양한 연결을 통한 사고의 자유로움에 기반 하며,
효율이나 체계 혹은 단기성과에의 집착은 사고와 문화의 경직을 가져오게 된다.

때리거나 맞으면 시키는 데로는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을 보는 눈과 귀는 닫힌다.
훈련과 경기규칙은 엄수하자. 하지만 시쳇말로
“조선놈은 맞아야 한다”는 자조는 그만 두자.

운동선수로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최고의 기량을 갖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라면 맞아서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일 있을 경기의 승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수의 육성으로 지도자로서의 최종 목표 변경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스포츠 환경과 문화를 바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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