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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


글 / 김신범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가져라.’ 니체의 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모험이다. 사람은 관성에 길들여져 있고 관성은 혁신을 방해한다. 만약 인류가 익숙함에 안주했더라면 우리의 문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박경철 자기혁명 

 

 

  피클볼(Pickleball). 이름이 낯설다. 피클볼은 라켓 스포츠로,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재해석해 만든 뉴 스포츠다. 기존에 무거웠던 라켓들의 시대는 지났다. 피클볼은 주로 가볍고 타격감이 좋은 폴리머(Polymer) 소재의 패들을 사용한다. 공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고무가 가진 탄성과 열가소성수지가 지닌 가공성을 동시에 가지는 소재인 열가소성 탄성체(TPE : Thermoplastic Elastomer)를 사용해 안전과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경기도 어렵지 않다. 규칙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10분 정도만 숙지하면 바로 코트에 들어가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팔방매력을 가진 종목, 피클볼이 궁금하다.

 

(1) 피클볼의 시작

  피클볼은 1960년대에 미국의 베인브리지 아일랜드(Bainbridge Island)라는 해변가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 곳에는 당시 사업가, 정치인, 농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마을이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베인브리지 아일랜드는 항상 습기로 가득 차있다. 따라서 그들의 아이들은 지루하고 우울해했다.

 

 Distributed by PICKELBALL CHANNEL Video “The Origin of Pickleball: How It All Began” 5:12 / 14:19

 

 

  어느 날, 부모 중 한 명이 이 패들과 공을 가지고 배드민턴 코트로 가서 쳐 보자. 재미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무로 된 패들과 플라스틱 야구 공으로 게임과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빠른 움직임을 교육하고 싶어 했다. 습도가 높고 축축한 지대에 살던 자녀들은 밖에서 활동적인 생활을 하기보다는 TV앞에 앉아있는 정적 패턴을 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또한 득점 방식, 서브 방식 등 다양한 세부규칙을 만들었으며,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또한 현재 피클볼의 가장 큰 특징인 -발리 존(Non-Volley Zone)’을 만들었으며, 네트의 높이는 36인치로 설정했다.

 

 

  피클볼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뉴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피클볼의 공식 기구인 IFP(International Federation of Pickleball)2010년에 창립되었으며, 마이크 헤스(Mike Hess) 회장체제로 많은 사업들을 실시하고 있다. IFP의 목표는 피클볼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 모든 국가에 피클볼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IFP는 피클볼의 본부로서, 규정과 그에 따른 세칙, 규정 등에 관한 내용의 문서를 출판하고, 국제 토너먼트와 이벤트를 조직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촉진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 피클볼의 규칙

  피클볼은 테니스형 그물을 지닌 20피트 × 44피트 길이의 코트에서 공을 사용하여 즐기는 패들 스포츠다. 코트의 생김새와 사용범위는 다음 그림과 같다.

 

Distributed by IFP 2018 Official Tournament Rulebook Figure 2-1. / Court

 

  서브의 경우, 언더 핸드 모션을 사용하여 네트를 가로질러 상대방의 코트로 비스듬히 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른쪽 코트에서 서브를 넣는다면, 상대방의 오른쪽 코트로 공을 서브해야 하는 것이다. 서버 혹은 서버의 팀이 랠리에서 승리하면, 서브하는 측은 점수를 획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11점을 먼저 획득하는 팀이 승리한다. 하지만 양 측이 똑같이 10점을 획득한 경우는 듀스제도를 통해서 2점 차이가 먼저 나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피클볼은 단식과 복식 둘 다 할 수 있지만, 복식이 인기가 있다.

 

  다른 종목에는 없는 피클볼만의 특이한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투 바운스 룰(Two-Bounce Rule)이다. 공이 서브 된 후에, 각 측은 서브된 공을 바로 발리로 처리할 수 없다. 반드시 한 번 바닥에 튕긴 다음에 칠 수 있으며, 그 이후부터 발리가 가능하다. 즉 서브 이후, 공이 양쪽 진영을 한 번씩 왔다 갔다 한 이후부터 발리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논 발리 존(Non-Volley Zone)이다. 위에 첨부된 그림을 보면, 네트 양 측 바로 아래 논 발리 존이 있는데, 이는 그물 양 측면으로부터 7 피트 뻗어있는 영역으로, 플레이어는 공중에 떠있는 공을 칠 때 논 발리 존에 들어가서 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선을 밟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Distributed by IFP 2018 Official Tournament Rulebook Figure 4-1. / Underhand Serve Motion

 

  서브에 대한 규칙들도 있다. 서버는 서비스 동작을 실시하기 전에 전체 점수를 호출하며 환기해야 한다. 서비스 동작은 서버의 팔 동작이 앞뒤로 시작하여 볼에 연결하는 언더핸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서브를 할 시에는 두 발이 코트 기준선 뒤에 위치해야 한다. 서브를 넣을 때 공을 튀기지 말고 진행해야 하지만, 팔이 하나인 장애인의 경우에는 서비스 동작을 하기 전에 공을 튀기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패들의 머리 부분(헤드 부분)은 공을 칠 때 서버의 손목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의복에 대한 제약은 크게 없다. 안전한 플레이를 위해 게임에 적절한 옷을 입어야 한다. 상대방의 집중을 흩을 정도로 산만한 옷은 규정에 어긋나며, 심판이 지적하였을 시에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특별히 피클볼만을 위한 신발은 없지만, 경기코트를 손상시킬 수 있는 밑창이 있는 신발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3) 피클볼의 성장 가능성

  여가시간이 증대하고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삶의 질을 높이려는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생활스포츠 인구도 전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2015년에 발간된 체육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활스포츠는 배드민턴이다. 클럽 수는 5,617개 회원의 수는 약 338,155명에 달한다. 조기축구인 동호회를 능가하는 수치라고 하니,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에 피클볼이 상륙했다. 아우는 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세 가지 측면에서 피클볼의 미래를 살펴봤다.



레저 측면

무엇인가를 레저라고 일컬으려 한다면,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인간에게 쉼을 주며, 기분전환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스포츠는 건전한 레저로서 작동될 수 있는 장점들을 전부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특히 피클볼은 더 그렇다. 여가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 현대인들에게 피클볼은 최고의 레저종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레저종목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기기 때문이다.

 

피클볼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 것이라는 논거를 몇 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피클볼은 승마, 요트, 골프 등 흔히 품격이 넘치는스포츠라고 생각되는 종목들과 달리,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자 할 것이다. 둘째, 신체적/정신적으로 고된 스포츠보다는, 재미와 건강도모 등 스포츠 본질 그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발현될 것이다. 셋째, 스포츠참여 그 자체의 즐거움뿐 아니라, 사교를 위한 친목의 장으로 스포츠를 이용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피클볼은 팀원과의 소통이 중시되는 종목이다. 넷째, 앞으로는 노인과 여성, 아이들의 스포츠 참여율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가볍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많이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도모 측면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점은 인간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인간사회에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신체의 움직임은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줄었다. 움직임과 운동은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사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건강부족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생활스포츠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스포츠는 신체와 정신을 올바르게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경기 시 공을 제대로 받아내기 위해 기능하는 대근과(大筋) 세근(細筋)의 움직임은 신체적 이득을 가져다주며, 선수들 간의 건강한 소통을 통해 심리적인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

 

욕구반영 측면

 

최근 우리 사회는 다원화 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자기 삶을 독특하게 살고 싶어 한다. 기존에 있던 취미 활동, 예컨대 음악이나 영화 감상, 농구나 야구 즐기기 등과 같은 전통적인 활동의 영위로는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매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스카이다이빙, 요트 항해, 미식 활동 이른바 비싼 취미를 갖기는 쉽지 않다. 피클볼은 큰 제약을 받지 않고도 문화적 진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제다. 새로운 스포츠로 새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네트와 패들, 공만 있다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4) 연세대학교 허진무 교수 인터뷰

우리나라 최초로 피클볼을 대학 수업에 유치한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허진무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 허진무 교수 제공)

 

-피클볼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체육 종목으로 피클볼을 처음 만났다. 이후 시간이 지나 인디애나(Indiana)주에서 하는 노인올림픽에 관여하면서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때부터 피클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지금에 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개인적으로 노인체육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당시 거주하던 인디아나 주 노인올림픽 조직에 관여했다. 노인올림픽에는 수영과 육상이 제일 인기가 많았는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피클볼이 육상과 수영보다 인기가 많아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미국 각 주 대부분의 노인올림픽에서 피클볼이 제일의 종목으로 등극한지 오래다.

 

-미국에서 피클볼의 인기는?

미국 피클볼 협회 웹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그 주에 열리는 전국 각지의 경기리스트들을 열람할 수 있다. 매주 각지에서 피클볼 대회가 열리고 있다. 현재 미국의 피클볼 인구가 약 200만 명에서 250만 명이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피클볼 참여인구가 250만 명까지 늘었다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피클볼 산업은 2010년 전후로 급성장했고, 지금도 꾸준히 저변을 넓히고 있다. 미국은 땅이 넓은 만큼 테니스 코트도 많다. 그 코트들을 보면 사용률이 높은 곳도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코트, 즉 유휴지(遊休地)도 많다. 따라서 시나 주에서 전략적으로 사용량이 적은 테니스 코트를 피클볼 코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테니스 코트 하나에 피클볼 코트 네 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행정가들 입장에서는 공리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코트라인만 그려져 있다면, 피클볼 네트를 들고 와서 설치해 바로 즐길 수 있는 것이 피클볼의 독특한 매력이다. 미국에서 피클볼 전국대회가 열리는 전용구장의 경우에는 한 장소에 피클볼 코트가 30개 이상씩 있는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애리조나, 플로리다 에 위치한 곳들이 그렇다. 다른 주에서도 피클볼 전용구장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피클볼만의 매력은?

다른 라켓 스포츠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 규칙을 배우면 바로 경기를 할 수 있다. 서브를 언더핸드로 넣기 때문에 서브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실제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비교적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금방 적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초급 수준에서는 테니스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만, 중급 레벨에 올라가면 테니스랑 다른 피클볼만의 독특한 특성이 확연히 나타난다. 피클볼은 테니스같은 힘의 스포츠가 아니라, 순발력과 눈-손 협응력, 반사 신경이 중요한 민첩의 스포츠라는 것이다. 신체상 서양인들보다 힘이 적은 동양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피클볼의 단식과 복식은 완전 다른 게임이다. 단식은 테니스처럼 체력소모가 꽤 있다. 하지만 복식은 논 발리 존 부근 앞선을 잡으면 많이 안 움직여도 된다. 이런 식의 경기 운영이 승리할 수 있는 확률도 높다. 체력이 거칠게 소모되지 않지만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적합한 종목인 것이다또 한 가지 매력은, 환대의 미덕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피클볼 코트를 가면,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반겨 준다. 이것도 종목 속에 내재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들 특유의 유대감, 안정감이 자연스레 녹아있는 것이다. 엘리트에서 시작한 스포츠가 생활 스포츠로 보급되는 탑 다운(Top-town)방식과는 달리, 풀뿌리 스포츠 종목에서 엘리트 스포츠로 육성되어가는 바텀 업(Bottom-up)방식의 종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클볼이라는 종목을 보급할 때, 이런 긍정적 문화까지도 함께 받아들여서 피클볼만의 장점으로 승화시킬 생각이다.

 

 

사진 : 허진무 교수 본인 제공

 

 

-피클볼을 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스포츠과학관 B1호 구기장에서 일주일에 목요일 오후 2시부터 4, 금요일 오후 3시부터 6, 총 두 번 운동을 한다. 전남/광주에 주말에 모이는 클럽도 있다. 경남/거창에는 중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일주일에 서 너 번 정도 운동하는 모임이 있다. 사전에 미리 연락을 하고 코트에 찾아가면 함께 피클볼을 즐길 수 있다. 혹시 미국에 있다면, 미국피클볼협회(USAPA : USA Pickleball Association)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Place 2 Play’ 탭을 누르면, 내가 있는 지역과 가까운 피클볼 모임과 장소를 검색할 수 있다. 주소는 https://www.places2play.org/ 이다.

 

 

 

Served by USAPA “Place 2 Play” Searching Keyword : Yonsei University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S. 쿤은 기존의 관념과 프레임은 새로 창출된 개념에 의해 대체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대전환을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했다. 스포츠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인 프로게임에 용이한 스포츠들뿐만 아니라, 이제 모든 대상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경험 중심의 생활스포츠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핵에 피클볼이 있다. 서두에 언급했던 박경철의 말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모험이다. 관성은 혁신을 방해한다. 새로움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바로 이번 주말부터 피클볼과 함께 기분 좋은 일상 탈피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을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