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 되겠다
2017년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과분하게도 마라톤 최우수 선수상을 받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비록 마라톤이라는 힘든 운동을 하지만 올해처럼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 적은 없었다.
지난 5일 동아일보 광화문 본사 동아 미디어센터에서 2017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포카리스웨트 영러너어워즈상을 수상해 2018도쿄마라톤 참가권을 얻었다. 동시에 남자20대 올해의 선수상과 각 연령별 8명의 올해의 선수 중 최우수선수에 뽑혀 세 부분에 상을 받았다. 언론에 3관왕, MVP등 근사하게 기사가 났는데 2007년 전국소년체전에서 2관왕에 오른 후 10년 만에 이런 기사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최우수선수는 성적만으로 선발하지 않고 마라톤경력과 클럽활동, 사회공헌 활동 등 여러 항목을 고려하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고 당연히 선배님들이 수상할거라 생각했다. 대학생 신분에 마라톤을 지도하고 스포츠둥지 기자로서 마라톤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어필했는데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결국 운이 좋아 받은 상이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겸손하며 올바른 모습으로 보답할 생각이다.
이번 상을 받으며 내 목표에 대한 기사도 실렸다. 지금부터 준비해 2020도쿄올림픽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나는 애당초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얘기가 나오게 된 계기는 경주국제마라톤 우승 후 기자님이 찾아와 앞으로의 목표를 물어봤다. 그때 “2시간20분대 초반”이라고 말했더니 웃으시며 더 큰 목표 없냐고 하셨다. 그래서 “누구나 큰 목표는 올림픽이죠”라고 했다. 그때의 짧은 대화로 이 기사가 시작됐다.
2010년 전국고교코오롱구간마라톤 2소구 1위를 한 것이 엘리트시절 마지막 이력이다. 그 후 2011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은퇴하여 군복무를 하였다. 새로운 삶을 살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5월이다. 이미 ‘방선희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활동한지 1년 반이 지난 상태였지만 그때 뭔가 코치로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은퇴 후 5년 만에 조깅을 시작했고 한 달 뒤 하프코스 1시간15분을 뛰었다. 11월에 1시간8분59초를 뛰었고 올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29분42초로 우승했다.
서울국제마라톤을 준비할 때의 생활은 일반적인 대학생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자취하는 대학생이며 하루 2끼를 간신히 먹었다. 대부분의 식사는 라면 및 학식이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벌고 있는 상황이고 학업도 신경 쓰기에 운동 후 휴식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마라톤에 매우 중요한 보강운동을 할 수 없었고 생활패턴이 불규칙해 운동의 리듬이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훈련파트너가 없어 30km를 혼자 달렸고 물주는 사람도 없어 한모금의 수분섭취도 못하며 장거리 훈련을 했다. 그러다 피로골절이 왔고 그 상태로 서울국제마라톤을 달렸다. 운동에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지만 2017년 뜻밖의 성과를 냈다.
우승 후 마라톤을 즐기는 많은 분들이 나를 좋아해주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면 현역 선수들을 이길 것 같으니 팬의 입장으로 엘리트복귀를 바라는 분들도 많다. 실질적으로 마라톤과 관련된 사람은 95%이상 내가 다시 엘리트로 복귀하기 바란다. 과거 엘리트시절 어떤 선수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정신력은 어느 누구나 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정신력이 강했고 성실함이 달랐다. 시간이 지난 후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정말 최고의 선수였다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발전됐다. 내가 마라톤을 준비한 과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허나 나는 확실히 말하고 싶다. 현재의 나는 엘리트로 복귀할 마음이 없다. 분명 얼마 전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신력, 성실함, 체력 모두 갖췄고 내가 시작한다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도 제공되지만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3주전 운동부하 검사를 했다. 선수 아닌 평범한 사람보다 낮은 종아리근력이 나왔고 오른쪽 발목은 운동을 다시 하지 않아도 재활이 필요하다. 나도 몸을 관리하는 사람이고 수백 개의 병원을 다녀봐서 알지만 숫자로 나오는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내게 숫자로 다가오지 않았다. 발목과 발가락이 부러지고 경골, 비골에 피로골절이 와도 달리던 내가 육상입문 16년 만에 처음으로 다리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2007년 3월 오른쪽 경골 피로골절과 10월 왼쪽복숭아뼈바깥쪽(발목)이 부러졌을 때 엘리트로서의 내 삶은 끝났다. 1년간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배문고등학교로 전학하여 ‘제2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조남홍 감독님 덕분에 다시 전국 정상에 올랐다. 한양대학교까지 입학했지만 2007년 겪은 그 부상은 이미 엘리트 마라토너로서의 길을 밞기에는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지만 이제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나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마라톤을 그저 즐기는 사람으로 남겠다.
어려운 여건에 내가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챙겨주셨던 분들이 있다.
은퇴했어도 자식처럼 여겨주시는 배문고등학교 조남홍 감독님,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탁할 수 있는 아이스팟커뮤니케이션 박연규 대표님,
한 번이라도 더 영양 높은 식사를 사주시려는 동대문구육상연맹 손호석 회장님이 그분들이다.
마지막으로 마라톤 대선배 중 이 두 분은 나에게 더 없는 자산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의 인품과 언행의 격을 매우 높게 향상시켜주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방선희 감독님과 여현호 코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올림픽에 대한 꿈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마라톤에 대한 꿈을 올바르게 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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