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혁출 (국민생활체육회 전략기획실장)
산에 오르는데도 빌빌 거리는 아이들
주말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인근 산에는 등산객으로 혼잡할 정도다. “세상
어디고 붐비지 않는 곳이 없구나” 혼자 구시렁거린다. 그런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들이다.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눈에 띄는 10대 중후반 아이들이 있다. 부모 성화에 못 이겨 산을 오르는 듯 어기적
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놈이 대찬 구석은 보이지 않고 뚱뚱 미련해 보인다. ‘이왕 부모
따라나섰으면 패기 있게 오를 것을. 별 높지도 않은 산이거늘,,쯧쯧’ 보기가 안쓰럽다.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뭐”하며 동료 박 형이 내 표정을 보며 거든다.
새삼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너른 들판은 온통 우리들 세상이었다. 벼 베고
난 밑둥이 좀 신경 쓰였지만 바짝 마른 논바닥은 축구장도 되고 야구장도 되었다. 변변한
운동장이 없는 터라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나면 가방을 내팽개치고 해질 무렵까지 그저 뛰어
놀았다. 먼지 묻은 옷을 툭툭 털고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 어떤 날은 종아리가
쩌릿할 정도였다.
허구한 날 공차고 놀았지만 무슨 전문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뛰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또래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어쩌다 집에서 또래들과 죽치고 노는 날에는 “얘들아
밖에 나가 놀아라” 할머니가 쫓아냈다. 그러면 또 밖에서 뛰어 놀았다. 놀면서 서로에게 배웠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삶의 지혜를 배웠다.
뛰어놀 공간과 놀이문화 빼앗긴 아이들, 누굴 탓하랴
요즘엔 아이들을 집안에 가둬놓아야 안심이다. 세상이 워낙 험하다보니 그렇다. 다녀야 할
학원도 한두 개가 아니다. 몇 개의 학원 끝내고 나면 집에서 놀게끔 한다. 예전처럼 마을이나
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좀체 보기 힘들다. 덩치는 황소처럼 커졌지만 노는 것은 개미
코딱지 만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컴퓨터 게임하기 바쁘다.
학교운동장은 텅 비어 있고, 그 자리에는 밤늦도록 뱅뱅 돌며 걷기 운동하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가 메우고 있다. 동네 공원 놀이터에도 아이들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키고 앉아있다.
그러니 야트막한 산에라도 오를라치면 아이들에겐 벅차기만 하다.
누굴 탓할 것인가. 뛰어놀 공간과 놀이문화를 빼앗겨버린 것이 어찌 아이들 탓일까. 그저
암기과학 열심히 외우고 국․영․수 과목 점수 잘 받기 위해 학원에 보낸 어른들의 잘못이다.
“우린 누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학원에 보내는 줄 아느냐. 교육환경이 그런데, 남들 다 학원
보내는데 그럼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 할 말 없다. 버는 것 신통찮으면서 아이들 학원에
보내야 하는 나부터 그러할진대.
스포츠 활동이 주는 가치는 교과서에 없는 소중한 것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이렇게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이라는 무지개를 쫓아 고행의
길을 걷다보니, 정말 소중한 것을 맛보지 못하고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다. 그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스포츠 활동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적극적인 신체활동’이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통해 배우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스포츠 활동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스포츠 활동은 신체발달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정서적인 발달을 도모해 준다.
단결심과 협동심, 실패를 경험하고 룰의 중요성을 체득하는 등 사회성을 경험하게 된다.
토닥거리고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양보와 소통의 정신을 배우고 각종 상황에
따른 인지능력을 배운다.
호주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스포츠 데이(sports day)를 지정한 것도, 프랑스에서 매주 수요일은
‘가방 없는 날’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웨덴에서는 스포츠가 젊은이들의 일탈을 방지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믿고 있다. 시간이 남는 젊은이들이 TV앞에서 빈둥거리거나
길거리에서 방황하다 보면 결국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나 지방정부는
스포츠클럽으로 청소년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허약한 청소년들에게 국가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소년들에게 달려 있다. 지식의 ‘편식’에 의해 길러진 청소년이나,
철저하게 개인주의에 길들여진 청소년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참으로
아찔하다. 적절한 지성을 지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덕성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체력을 골고루 갖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지·덕·체가 균형을
이룬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다.
청소년들의 체력과 체육활동은 국가미래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을 운동장으로 체육관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정부와 국회, 교육관계자, 체육유관단체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교육기조 전반을 뒤흔들더라도 청소년체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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