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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한국체육이 ‘PL(Physical Literacy)’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국체육이 ‘PL(Physical Literacy)’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김학수소장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는 골키퍼를 통해 배웠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유명한 말이다. 실존주의 작가였던 카뮈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17세 때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의 지역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결핵을 심하게 앓지만 않았으면 그는 작가의 길보다는 축구선수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축구를 통해서 그는 기회와 평등의 개념을 배웠고,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카뮈는 축구에서 경험했던 여러 철학적, 사회적 생각과 개념들을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 신화’ 등에 담아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이 됐다.

 

최순실씨의 체육계 이권개입과 그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승마 입시비리 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체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실망감이 들었다. 카뮈와 같은 운동선수 출신의 지성의 출현은 기대하기는 거의 힘들고, 현 체육계를 더 나쁘게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사실 그동안의 우리 체육의 행태를 지켜 봤을 때, 최순실씨 모녀가 행한 일탈된 모습은 예상가능했던 일이었다. 승리 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며 이기기 위해 탈법, 불법, 부정을 서슴치 않는 체육계의 혼탁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최순실씨 일가 사건은 체육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체육계의 비리가 터질 때 마다 체육인들 대부분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얘기한다. 체육의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승부조작, 편파판정, 폭력 등에 연루된 체육인들이 적발되면서 안겨준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체육인들은 한국체육에 대한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시스템과 의식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는데 뜻을 같이한다. 박주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서울여대 체육학과 교수)은 “그동안 우리 체육은 성과주의 위주로 성장해 엘리트스포츠에서 국위선양을 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키우는데 기여했다”며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고, 개인의 신체를 소중히 가꾸는 문화를 등한시 했다”고 말했다. 체육을 육체와 정신을 함양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다는 결과 위주의 성과로만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체육학자들이 요즘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행하고 있는 ‘PL(Physical Literacy)’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체육의 기본 틀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PL 개념을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최의창 서울대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학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체육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이르기까지, 학교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을 관통해서 한국체육의 핵심적 줄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PL을 국민체육진흥의 새로운 지향처를 찾는 GPS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기고글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낡은 체육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에서, 새롭게 이끌어갈 효과적인 개념으로 PL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신체활동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교양인으로서 반드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점차 인식되어가고 있는게 세계 선진국들의 추세이다. 체육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무엇보다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PL’은 곧 사람들이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글을 다룰 수 있는 리터러시나 셈을 할 수 있는 ‘뉴머러시(numeracy)’처럼, 신체활동과 연관된 리터러시를 말한다. 피지컬 리터러시 없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의 기대나 희망이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현대인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PL 개념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 최 교수는 “PL은 다양한 차원에서 개념화되고 적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념적 차원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평생체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체계적인 틀일 수도 있다. 또는 개인의 기본운동능력과 건강을 향상하는 구체적 방법들일 수도 있으며 이념적 수준, 정책적 수준, 방법적 수준 각각에서 다양하게 PL을 개념화하고 실용화시킬 수 있다”며 우리 상황에 맞게 여러 분석과 정책적인 결정을 통해 적용해 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PL 개념은 그동안 많은 적폐가 누적돼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우리 체육계에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체육을 부의 성공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우리 체육이 앞으로 PL 개념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을 통해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정착되는 문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십년 후 우리 체육이 카뮈같이 인류 정신의 위대한 유산을 남길 위인을 만들어 내는 마당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제는 최순실씨 등 체육을 농단한 이름들을 잊어버리며 구시대의 잔재를 딛고 새로운 자세로 매진해 나가야 할 때이다.